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 학원차량 30여대가 초등학교 교문 앞으로 몰려든 이유

이병희 기자 2015. 9. 1.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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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오전 7시 30분쯤 서울의 A초등학교 주위로 승합차 30여대가 줄지어 늘어섰다. 잠시 뒤, 트레이닝복을 입은 건장한 체구의 사람들이 차에서 내려 교문 주위를 서성였다.

등교 시간에 이 모습을 본 일부 초등학생들은 겁을 먹은 듯했다. 아들을 데려다주러 왔다가 현장을 봤다는 한 학부모는 “건장한 사람들 수 십 명이 몰려있는데 나도 주눅이 들더라”고 했다. 한 지역 주민의 설명도 비슷하다. 그는 “교감선생님이 교문에 나와 ‘무슨 일이냐’고 묻자, ‘교장과 만나러 왔는데 당신과는 할 이야기가 아니니 빠지라’고 하더라”고 했다.

교문 주위에 모인 이들은 그 지역 태권도 학원 관장과 사범들이었다. 경기지역에서 온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A초등학교에서 교육과정의 하나로 태권도 수업을 진행하려 하자 이를 반대하기 위해 모인 것이다. “학원 운영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이유였다.

이 초등학교는 9월부터 혁신학교로 지정됐다. 혁신학교는 일부 수업을 교사들의 재량으로 계획할 수 있는데, 교사들은 사물놀이, 전통예절 등 여러 후보군 가운데 태권도 수업을 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한 학생이 한 달에 한 번 정도 태권도 수업을 받도록 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학교 관계자는 “그 정도면 학원에 피해를 줄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반발이 심할 줄 몰랐다”고 했다.

이 학교 교장이 태권도 관계자들과 처음 만난 건 지난 21일이었다. 학교 관계자는 “당시 태권도 관장님과 사범님에게 재능 기부형식으로 아이들을 지도해 줄 수 있는지 의견을 타진했는데, 태권도 학원 대표자들은 반대 입장을 밝혔다”고 했다. 이후 28일에 다시 만나 이야기를 하기로 했는데, 당일이 되자 30여개 태권도 학원 관계자들이 단체로 학교에 몰려와 항의를 했다는 것이다.

이 초등학교는 결국 태권도 교육을 하지 않기로 했다. 서울시 북부교육지원청의 한 장학사는 “사실 체험학습 수준이었는데, 태권도 학원 관계자들이 교육과정에 대한 이해가 다소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항의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조금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이에 대해 해당 지역 태권도협회 관계자는 “협회 차원에서 한 일이 아니고 인근 도장 관장님들이 자발적으로 모인 일이어서 우리도 자세한 상황은 모른다”고 했다. 태권도 수업 반대 의견을 전하러 당시 초등학교에 갔다는 B학원 관장은 “우리 쪽에선 생계가 걸린 문제여서 우리 입장을 전하기 위해 찾아간 것일 뿐”이라며 “위협하거나 분위기를 험하게 만들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했다. 그는 다만 “학원차 여러 대가 서 있고, 사람들이 몰려있다 보니 사정을 모르시는 학부모들이 보셨다면 다소 불편했을 수 있을 것”이라며 “당시 소리를 지르거나 다른 사람에게 험한 말을 한 사람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또 다른 태권도학원 관장은 “학교가 아이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친다는 뜻은 좋지만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학원의 입장도 있다”며 “동네 학원들도 힘든 상황에서 학교에서 무료로 재능기부까지 요청하면서 반발이 더 커진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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