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탈한 농구계 "나라 위해 뛰는데 실명 공개라니.."

CBS노컷뉴스 임종률 기자 입력 2015. 9. 2. 10:43 수정 2015. 9. 2.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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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불법 스포츠 도박 혐의로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농구 국가대표이자 SK 간판 가드 김선형.(자료사진=KBL)
2015-2016시즌 개막을 코앞에 둔 프로농구에 또 다시 비보가 날아들었다. 전, 현직 선수들이 불법 스포츠 도박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는 소식이다. 지난달 28일 경찰 발표에 따라 이미 몇몇 선수들은 실명이 거론됐다.

여기에 시즌 개막을 꼭 10일 앞둔 가운데 리그 대표 선수까지 불법 스포츠토토에 참여했다는 혐의로 이름이 밝혀졌다. 정규리그 MVP 출신이자 국가대표 가드 김선형(27 · SK)이다.

경기지방경찰청 제2청 사이버수사대는 2일 김선형이 불법 스포츠토토 사이트에서 베팅하는 등 전·현직 스포츠 선수 불법 스포츠 도박 사건에 연루된 정황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지난달 밝혀진 안재욱(동부), 김현민(케이티), 장재석(오리온스) 등에 대한 수사와는 차원이 다르다.

김선형은 KBL의 얼굴이나 다름없다. 질풍같은 드리블과 탄력 넘치는 덩크슛, 고난도 더블 클러치 등 화려한 기술로 팬들을 사로잡았다. 두 시즌 연속 올스타전 MVP에 오른 이유다. 더욱이 태극마크를 달고 지난해 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이끈 국가대표다.

이런 김선형에 대한 수사는 앞서 언급한 선수들과는 급이 다르다. 개막을 꼭 10일 앞둔 KBL 시즌에 미칠 영향이 어마어마하다. 이런 가운데 김선형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인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대학 시절만이면 처벌 어려워

농구계는 허탈과 침통에 빠졌다. 김영기 한국농구연맹(KBL) 총재는 최근 기자 간담회에서 "단신 외인 제도 부활과 경기 규정 변경 등 정말 재미있는 시즌을 치르려고 준비했는데 또 다시 불법 스포트 도박 수사 소식이 들려왔다"며 안타까움을 금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혐의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실명이 공개된 점이 아쉽다는 의견이다. 한 농구계 인사는 "사실 전창진 전 KGC인삼공사 감독도 혐의가 입증된 게 아니라 수사가 진행 중에 이름이 밝혀져 일파만파 파문이 커졌다"면서 "이번에도 전, 현직 선수들이 수사 중인데 실명이 공개됐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더욱이 김선형, 장재석 등은 프로 이전 대학 시절 불법 스포츠 도박을 했다는 혐의다. 2012년 국민체육진흥법이 불법 스포츠 도박과 관련해 개정되기 전의 일이다. 한 농구계 인사는 "만약 그렇다면 소급금지 원칙에 따라 이에 대한 처벌이 불가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물론 불법 스포츠토토 베팅은 엄연한 범죄 행위다. 어떤 이유에서든 변명의 여지가 없다. 혐의가 입증되면 그에 준하는 처벌을 받아 마땅하다. 법 적용의 소급금지로 처벌이 어렵다면 KBL 자체적인 징계도 따라야 한다.

그러나 혐의 입증이 아닌 수사 단계에서부터 당사자들의 이름을 공개되는 것은 논란이 될 소지가 있다. 국민의 알권리가 중요하다고 하나 이들은 극악무도한 범죄자는 아니다.

▲"협조 안 하겠다는 게 아닌데…"

'나도 그렇고, 선형이도 그렇고' 지난 7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진행된 외국인 드래프트 전날 경찰의 재소환 계획이 발표되면서 때아닌 승부조작 파문에 휘말려 인터뷰까지 하게 됐던 문경은 SK 감독.(자료사진=사진공동취재단)
특히 김선형은 현재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대회에 출전 중이다. 오는 9월 아시아선수권대회의 전초전 격인 윌리엄 존스컵 국제대회 국가대표로 뛰고 있다. 선수는 나라를 위해 뛰고 있는데 국가가 자칫 범죄자로 낙인찍고 있는 역설적인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실명 공개는 대회를 마치고 충분히 혐의가 입증된 뒤에도 늦지 않은 일이다.

김선형이 프로 입단 이후에도 불법 스포츠 도박을 했거나 더 나아가 승부 조작에까지 관여했다면 처벌을 면할 수 없다. 그러나 이는 향후 경찰 수사를 통해 밝혀질 일이다. 단순히 대학 시절의 일일 수 있다.

KBL 관계자는 "죄가 없다고 선수를 두둔하는 게 아니다"면서 "혐의가 입증되면 규정에 따라 엄정하게 징계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하지만 때와 상황이 있는 게 아닌가"라면서 "경찰 수사에 최대한 협조적으로 임했는데 이렇게 선수들의 실명이 공개돼서 허탈하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전창진 전 감독 수사 때도 경찰 발표 전에 실명이 공개되는 일이 벌어졌다. 2개월 넘게 수사 끝에 경찰이 구속 영장을 신청했지만 검찰은 증거 불충분으로 이를 기각해 법원 심사조차 받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전 감독은 자진사퇴했고, 현재 수사는 답보 상태다.

특히 경찰은 지난 7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KBL의 외국인 드래프트 전날 수사 결과를 발표했고, 문경은 SK 감독의 재소환 계획까지 밝혔다. 이 때문에 잔치가 돼야 할 외국인 드래프트 행사장은 초상집 분위기가 됐고, 문 감독이 현지 시각으로 자정이 넘어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CBS노컷뉴스 임종률 기자] airjr@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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