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63년 넘게 왕이로소이다

양모듬 기자 2015. 9. 1.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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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왕좌의 역사'가 바뀐다]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최장기 재임한 王으로 영국이 '지는 해'로 전락하던 25세 때 머리에 왕관 쓰고 재임 중 식민지 40여곳 독립 2차대전 땐 수송장교로 근무, 지금도 아침엔 보고서 등 정독.. 神같은 王→봉사하는 王으로

엘리자베스 2세(89) 영국 여왕이 9일 역대 영국 군주(君主) 중 재임 기간이 가장 긴 통치자로 등극한다. 일간 텔레그래프는 30일 "엘리자베스 2세가 9일 오후 5시 30분(현지 시각)이면 고조모(高祖母)인 빅토리아 여왕(1837~1901 재임)의 통치 기간인 2만3226일 16시간 30분을 넘어선다"고 했다. 엘리자베스 2세는 1952년 2월 만 25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재임 기간이 만 63년이 넘는다.

두 여왕 모두 처음부터 왕이 될 운명은 아니었다. 애칭 '릴리벳'으로 불렸던 소녀를 국왕으로 만든 건 '세기의 사랑'이었다. 큰아버지 에드워드 8세가 미국 국적 이혼녀 심프슨과 결혼하기 위해 왕위를 포기하면서, 자신의 동생이자 여왕의 아버지(조지 6세)에게 왕위를 넘긴 것이다. 빅토리아 여왕 역시 직계 자녀들이 어려서 죽었던 큰아버지 윌리엄 4세로부터 왕관을 물려받았다.

빅토리아 여왕의 19세기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다. 인도를 식민지로 삼으면서 영국 왕 중 최초로 인도 황제라는 칭호를 얻었다. 엘리자베스 2세가 물려받은 영국은 '지는 해'였다. 아버지 시절 이미 인도가 독립해 '황제'라는 호칭도 사라졌다. 그의 재위 기간 짐바브웨 등 40여곳의 식민지가 영국에서 독립했다.

거센 세파로부터 왕실을 지킨 건 여왕이었다. 버논 보그다노 런던대 킹스칼리지 교수는 "엘리자베스 2세 재임 시절 군주상이 '신비에 싸인 신적인 왕'에서 '시민들에게 봉사하는 왕'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입헌군주제 전통에 따라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 국왕'이지만 고비마다 국민의 구심점(求心點) 역할을 했다. 왕위 계승자 시절 2차대전이 터지자 육군 여군부대에 수송장교로 입대했다. 군번 230873였던 그는 다른 병사들처럼 트럭을 몰고 탄약을 관리했다. 2011년 왕실 인사로서 100년 만에 앙숙 아일랜드를 방문해 양국 화해의 역사를 썼다. 스코틀랜드 분리 운동이 한창이던 지난해에도 국민에게 '신중한 판단'을 당부해 나라의 분열을 막았다.

정치적 견해를 드러내진 않지만 누구보다 정국(政局)에 밝다. 매일 아침 각료 보고서를 읽고, 화요일에는 총리와 독대(獨對)한다. 재임 기간 12명의 총리와 마주했다. 토니 블레어 전 총리는 회고록에서 "(여왕은) 매우 영리한(canny) 인물"이라고 했다.

전통을 지키면서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는 '정중동(靜中動)'의 균형감도 뛰어나다. 2012년 런던 올림픽 개막식에서 여왕이 영화 '제임스 본드'처럼 왕궁에서 헬기를 타고 식장으로 향하는 장면, 여왕처럼 꾸민 스턴트맨이 헬기에서 낙하산을 메고 뛰어내리는 장면이 연출되면서 친근한 여왕의 이미지에 전 세계인들이 즐거워했다. 몇 년 전부터는 유튜브,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도 시작했다.

여왕도 자식 문제는 뜻대로 못했다. 13세 때 반한 필립공과 결혼해 네 자녀를 뒀지만, 1992년 아들 찰스 왕세자, 앤드루 왕자, 딸 앤 공주가 줄줄이 이혼했다. 그는 이때를 '최악의 해'로 꼽는다. 5년 뒤 찰스 왕세자의 전처 다이애나 빈이 교통사고로 사망했을 당시에도 여왕의 냉랭한 태도에 대한 비난이 쏟아져 위기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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