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다가오는데.. 한우의 눈물

안현덕기자 2015. 9. 1.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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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 한우농가 가보니사육 두수 줄어 가격 치솟아불황에 소비 감소 우려 커져김영란법 시행땐 타격 더 클듯
지난달 28일 경상북도 의성군에 위치한 한우농장에서 농장주가 축사 속 소들을 바라보고 있다. /의성=권욱기자

추석을 한 달 앞두고 지난달 28일 찾은 경북 의성군 다인면 상원농장. '의성 마늘 소' 출하 준비로 부산스럽고 한창 들뜬 분위기여야 할 명절 대목이지만 농장 안은 무척 한산했다. 오전8시 아침 사료 주기를 마친 때라 소들은 축사에서 한가로이 있었다. 명절 선물용 출하로 바쁠 것이라던 예상과 달리 농가는 고요함 그 자체였다. 한우 출하량이 평소보다 2배 이상 증가하는 명절 대목 분위기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한우 사육 두수가 줄어들면서 한우 가격이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는 탓이었다. 특히 '한우 가격 상승→도축 두수 감소→한우 가격 추가 상승→소비 감소'라는 악순환으로 "불황에 제대로 팔 수 있겠느냐"는 걱정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도, 한우 농가 농민의 미소도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목장주 신종경(54)씨의 얼굴에도 근심이 가득했다. "품질은 최고인데…"라며 말끝을 흐리는 그의 표정에서는 명절 대목을 앞둔 기대감보다 걱정과 아쉬움이 역력했다. 한우 가격 급등에 따른 소비 감소 우려로 혹여 정성껏 키운 소를 제값에 팔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지난 1994년 이후 21년간 의성 마늘 소를 키우며 '한우 지킴이'로 살아온 그였지만 '한우 가격 급등→소비 감소→농가 부담 증가'는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었다.

신씨는 "구제역 파동 이후 가장 어려운 시기"라며 "추석 대목에 맞춰 출하할 소를 준비하고 있지만 기대는 예년만 못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올 초 의성군과 롯데백화점이 업무협약을 맺을 때만 해도 출하량이 크게 늘 수 있다는 생각에 신이 났다"며 "하지만 추석을 앞두고 한우 가격이 크게 출렁이면서 실제 제대로 판매될지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는 처지"라고 덧붙였다.

의성 마늘 소는 마늘과 그 줄기까지 통째로 갈아 만든 분말을 사료에 섞어 먹인다. 덕분에 면역력이 높아 보통 한우보다 항생제 투여량이 최대 45% 적다. 또 종축개량협회에 등록한 우수 혈통의 소를 30개월 이상 키운 뒤 도축해 육질이 좋고 육즙이 풍부하다. 통상 도축 시기는 생후 30~36개월로 이전에 잡은 소보다 고급으로 평가한다. 게다가 위생요소중점관리기준(HACCP) 인증을 받은 작업장에서 부위별로 분리·포장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 그만큼 키우는 단계에서 출하까지 두 배로 정성을 쏟아 명품 한우를 내놓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지난해 한가위 때만 해도 1만8,929원이던 한우 1++A ㎏당 가격이 최근 2만1,552원으로 13.85%나 껑충 뛰면서 올 한가위에 빨간불이 켜졌다. 연이은 경기침체로 소비자 사정이 여의치 못한 가운데 사육 두수 감소 탓에 값만 치솟으면서 한우 판매가 감소할 수 있어서다. 특히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에 한우·과일·굴비세트 등 선물용 농·축·수산물 상품까지 뇌물로 간주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어 한우 농가의 시름이 날로 깊어지고 있다. 연간 한우 소비량에서 명절 수요가 차지하는 비중이 50%가량으로 김영란법이 그대로 시행될 경우 한우 농가의 타격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는 "송아지나 소 한 마리 값은 수년째 제자리걸음인데 한우 농가의 현실은 갈수록 어려워진다"며 "롯데백화점이라는 고정 매출처를 확보해 여느 농가보다는 나은 편이지만 그렇다고 올 추석 호황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신씨는 한우 농가의 상황을 바꿀 방안이 절실하다며 선결 과제로 수익구조의 변화를 꼽았다. 한우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한우 번식우 마리당 판매가격은 180만1,000원으로 사육비인 238만7,000원을 크게 밑돈다. 사료가격·인건비 상승 등으로 한우 한 마리를 정성껏 키워 팔아봤자 손해만 보고 있는 것이다. 최근 한우 농가들이 농장 대형화로 수익구조를 개선하고 있지만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신씨는 "사료 가격은 오르고 일손 구하기는 어렵다 보니 주위에서도 한우 키우기를 포기하는 농가가 속출하고 있다"며 "김영란법이 통과된다면 수년 내 한우 농가가 천연기념물 수준으로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안현덕기자 always@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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