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사이에 낀 한국경제 "9月 고비"

김태근 기자 2015. 9. 1.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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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성장, 기댈 곳은 내수뿐".. 100兆 풀고 세금 내려 소비 살린다] 中 '위안화 절하' 美 '금리인상' 헤게모니 싸움에 몸살 정부 "성장률 3% 사수" 수출 대신 내수 살리기에 총력 崔부총리 "추가부양책 뭐든 가져오라" 경제부처 채근 -이달이 성장률 최대 고비 그동안의 경기부양책 효과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시점 코리아 그랜드 세일 등 통해 추석연휴 소비 활성화 기대 -전문가 "근본적 해법 필요" "내수 부양책 필요하지만 부채 해소·新산업 육성 등 구조개혁에 당장 나서야"

지난 28일 서울 여의도 NH투자증권 15층 외환 트레이딩룸. 오전 10시가 다가오자 정적이 돌았다. 이전엔 외환시장이 열리는 오전 9시부터 한 시간가량이 외환 트레이더들이 가장 바쁜 시간이었다. 최근 외환시장은 오전 10시 15분부터 약 1시간 동안이 가장 바쁘다. '오전 10시 15분'은 중국 인민은행 산하 외환거래센터가 그날의 '기준환율'을 알리는 시각이다. NH투자증권 FX트레이드팀 이윤재 팀장은 "8·11 충격(중국의 위안화 기습 절하) 이후 우리나라 외환시장의 거래 지형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오전 10시 15분이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시각이 됐다"고 했다.

수십년 동안 달러 흐름만 살피던 국내 외환 시장에서 '위안화'라는 초강력 신생 변수가 등장하면서 외환 트레이더들의 머릿속이 한층 복잡해졌다. 한국은행 박준서 외환시장팀장은 "중국 위안화의 변동 폭이 커지면 환율 움직임을 예측하기가 더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중국발 충격과 혼돈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에 영향을 미쳤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번 사태(중국발 쇼크)는 '중국이 기침하면 세계가 독감에 걸린다'는 명제가 적용된 금융시장 사상 최초의 사건이었다"고 보도했다. 특히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중국발 리스크(위험)에 가장 취약한 나라로 꼽힌다.

중국의 위안화 절하 조치가 미국의 금리 인상을 좌절시키기 위한 것이란 해석까지 나오는 가운데, 미국 움직임도 예사롭지 않다. 중국발 금융 불안으로 9월 금리 인상 가능성은 물 건너갔다는 전망이 대세를 이뤘지만, 스탠리 피셔 연방준비제도이사회 부의장이 이런 전망에 어깃장을 놓는 폭탄 발언을 했다. 그는 지난 29일 "통화정책 정상화(금리 인상)를 위해 물가상승률이 (목표치인) 2%에 도달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겠다"면서 9월 금리 인상의 불씨를 되살렸다.

세계 양대 경제 대국(G2)인 미국과 중국이 각각 '금리'라는 창(미국)과 '환율'이라는 방패(중국)를 앞세워 헤게모니 다툼을 하는 형국이다. 두 거인 싸움에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안은 고조되고, 그 여파로 신흥국에서 막대한 자금이 빠져나가 한국을 포함한 신흥국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정부도 경제성장률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경기 부양을 위한 조치라면 무엇이든 가져오라"며 경제 부처들에 추가 부양책을 채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과 중국 두 거인의 신경전이 만들어낸 최근의 글로벌 금융 불안은 우리나라 실물 경제에도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우선 수출이 맥을 못 추고 있다. 중국 수출 비중이 26%에 달하는 우리로선 중국의 경기 둔화가 치명적이다. 우리나라의 수출 증가율은 올해 들어 7월까지 내리 마이너스다. 8월 수출 실적은 마이너스 폭이 더 클 것으로 정부는 내다본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지난 28일 보고서에서 "중국의 경기 둔화로 한국의 제조업 수출이 타격을 입고 기업과 소비자의 소비 심리가 위축될 것"이라며 한국의 내년도 성장률 전망치를 3%에서 2.5%로 낮췄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중국 성장률이 1%포인트 하락하면 한국 성장률이 최대 0.17%포인트 떨어진다고 분석했다. 중국 의존형 경제가 득(得)에서 실(失)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 성장률 3% 사수 총력전

정부는 9월을 올해 성장률 관리의 최대 고비로 보고 있다. 3% 성장률은 세수(稅收) 증가로 재정 건전성을 유지할 수 있는 보루이자, 우리 경제의 잠재력에 걸맞은 최소한의 성장 수준이다. 대외 신인도가 중요한 한국 경제로선 급격한 저성장과 재정 건전성 악화라는 외국 투자자들의 의구심을 털어내기 위해서라도 3% 성장 달성이 중요하다.

정부가 희망을 품는 곳은 내수(內需)다. 지난해 한국 경제는 3.3% 성장했는데 수출은 1%포인트, 내수는 2.3%포인트 기여했다. 한은이 지난 7월 이전에 올해 3.1% 성장을 전망했을 당시에도 수출(1%포인트)보다 내수(2.1%포인트)의 기여도가 더 높을 것으로 전망됐다. 정부가 특히 9월을 기대하는 이유는 그동안 쥐어짜 낸 경기 부양책의 효과가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정부에선 구체적으로 3가지 정책의 파급 효과에 기대를 걸고 있다.

첫째, 자동차 개별소비세 인하 조치다. 정부는 이 감세 조치 하나로 3분기 성장률을 0.1%포인트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한다. 게다가 국내 주요 자동차 메이커들이 1일부터 세금 인하에 더해 추가 할인 행사에 나서 소비량이 확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가 높다. 자동차는 국내 소매 판매액의 10%에 달할 정도로 덩치가 큰 소비 시장이고, 과거 세금을 내렸을 때 평소보다 10~30%가량 소비량이 늘어난 것도 정부가 기대하는 대목이다.

둘째, 추석 연휴 소비 진작 효과다. 정부는 공무원들의 가을휴가를 유도하고, 코리아 그랜드 세일을 확대해 연휴 효과를 극대화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추석 연휴가 토·일 포함해 4일이어서 길지는 않지만, 가족이나 친지들과 함께 외식이나 가까운 곳으로 여행하기 좋은 기간이라 광복절 연휴를 능가하는 소비 확대 효과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광복절 연휴로 소비 지출 규모가 2조원 늘고, 이 같은 소비 지출로 3조8500억원에 이르는 생산이 유발될 것으로 추정한 바 있다.

마지막이 재정 집행 확대다. 기재부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 재정 집행 계획 313조3000억원 중 7월까지 206조5000억원을 집행했다. 앞으로 100조원 넘는 돈이 시중에 추가로 풀린다. 기재부는 추경예산이 제대로 집행되는지 31일부터 9월 18일까지 현장 점검에 나선다.

◇전문가들 "경제 체질 개선해야"

경제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 내수 부양을 통해 성장률을 보완하는 움직임에 크게 반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 경제의 고질병인 수출 경쟁력 저하와 가계 부채 문제, 신성장 산업 육성 등 구조 개혁에도 당장 나서야 다가올 긴 풍파를 제대로 헤쳐나갈 수 있다고 충고한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거시경제동향 실장은 "중국에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중국 경제의 경기 침체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다"며 "외부 충격을 흡수할 수 있도록 내수 시장을 키우고 중국 경제의 체질 전환에 맞춰 우리의 주력 산업 경쟁력을 재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수입 대비 지출이 많은 30~40대와 저소득 및 중산층의 소득을 늘려주는 것이 내수 회복의 관건"이라며 "정부가 대·중소기업의 상생 분위기를 강화해 중소기업의 근무 여건을 개선하고, 노사정 논의를 통해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소득 양극화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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