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스트리밍 업체들이 이룬 '거대한 변화'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2015. 9. 2. 13:1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최근 미국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방송이 등장했다. 오랜 세월 안방극장을 지켜온 ABC·NBC·CBS 3대 공중파 TV나 케이블 TV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인터넷 TV '넷플릭스(Netflix)'가 기존 방송을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세계 최대 종합연예 및 미디어 그룹인 월트디즈니 사가 소유한 스포츠 전문 채널 ESPN은 그동안 불황을 모르는 '황금 방송'으로 통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직원 18만명에 자산 규모 841억 달러에 달하던 디즈니 사의 주가가 최근 ESPN 때문에 폭락하는 이변이 벌어졌다. 발단은 8월5일 밥 아이거 디즈니 회장이 올 2분기 실적과 관련해 'ESPN 구독자 수가 다소 떨어졌다'라고 언급한 것이었다. 100달러를 웃돌던 디즈니 주가가 당일 9% 넘게 폭락했다. 하락세는 이튿날에도 계속됐다.

불황을 모르던 ESPN마저 추락하는 상황에서 케이블 TV 사정은 말할 나위 없다. 미디어 기업이 포진한 나스닥 종합지수는 8월6일 하루 동안 1.62%가 빠졌다. 위성 TV 종합연예 채널 '21세기 폭스'의 주가는 7%, 대형 케이블 TV '비아콤'의 주가는 14% 가까이 폭락했다. 주가가 떨어진 이유는 명료하다. 미국인들이 기존 케이블 TV나 위성 TV 가입을 해지하고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로 급속히 갈아타는 코드커팅(cord-cutting) 현상이 거듭 확인되면서 기존 방송 투자자들이 충격을 받고 있다.

'스트리밍 서비스'는 콘텐츠를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저장하거나 방송사의 중계 시스템으로 전송받는 게 아니라 이용자가 선택한 콘텐츠를 실시간으로 감상하는 것이다. 콘텐츠가 저장되지 않고 스트리밍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복제되었다가 스트리밍이 종료되면 사라진다. 요즘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들은 '미국인의 TV 시청 습관을 바꿔놓았다'고 할 만큼 기존 방송업계에 거대한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이 분야를 주도하는 업체는 선두주자 넷플릭스에 이어 훌루(Hulu)와 아마존닷컴 등이다. CNN 보도에 따르면 미국 전체 텔레비전 시청 가구 가운데 36%가 넷플릭스에 가입했고, 아마존닷컴이 13%, 훌루가 6.5%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 전체 텔레비전 시청 가구의 절반 이상이 스트리밍 서비스 가입자다.

이 가운데 넷플릭스는 1997년 비디오와 DVD 우편택배 사업으로 시작해 현재 세계 최대의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로 자리를 굳혔다. 2008년부터 본격적인 스트리밍 서비스에 뛰어들었다가 그해 2분기에만 신규 가입자 328만명을 확보했다. 현재 전 세계에서 6500만명이 가입해 있다. 불과 3년 전만 해도 가입자 수가 지금의 절반이었던 점을 떠올리면 넷플릭스의 성장세가 얼마나 폭발적인지 알 수 있다. 오는 9월에는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일본에 진출할 예정이다. 투자전문 자문사 FBR 캐피털 마켓은 '넷플릭스는 향후 1년 내 ABC·NBC· CBS·폭스 등 미국 주류 방송사의 고정 시청자를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많은 고객을 확보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기존 업계도 스트리밍 서비스로 '자구책' 마련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에는 케이블 TV와 위성 TV가 넘볼 수 없는 매력이 있다. 넷플릭스를 예로 들면, 가입하는 첫 달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가입자는 기본형(7.99달러), 표준형(8.99달러), 프리미엄(11.99달러)의 세 가지 가격 옵션을 선택한다. 가입 시 제공되는 영화만 해도 9300편이 넘고, 2000개에 달하는 TV 시리즈물을 감상할 수 있다. 게다가 넷플릭스는 자체 제작한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House of Cards)>, 코미디물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Orange is the New Black)> 등으로 인기몰이가 한창이다.

이런 사정은 경쟁사인 훌루와 아마존닷컴도 마찬가지다. 훌루는 매달 7.99달러를 내면 자체 제작한 영화는 물론 2900개 이상의 TV 시리즈물을 감상할 수 있다. 아마존닷컴은 연회비 99달러(월평균 8.25달러)만 내면 4만 개에 달하는 영화와 각종 TV 시리즈물, 자체 영화를 볼 수 있다.

이에 비해 케이블 TV 혹은 위성 TV의 월 시청료는 80~100달러 선이다. 10분의 1 가격에 각종 드라마와 영화를 접할 수 있는 상황에서 케이블이나 위성 TV 가입자의 코드커팅은 불가피하다. 특히 30대 이하 청년층은 언제 어디서든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를 통해 원하는 콘텐츠를 저렴한 가격으로 접할 수 있다는 이점 때문에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에 몰린다.

이런 변화를 가능케 한 배경으로는 초고속 인터넷의 성장을 꼽을 수 있다. 대표적 케이블 TV 업체 컴캐스트는 초고속 인터넷과 통신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인터넷 가입자가 2200만명을 넘어섰다. 컴캐스트 가입자는 케이블 TV만큼 선명한 화질로 스트리밍 방송을 즐길 수 있다.

방송 환경이 바뀌면서 케이블 TV, 위성 TV는 생존 차원의 위기감이 팽배하다. 케이블 TV 시청자 수는 2011년부터 1% 감소세가 시작된 뒤 해마다 증가하기 시작하더니 지난해 9%까지 늘었다. 미디어 전문 조사기관 SNL 케이건 자료에 따르면 올 2분기 케이블 TV 가입을 해지한 고객은 62만5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56만6000명보다 많았다. 위성 TV의 대표 주자 디렉트TV의 경우, 올 2분기 해지 건수가 13만3000건에 달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배 이상 많았고, 경쟁 업체인 디시 네트워크도 18만7000명이 가입을 해지했다.

기존 방송업계는 뒤늦게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영화 전문 케이블 TV HBO는 지난 3월부터 월 구독료 14.99달러에 스트리밍 서비스인 HBO 나우를 시작했고, 공중파 CBS는 월 5.99달러에 스트리밍 서비스 올액세스(All Access)를 시작했다. 디시 네트워크도 지난 2월부터 월 구독료 20달러에 인기 TV 시리즈물과 영화 등을 감상할 수 있는 스트리밍 서비스 슬링TV를 선보여 최근까지 10만5000명의 가입자를 확보한 상태다. 케이블 TV 컴캐스트는 월 구독료 15달러에 영화와 TV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바야흐로 막강한 기존 방송사들과 신흥 강자로 떠오른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들 간에 전면전이 시작됐다. 아직까지는 싸움에서 누가 최종 승자로 남을지 예단하기 힘들다. 당장 기존 방송사들이 밀리고 있기는 하지만 ABC·CBS ·NBC 등 공중파 방송과 케이블 TV에는 9500만명에 달하는 유료 시청자가 있다. 미디어 분석가들은 지난 몇 년간 유료 시청자 가운데 TV를 중단한 사람이 고작 2%에 그친 사실을 들어 전통 TV 시장의 몰락을 시기상조로 본다.

연평균 480억 달러에 달하는 시청료 수입에 의존해온 케이블 TV 업체 처지에서 기존 고객이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로 급속하게 이동 중인 사실은 걱정거리다. 보스턴 컨설팅그룹 관계자는 CNBC 방송에 나와 '텔레비전은 여전히 최고의 광고 매체이지만 광고주와 투자자들은 기존 방송업계의 하락세를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방송의 지각변동이 불가피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에 맞설 수 있는 대안을 내놓지 못하면 방송업계의 앞날이 불투명하다는 뜻이다.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 webmaster@sisain.co.kr

싱싱한 뉴스 생생한 분석 시사IN Live - [ 시사IN 구독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