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그곳에 간호사가 있었네

2015. 9. 2.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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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21] 박점규-노순택의 연장傳

날카로운 온기

간호사의 주사기… 위안을 주사하고 삶을 삽관하는 서울의료원 호스피스완화센터 정자영 간호사의 하루

간호사실 분위기가 무겁다. 1203호 할머니가 숨을 거두었다. 간호사복을 갈아입은 자영씨가 야간 근무조 동료와 함께 병실에 들어선다. 입을 닦고 기저귀를 갈았다. 몸을 깨끗이 닦아드리고 옷을 갈아입혔다.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병실을 나온다. 지난 8월14일 아침 7시 서울의료원 12층 호스피스완화센터 정자영(27) 간호사의 광복 70주년 임시공휴일은 이렇게 시작됐다.

오늘 하루 서른 개의 주사기

이달에만 다섯 번째 임종이다. 5년째 하고 있는 일인데도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잠시 할머니를 떠올리다 이내 정신을 차린다. 처방전에 따라 카트에 주사기와 약을 챙겨 병실을 돌아야 한다. 아티반, 메리톨, 옥티넘, 황몰핀…. 말기암 환자의 고통을 줄여주는 마약들이다. 100가지도 넘는 약이 담겨 있는 서랍에서 약을 빼내는 손놀림이 재빠르다. 병실을 돈다. 한 환자가 밤새 고통스러웠는지 손으로 피아이시시(PICC·팔에서 좌심방까지 연결된 50cm 길이의 튜브)를 '3시엠(cm)'가량 뽑았다. 의사에게 보고하고 인턴과 함께 튜브를 제거했다.

병실을 돈 결과를 컴퓨터에 입력하는 시간. 병실 비상벨과 전화기가 번갈아 울린다. 외출을 나간 환자가 상태가 악화돼 돌아온다며 구급차를 찾는다. 새벽에 눈을 감은 할머니와 그 가족들이 병실에서 나온다. 세 간호사가 하던 일을 멈추고 엘리베이터 입구까지 배웅한다. "그동안 너무 고마웠어요." 할아버지가 울먹이며 간호사들의 손을 꼭 잡는다. 눈시울이 붉어진다. "선생님 우리 환자 숨이 차나봐요."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병실로 뛰어간다. 할머니와 이별의 시간은 끝났다.

외출 환자가 돌아왔다. 담당 의사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알리고 처방을 요청한다. 오더지(의사의 처방 용지)를 출력하고 주사를 준비한다. 영양제와 항생제 주사를 카트 위에 놓는다. 노란색 비타민을 주사기로 뽑아 영양제에 넣고 거치대에 걸어놓는다. 수액 세트에 영양제를 연결하고 수액 떨어지는 양을 조절한다. 항생제 밀봉용기에 주사기 바늘을 꽂아 수액을 빼낸다. 생리식염수에 항생제를 섞고 수액 세트를 뜯어 항생제가 섞인 생리식염수에 연결한다. 피아이시시가 막혀 있는지 확인하고 주사를 놓는다. 주삿바늘을 꺾어 버린다. 수액병에 시간을 기록한다. 오늘 서른 개의 주사기가 그녀의 손을 거쳐 환자를 만난다.

"예전에 젊은 아내를 남편이 간병한 적이 있었어요. 이른 나이에 닥친 불행으로 남편이 극도로 예민했어요. 분노와 화를 간호사들에게 쏟아냈죠. 우리도 힘들었지만 최선을 다해 간호했어요. 아내와 이별하고 병원을 떠나던 날 남편이 간호사실에 들러 우리 딸 크면 의사 말고 간호사 시키겠다며 너무 고마웠다고 인사하고 갔어요. 그런데 6개월쯤 지난 밸런타인데이 날, 그분이 병원에 와서 간호사들 이름을 일일이 적은 초콜릿을 돌렸어요. 감동이었죠." 자영씨 입가에 작은 미소가 번진다.

자영씨가 주사기를 든다. 정맥 주사용 22게이지(g) 바늘이다. 국내 중소기업이 만든다. 보통 동네 병원에서 엉덩이에 맞는 주사는 23게이지, 피하와 피내 주사용 바늘이다. 숫자가 적을수록 바늘이 굵다. 간호사 초년 시절,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일할 때는 수술과 수혈에 쓰는 18게이지 주사기를 자주 썼다. 소아과 병원에서는 24게이지 바늘을 쓴다.

두 번 찔러 안 되면 '손 바꿈'

주삿바늘과 맺은 인연. 스무 살, 대학 간호학과 실습 시간이었다. 환자 모형에 주사 놓는 연습을 하다가, 학과 동기와 서로의 팔에 주사를 놓고 있었다. 약물을 섞다가 손에서 떨어진 주사기가 자영씨의 발등에 세로로 꽂혔다. 친구들의 눈길이 발에 대롱대롱 달린 바늘에 쏠렸다. '웃픈' 순간이었다. 간호사 생애에서 주삿바늘에 찔리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를 알려주는 예고편이었다.

간호사 생활 3년이 지나면 주사 놓는 일도 능숙해진다. 어린아이는 핏줄이 보이지 않지만 탄력이 있어서 혈관을 찾는 게 어렵지 않다. 하지만 노인들은 혈관의 신축성과 탄력이 약하다. 더구나 병원 생활을 오래 한 환자의 혈관 찾는 일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주사를 못 놓는다고 의사 와라, 수간호사 불러라 소리 지르는 '진상 환자'를 만나면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동맥주사나 척수마취주사를 놓을 권한이 있는 의사도 임상에서 경험이 많지 않으면 실수를 하게 된다.

"마치 징크스가 있는 것처럼 이상하게 안 되는 환자가 있어요. 두 번 정도 찔렀는데 안 되면 다른 동료를 불러요. 병원에서는 '손 바꾼다'고 해요. 그러면 경력이 훨씬 적은 간호사인데도 쉽게 혈관을 찾아요." 26년 경력 김경희 간호사의 말이다. 환자가 믿고 기다려주고, 간호사가 여유를 가지고 마음을 전하면서 주사를 놓을 때, 금속성 주삿바늘에 온기가 돈다. 하지만 시간에 쫓겨 조급해지고 피로와 스트레스가 밀려오면 쉽게 하던 일도 실수가 생긴다. 지친 간호사의 손에 들린 주삿바늘이 싸늘해진다.

자영씨가 일하는 12층 호스피스 병동에는 19개의 병상이 있다. 서울의료원은 서울시 산하 공공병원이다. 삼성서울병원이나 서울아산병원은 호스피스 병동을 운영하지 않는다. 같은 공간에 두 배 이상 많은 침대를 놓아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돈벌이'가 목적인 재벌 병원들은 비정규직을 많이 사용한다. 고용노동부에 신고한 서울의료원의 비정규직 비율은 18%인데 아산병원(아산사회복지재단)은 30%, 삼성병원(삼성생명공익재단)은 35%에 이른다. 대형 병원들이 기피하는 호스피스 병동은 국공립 의료원과 가톨릭병원이 운영한다. 입원할 수 있는 기간이 한 달에서 60일로 늘었다. 임종이 아니면 침대가 빠지지 않는다. 현재 대기 환자는 16명, 2~3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호스피스 병동은 보호자 없이 간호사가 환자를 돌봐주는 '포괄간호서비스' 대상에 포함되지 않아 가족이 간병을 해야 한다. 간병인을 두면 한 달에 한 사람 월급이 고스란히 들어간다. 지난 7월15일부터 대구의료원이 전국 60개 완화의료 전문기관 중에서 처음으로 간병서비스에 건강보험을 적용했다. 병원비가 하루 10만원(입원비 2만원, 간병비 8만원)에서 2만원(입원비 1만4400원, 간병비 3800원)으로 줄어들었다. 살아서도 돈 때문에 고달픈 인생이었는데 돈이 없어 죽음마저 편안하게 맞을 수 없는 사회. 공공병원이 소중한 이유다.

비정규직은 제외한다는 메르스 성과급

우주복처럼 생긴 10kg 무게의 방호복을 입고, N-95 마스크, 고글, 덧신, 장갑을 착용하고 환자에게 주사를 놓는 건 어떨까? 5분만 지나도 숨쉬기가 힘들다는 레벨-D 개인보호구를 쓰고도 주사를 잘 놓을 수 있을까? 131병동에 근무하는 김정아 간호사는 지난 6월 메르스 전문 격리 병동으로 파견 나가 메르스 환자들을 간호했다. 고글에 습기가 차서 환자의 핏줄이 잘 보이지 않았다. 의료용 장갑 3개를 겹쳐 착용한 손은 혈관을 찾아 더듬거렸다. 한 번에 주사를 놓기가 쉽지 않았다. 환자들도 괴로웠다. 정아씨는 환자를 살려야 한다는 마음으로 혼을 다해 주사를 놓았다.

서울의 어느 메르스 지정 병원에서 '높으신' 감염내과 교수님과 수간호사는 격리병동에 가지 않고 '아랫것들'만 보냈다고 했는데, 서울의료원은 의사와 수간호사가 앞장섰다. 그녀도 잠시 고민하다 공공병원 간호사가 국민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는 생각에 흔쾌히 수락했다.

처음에 병원 경영진은 경기도 평택에서 메르스 환자가 왔다는 사실을 밖으로 절대 얘기하지 말라고 했다. 환자가 줄어 돈벌이가 안 된다는 거였다. 2011년에 만들어진 음압 전문병동은 골칫거리로 여겨졌다. 그런데 메르스 전쟁이 터지고 삼성서울병원이 초토화되면서 서울의료원은 안심병원이 됐고, 애물단지 음압 전문병동은 영웅이 됐다. 무능한 정부가 공공의료의 중요성을 확인시켜준 것이었다.

하루 12시간 격리 노동. 사망자가 늘면서 간호사들의 감염 우려도 급격히 높아지고 있었다. 노동조합(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 새서울의료원분회)은 8시간 근무와 숙소 마련을 요구했다. 잠복기를 고려해 격리병동에서 나온 간호사에게 2주의 휴가를 보장하라고 했다. 병원은 묵묵부답이었다. 김경희 노조분회장이 서울시에 민원을 넣고 나서야 2주간의 유급휴가를 인정해줬다.

메르스 격리병동 생활 12일째, 함께 살고 있는 정아씨의 어머님이 고열에 시달렸다. 모녀가 메르스 의심환자로 2주간 자가 격리를 했다. 다행히 메르스 사태는 끝이 났고, 그녀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감염 전쟁을 막는 데 공헌했다며 서울시가 성과급을 지급하기로 했는데, 비정규직과 신규 직원은 제외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메르스와 같은 재난을 예방하기 위해 감염내과 의사를 충원하면서도 비용 때문에 감염 전문 간호사는 채용하지 않는다는 얘기도 나온다. 노조는 공공의료를 강화하고 메르스 성과급을 차별 없이 모두에게 지급하라고 싸우고 있다.

아픈 사람을 돌보는 직업. 그런데 자영씨는 정작 자신이 아플 때는 돌봄을 받지 못한다. 아픈 몸을 이끌고 간신히 출근해 간호사실에서 서로의 몸에 주사를 놓는다. 서러운 바늘이다. 지난 5월 보건의료노조가 83개 의료기관 종사자 1만8629명을 조사했다. 근무시간이 하루 10.6시간, 주 49.8시간으로 평균보다 연간 21일을 더 일하고 있었다. 간호사 10명 가운데 8명(80.5%)이 "인력이 부족하다"고 답변했다. 인구 1천 명당 우리나라의 평균 간호 인력은 4.8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9.3명)의 절반이다.

인력 부족은 병원 노동자의 건강을 악화시키고(65.7%), 업무 스트레스를 높인다(54.2%). 의료서비스의 질을 하락시키고(81.1%), 의료사고 발생(47.4%)으로 이어진다. 지친 간호사의 바늘이 환자에게 흉기로 변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병원 노동자의 직장생활 만족도는 100점 만점에 45점이다. 그중 노동시간 및 노동강도가 37.5점으로 가장 낮았다. 간호사의 평균 근속기간은 7.4년에 불과했다. 11.1%가 간호 인력 부족으로 임신순번제를 하고 있다. 숙련도가 높은 간호사들이 출산과 육아 부담으로 병원을 떠나 의료 현장은 젊은 간호사가 많을 수밖에 없다.

정작 자신이 아플 때는 서러운 바늘

자영씨가 이브닝(오후조) 간호사를 위한 인계를 준비한다. 주사가 제대로 들어가고 있는지, 진통제는 언제 몇 번 줬는지, 환자의 섭취량과 배설량이 얼마인지 일일이 확인해 기록한다. 1시간 일찍 출근한 간호사가 자영씨의 설명에 귀를 쫑긋한다. 호스피스팀은 인계가 끝났는데, 일반 병실 담당 간호사는 시간이 길어진다. 보호자가 간호사를 부른다. 호스피스 병동 간호사 4명이 동시에 환자에게 뛰어간다. "얘기하는 흐름이 끊기면 빼먹는 부분이 생겨요. 환자에게 문제가 생기게 되죠. 간호사들에게 인계 시간은 서로를 가장 존중하는 시간이에요."

정자영 간호사가 옷을 갈아입고 병원을 나선다. 그제야 카카오톡 메시지를 본다. 그녀의 카톡 소개글은 '매일매일 행복'이다. 3일간의 황금 연휴 첫날 저녁, 그녀는 다음날 근무를 위해 집으로 향한다. 연봉 3800만원. 삼포세대 친구들과 달리 안정된 직장을 얻어 연애도 하고 결혼도 꿈꾸지만, 출산은 저 멀리 있다. 퇴근한 자영씨가 가족과 병원 이야기를 나눈다. 여동생은 대학병원 분만실 간호사다. 동생은 탄생 병동에서 만남을 기다리고, 언니는 임종 병동에서 이별을 준비한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돈벌이가 아닌 사람을 위한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는 행복한 간호사의 꿈을 이야기한다. 그녀의 손에 따스한 주삿바늘이 들려지면 좋겠다.

글 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우원 @ccomark,ccamcy@gmail.com·사진 노순택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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