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도 반색하는 승전일, 우리에겐 가슴 아픈 분단일

CBS노컷뉴스 김광일 기자 2015. 9. 2.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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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광복을 맞은 국민들이 만세를 외치고 있다.
꼭 70년 전인 1945년 9월 2일.

패전한 일본의 시게미쓰 외무대신은 당시 도쿄만에 정박해있던 미국 전함에 다리를 절뚝거리며 오르더니 이내 항복 문서에 서명했다.

이로써 태평양 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의 막이 내렸고, 역사는 이날을 연합국의 승전일로 기억한다.

특히 중국은 당시 건국 전이었음에도 연합국에 중화민국이 포함되었다는 이유로 전승절을 정해 기념하고 있다.

반면 일본으로부터 가장 가혹한 식민지배를 당한 우리나라는 승전을 자축하지 못하고 남의 나라 전승기념행사를 구경만 하는 상황.

중국 일대에서 외롭게 항일 투쟁을 벌였던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연합국 대열에 끼지 못한 까닭이다.

1941년 일본의 진주만 침공 직후 일본을 향해 선전포고를 하기도 했지만 미국과 영국 등으로부터 연합국의 지위를 인정받지 못한 것.

오히려 일본이 서명한 항복 문서는 우리 민족의 가슴 아픈 역사의 서막이기도 했다.

한반도가 분단 체제로 나아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일반명령 제1호'가 바로 이 항복 문서의 '부록'에 담겨있었기 때문.

이 명령서는 '만주와 북위 38도 이북의 조선 등에 있는 일본국 지휘관과 모든 부대는 소련 극동 사령관에게 항복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따라 남한에는 미군이, 북한에는 소련이 각각 진주하면서 한반도의 허리가 갈렸고, 이후 민족의 운명은 우리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강대국들에 의해 급박하게 전개됐다.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문정인 교수는 "일반명령 1호에 의해 남한과 북한의 분단이 시작됐다"며 "대부분의 역사가는, 일본이 자신들의 영토를 온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결국 조선반도를 분단시켰다고 평가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연합국 승리'라는 감상에 취하기보다 '남북 분단'이라는 과제를 상기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박태균 교수는 "분명 우리나라가 이날 일제로부터 독립된 건 축하할 일"이라면서도 "하지만 남북이 분단으로 나아갈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이때 만들어졌다는 점 또한 기억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족문제연구소 이준식 연구원도 "분단을 고려하면 우리는 완전한 해방을 맞았다고 보기 어렵다"며 "오히려 분단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CBS노컷뉴스 김광일 기자] ogeerap@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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