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사건 증인 73번 불러 5번만 조서 작성

이범준 기자 2015. 8. 31.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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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1~5회차 이후 68회 기록 없어 형소법 위반법조계 "유죄 진술 바꾸지 않도록 관리하려 한 듯"

검찰이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아 수감 생활을 시작한 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건의 핵심 증인을 73회나 불러 조사하고도 단 5회만 수사기록을 남긴 것으로 드러났다. 수사기록을 반드시 남기도록 한 형사소송법을 위반한 불법조사에 해당한다는 지적과 함께 정치자금을 제공했다는 핵심증인인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의 검찰 진술은 처음부터 증거능력이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주간경향’은 31일 발매된 1142호에서 한씨의 2010년 4~11월 검사실 출입기록을 입수해 공개했다. 한씨는 검찰 조사에서 한 전 총리에게 금품을 건넸다고 진술했다가 재판 과정에서 이를 부인한 인물이다. 서울구치소가 만든 ‘출정이력’이라는 제목의 문서를 보면 한씨는 한 전 총리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던 7개월 동안 모두 73차례에 걸쳐 서울중앙지검에 불려갔다. 하지만 검찰이 진술조서 등 기록을 남긴 것은 1~5회차 5번이다. 이후 68회에 관한 검찰 측 기록은 전혀 없다.

형사소송법 244조의 4에는 ‘피의자가 아닌 자를 조사할 때 조사장소에 도착한 시각, 조사 시작과 종료 시각, 진행 경과 확인에 필요한 사항을 조서나 서면에 기록한 후 수사기록에 편철해야 한다’고 돼 있다. 따라서 검찰이 한씨를 68차례나 더 불러 조사하고도 기록을 남기지 않은 것은 그 자체로 불법이다. 하지만 지난 7월2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한 전 총리에 대한 선고에서 한씨의 검찰 증언을 믿을 수 있느냐는 신빙성 문제만 언급했을 뿐, 증거로 사용할 수 있느냐는 증거능력 문제는 손대지 않았다.

68차례의 조사에 대해 한씨는 변호인들에게 “(검찰에서) 가혹행위를 당하지는 않았고, 오히려 초밥도 사주고, 너무 잘해주었다”고 말했다. 한씨는 한 전 총리에 대한 1심 법정에서 돈을 주지 않았다고 진술을 뒤집었지만, 한씨 측이 발행한 1억원짜리 수표를 한 전 총리의 동생이 사용한 정황이 나오면서 9억원 전체가 유죄가 됐다. 형사재판을 담당하는 현직 판사는 “검사는 참고인이 진술을 뒤집으면 그대로 존중해서 이유와 실체를 밝혀내야 한다. 유죄를 받겠다는 생각으로 진술이 바뀌지 않도록 관리하고 유지하려 하는 것은 정당한 수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한씨가 1심 법정에서 검찰에서의 증언은 자신의 뜻대로 한 것이라고 밝히면서 증거능력에는 문제가 없었다”며 “다만 한씨가 한 전 총리에게 돈을 주지 않았다는 법정 진술을 하면서 법원이 무엇을 믿을지의 문제만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법원 관계자는 “68회의 불법조사 때문에 앞서 5회의 조사에서 나온 조서까지 증거능력이 없어진다는 이론도 가능하다”면서 “증거물은 각각 합법과 불법으로 나눠 독립적일 수 있지만 하나의 경험에서 나온 사람의 진술은 꼭 그렇지만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2009년 용산참사사건 재판 때 검찰은 기록을 제출하지 않았는데 학계는 대부분 이를 위법하다고 봤다”면서 “검찰이 아예 기록을 남기지 않고 사람을 70번 가까이 불렀는데 이는 명백히 형사소송법상 위법”이라고 했다.

<이범준 기자 seirot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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