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에게 주식시장 폭락 책임 '중국판 미네르바'
중국 정부가 유언비어 유포 혐의로 한 경제 전문지 기자를 체포한 뒤 그를 TV방송에 출연시켜 ‘고해성사’를 시킨 것을 놓고 “주식시장이 폭락한 책임을 개인에 떠넘기려 한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중국 최대의 경제지 중 하나인 재경(財經)의 왕샤오루 기자는 지난달 25일 중국 공안에 체포됐다. 지난달 20일 발행된 잡지에서 ‘증권감독위원회가 시장 안정화 자금의 출구 전략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는 이유에서다. 중국 공영 신화통신은 “왕 기자가 객관적인 근거 없이 풍문에 바탕해 기사를 썼다고 인정했다”고 보도했다.
왕 기자는 지난달 31일 중국 CCTV에 출연해 “이런 민감한 시기에 그처럼 시장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는 기사를 내보내지 말았어야 했다”면서 “이목을 끌기 위해 중국과 주식 보유자들에게 그런 커다란 손실을 안기지 말았어야 했다”고 사과문을 발표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왕 기자가 매우 피곤한 표정이었다고 전했다.
왕 기자의 공개사과에 대해 중국 공안 당국이 언론 통제에 나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일종의 희생양을 내세워 현 지도부의 정치적 위기를 타개하려는 목적이라는 해석이다.
중국 정부는 이전에도 중국 공산당 내부문서를 유출한 언론인 가오유를 비롯해 벤처사업가 찰스 셰, 2년 수감 끝에 지난 6월 풀려난 피터 험프리 서롄컨설팅 사장 등에게 이번과 비슷한 ‘고해성사’를 시킨 바 있다.
런던 킹스대의 에바 필스 중국법 교수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이전부터 중국 정부가 인권운동가나 언론인, 변호사들을 대상으로 이런 ‘고해성사’를 강요해왔다”고 설명하면서 “전형적인 시진핑스러운 짓”이라고 덧붙였다.
왕샤오루의 사과가 방송을 탄 뒤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치아오무 베이징 외국어대학 교수는 “이 사건은 본질적으로 정치적인 이슈”라면서 “중국 정부는 주식 시장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희생양을 찾는 것”이라고 봤다. 데이비드 반두르스키 홍콩대 교수는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일은 보도의 사실여부와 관계없이 그저 정치적인 영향력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면서 “보복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국제 언론인 단체 ‘국경 없는 기자회'는 홈페이지를 통해 왕샤오루 기자를 석방하라고 요구했다. 이 단체는 “경제지 기자 한 명에게 주가폭락의 책임을 묻는 건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중국 주식시장 폭락에 대해 중국 공영 언론은 보도하지 않고 있다. 지난 7월 유출된 중국 정부의 언론사들에 대한 지령에는 ‘분석 기사를 쓰지 말고, 시장 판도에 대해 추측하거나 분석하지 말 것. 공황이나 슬픔을 과장하지 말 것. 슬럼프, 폭락, 추락 등의 단어를 사용하지 말 것’이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이 2008년 금융위기 때의 ‘미네르바 사건’을 연상시킨다는 지적도 있다. 당시 검찰이 미네르바라는 필명으로 다음 아고라에서 활동하던 인터넷 논객 박모씨를 허위사실유포 혐의로 구속했다. 박씨가 올린 글이 ‘외환 시장 및 국가신인도에 영향을 미쳤다’는 이유에서였다. 박씨는 2011년 1월 법원의 무죄 선고에 대해 검찰이 항소를 취하하면서 무죄가 최종 확정됐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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