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끝뉴스] 미래부 'X-프로젝트'엔 물음표만 한가득

임소형 2015. 9. 1.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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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창조과학부의 'X-프로젝트'. 홍보영상 캡처.

"180억원? 정부가 지원하는 연구비로 크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투입된 국가 연구비 규모를 생각해보라. 과거 연구개발 비용 집행한 것 중에 무슨 결과가 나왔나. 과학이 풀 수 있는 문제는 푸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1일 서울 양재동 엘타워에서 미래창조과학부 주최로 열린 'X-프로젝트 X문제 발표회 및 시상식'에서 이건우 X-프로젝트 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 위원장이 작심한 듯 과학계에 쓴 소리를 쏟아 냈다.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이자 공과대학장인 그가 공식 행사 에서 수십년 간 이뤄진 국내 과학기술 연구개발(R&D) 성과와 의미를 깎아 내렸다.

이날 행사는 미래부가 지난 6월 30일부터 7월 31일까지 대국민 공모전을 통해 발굴한 국민 생활과 밀접한 창의적 문제, 현대인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들을 반영한 문제, 우리 사회의 최근 이슈와 관련있는 문제들을 발표하고 시상하는 자리였다. 미래부와 추진위는 이를 'X문제'라고 부른다. 추진위가 밝힌 X문제들은 '여전히 모호하지만 참신하며 도전적이고 연구하면 많은 사람이 덕을 볼 만한 질문'들이다.

이 위원장의 발언은 "국가 연구비를 투입하는 연구과제를 대국민 공모 방식으로 선정해 성공한 사례가 선진국에서도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대한 부연설명이었다. "180억원을 그렇게 함부로 집행해도 되겠느냐"는 일각의 부정적 시각을 의식하고 꼭 좋은 성과를 내겠다는 의지를 표현하기 위한 발언으로 보인다.

그러나 듣기에 따라 과학기술인들의 오해를 살 수 있다. 이 위원장은 "풀(해결할) 의미가 없는 문제에 대한 연구가 너무 많았다"며 "3,000만원이면 가능한 연구과제를 (정부에) 지원 신청할 때 1억원으로 써냈던 게 그 동안의 연구 풍토"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물론 이 위원장의 발언에 일리가 있다. 최근 과학계는 쏟아부은 연구비에 비해 산업 현장에 실질적으로 기여한 기술이 많지 않다는 점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우리 기술이 국민이 체감하는 변화를 이끌어낸 사례도 드물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최근 정부가 나서서 R&D 성과의 산업화를 독려하고 있다.

문제는 이 위원장이 지적한 국내 R&D의 한계를 해결하려는 목적으로 미래부와 추진위가 세계 어느 나라에도 유례 없는 X-프로젝트를 들고 나왔다는 점이다. 이를 바라보는 과학계의 시선에 기대보다 우려가 더 많이 들어 있다. "국민이 절실하게 느껴서 선정됐다"는 문제들과 선정 과정을 들여다 보면 과학계 우려를 짐작할 수 있다.

미래부는 "공모전을 통해 X문제 후보를 6,000여개 발굴하고, 전문가와 국민들이 함께 최종 50개 X문제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가령 '사교육 없이도 만족스러운 공교육이 이뤄지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란 질문을 과학으로 풀 수 있을 지 의문이다.

미래부와 추진위는 대학 강의 무료 수강 프로그램, 가상현실을 활용한 교육 환경 구축 등을 예로 들었다. 하지만 이런 기술이 이미 활용되는 마당에 사교육 감소를 이끌어 낼 수 있을 지 의아스럽다.

'꿈, 기억, 감정을 측정 및 저장ㆍ제거할 수 있을까?'란 문제에 대해서도 과학자들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꿈과 기억과 감정은 뇌과학 영역이다. 지금도 전 세계 수많은 뇌과학자들이 유사 주제를 연구하며 논문을 쏟아내고 있는 마당에 단기간 연구로 이를 해결할 지는 미지수다. 참신성 등을 높이 평가해 X문제 대상 수상작으로 선정했다는 한 위원조차 "실현 가능할 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X-프로젝트 필요성을 강조하며 "현실적으로 가능해 보이는 연구만 지원해온 게 과학기술 정책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실현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에 도전해보자는 게 X-프로젝트의 목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유사한 시도는 사실 지난 이명박 정부 때부터 있었다. 실패 위험이 크지만 기발하고 도전인 주제를 선정해 과감하게 연구비를 지원하는 '모험연구'를 추진했지만, 현 정부 들어 다른 연구사업들과 통합됐다. 모험연구 사업을 진행했던 한국연구재단은 "'도전'이나 '모험'의 기준이 모호하고 기술적 한계 등으로 기존 연구들과 차별성이 줄었다는 과학계 비판을 받아들였다"고 이유를 밝혔다.

과학자들이 직접 설계한 모험연구도 결국 취지를 살리지 못했는데 하물며 초등학생을 포함한 일반인의 궁금증 해결에 국가 연구비를 지원해서 "사회를 변화시킬" 성과를 단기간에 얻어낼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

미래부와 추진위가 50개 X문제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해당 문제와 관련된 선행연구를 조사한 방식도 도마에 올랐다. 대규모 국가 연구비를 지원하는 연구를 선정할 때 기존 발표 논문들을 검색해 중복을 최대한 배제하는 게 기본이다.

그런데 선정된 문제 다수의 선행연구로 미래부와 추진위는 과학 논문이 아닌 언론매체에 실린 기사를 들었다. 기사가 보도됐다는 건 해당 주제에 대해 이미 일정 수준의 연구 성과가 알려졌다는 의미다. 가령 '종이처럼 얇고, 모양이 변형되는 컴퓨터를 만들 수 있을까?'라는 X문제가 결국 의미하는 '플렉서블' 전자제품 제조 기술은 현재 과학자뿐 아니라 기업도 앞다퉈 뛰어들어 상용화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한 추진위 위원은 "선행연구가 X문제를 딱 만족시키진 않는다"며 "전혀 새로운 결과를 만들기 보다 X문제 해결의 단초가 되는 연구가 있는지 찾아본 것"이라고 해명했다.

미래부와 추진위는 50개 X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참신한 아이디어가 있는 연구팀을 공모해 향후 2년 동안 연구비를 지원할 계획이다. 기존 연구자 말고도 일정 수준의 연구 역량을 갖춘 일반 개인과 단체에게도 연구 기회가 열린다. 포함하는 기술의 범위가 넓고 의미도 모호한 문제가 많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도출할 수 있는 연구자 선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과학계는 이 과정에서 "과학과 비과학의 경계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주류 과학이론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새로운 이론을 만들었다는 등 개인적, 일방적인 주장을 내세우는 이른바 '재야과학자'들이 대거 국가 연구비 수혜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X-프로젝트 진행에 관여하는 전문가들 가운데 과학계에서 '비과학적'이라고 외면받은 이론들을 지지하거나 업적으로 내세운 이들도 일부 있다.

국민들이 절실하게 원하는 문제를 과학으로 해결하고, 과학기술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내겠다는 취지 자체는 좋지만 이 취지를 제대로 살리려면 미래부와 추진위는 과학계의 우려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

임소형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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