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통합 경제 '양날의 칼'로 떠오른 이민자 문제

김명지 기자 2015. 9. 2.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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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와 영국을 잇는 유로터널로 통하는 철조망을 뚫고 나가고 있다/블룸버그 제공

이민자 문제가 하나의 유럽을 기치로 출범한 유럽연합(EU)을 둘로 갈라놓고 있다. 난민수용 할당제(난민쿼터제) 수용을 두고 EU 국가들이 첨예한 대립 양상을 보이고 있다.

대부분의 국가에게 이민자 유입은 ‘양날의 칼’이다. 저출산·고령화를 타개하는 데 적정 수준의 이민자는 필요하지만, 과도한 인구 유입은 일자리와 복지 혜택을 빼앗고, 사회 혼란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EU 내에서 난민 쿼터제 합의가 어려운 이유는 여기에 있다. 경기는 좋지만 저출산·고령화가 심각한 독일, 스위스, 덴마크 등은 이민자에 대해 포용적이다. 반면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 폴란드와 같은 신흥 국가에게 이민자는 일자리와 복지 혜택을 빼앗는 위협적 존재다. 실업률이 높은 스페인, 그리스 등도 마찬가지다.

지난 달 27일 헝가리 국경에 인접한 오스트리아 고속도로 갓길에서 7.5t 냉동 트럭이 발견됐다. 트럭 화물칸에 시리아 난민으로 추정되는 71구의 시신이 있었다. 오스트리아 경찰은 이틀 뒤인 지난달 29일 헝가리 접경 지역 고속도로마다 경찰 병력을 배치했고, 29일과 30일 이틀 동안 난민 200명을 적발해 돌려보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헝가리와 오스트리아 국경 지역이 유럽의 난민 문제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지역으로 떠올랐다고 보도했다.

◆ ‘난민 쿼터제’ 놓고 둘로 갈린 하나의 EU

‘냉동트럭 사건’을 계기로 EU 회원국 대표들은 난민쿼터제를 놓고 다시 논의를 벌인다. 지난달 29일 EU회원국과 발칸반도 정상이 오스트리아 빈에서 이를 협의한 데 이어 오는 14일 독일 베를린에서 내무부 장관 회담을 개최한다.

지난달 회의에서 EU 회원국 별로 처한 상황에 따라 난민쿼터제에 대한 찬반이 뚜렷하게 갈렸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회원국들은 공평하게 부담을 나눠야 하며, 난민 문제에 합의하지 않으면 솅겐조약(Schengen agreement)의 유지도 장담할 수 없다”면서 회원국들을 압박했다.

솅겐조약은 EU 회원국 국민들 간의 국경을 넘나드는 자유로운 이동 보장을 골자로 한다. 영국과 아일랜드를 제외한 EU 회원국과 일부 비회원국을 포함해 28개국이 가입돼 있다. 협정이 파기되면, 독일 프랑스 등으로 노동력을 수출해 온 동구권 국가는 타격이 불가피하다.

EU 접경 지역에 있는 회원국인 슬로바키아와 체코 등의 정상들은 메르켈 총리의 발언에 반발하고 나섰다. 로베트르 피초(Robert Fico) 슬로바키아 총리는 “쿼터제가 도입되면, 아랍권에서 유입되는 이민자가 하루에 10만명에 이를 것”이라고 불평했고, 밀로스 지만(Milos Zeman) 체코 대통령은 “필요하다면 군 병력을 동원해서라도 불법 이민자를 추방할 것”이라며 반대의 뜻을 분명히했다. 오스트리아는 ‘사회 혼란’을 이유로 이민을 반대하고 있다.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체코, 헝가리, 슬로바키아, 폴란드 정상들이 오는 4일 프라하에서 만나 쿼터제에 대한 조직적 반대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스페인과 헝가리 등은 지난 6월 회담에서 쿼터제를 공개적으로 거부했다.

EU회원국이 조성한 기금 사용처를 놓고도 각국은 신경전을 벌였다. 보호슬라프 소보트카(Bohuslav Sobotka) 체코 총리는 최근 지역 매체와 인터뷰에서 EU기금을 난민 수용에 쓰자는 제안에 대해서도 “EU기금은 내부 결속을 다지고, 역내 부의 불평등 완화를위해 써야 한다”고 반대 의견을 냈다.

◆ 출산율, 실업률이 각국 입장 갈라

전미 공급관리자협회(ISM)가 1일 발표한 주요 국가별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에서 EU회원국을 난민 쿼터제 찬반 진영으로 나눠 본 결과, 뚜렷한 대조를 보였다. 쿼터제 찬성 입장인 독일의 8월 제조업 PMI는 7월(51.8)에서 53.3으로 올랐다. 같은 기간 덴마크 제조업 PMI도 61.7을 기록해 전달(54.4)와 비교해 급등했다.

반면 반대 진영의 체코 제조업 PMI는 8월 56.6을 기록해 7월과 비교해 0.9포인트 하락했고, 스페인도 8월 제조업 PMI (53.3)가 7월(53.6)보다 낮았다. 헝가리(50.7)와 그리스(39.1)는 전달과 비교해 지수는 상승했지만 지수가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유럽 지역의 8월 제조업 PMI 평균은 52.3이다. PMI가 50 이상이면 경기 확장,50 이하면 경기 위축을 뜻한다.

독일이 난민 문제에 포용적인 이유로는 경기가 좋아 이민자를 받아들일 공간이 큰 점과 함께 낮은 실업률과 출산율이 꼽힌다.AP등 외신에 따르면 올 한해 독일로의 망명 난민 숫자는 8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독일 전체 인구의 1%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독일의 8월 실업률은 6.4%, 전체 실업자 수는 279만6000명으로 통일 직후인 1991년 이후 가장 양호했다.

독일 온라인매체인 도이치벨레(DW)는 “독일은 실업률이 낮지만 출산율도 세계적으로 낮다”며 “이민자는 은퇴를 앞둔 독일의 고령 근로자를 즉각 대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안드레아 나레스 독일 노동부 장관은 “독일은 더 많은 노동자를 필요로 한다”며 “이런 상황에 맞춰 합법적인 절차를 통해 입국하는 난민들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유럽의 이민자 사태가 유럽 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의견이 나오는 것도 이민자 문제가 자국이 처한 경제 상황에 따라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기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는 “EU의 사례는 글로벌화가 양날의 검이란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며 “자유롭게 노동이나 상품, 서비스가 공급되는 것이 경제에 기회가 되기도 하지만, 국가 경제와 생존에 위협이 되기도 한다”고 평했다.

한편 유럽으로 유입되는 난민들의 출신 지역은 중동과 아프리카 등지로 시리아나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처럼 내전을 겪고 있는 국가가 주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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