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정보기관 '특수활동비 비공개' 국제 관행 맞나?

김필규 입력 2015. 8. 31.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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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지금 정치권의 논란이 되는 특수활동비, 지난주에 이어 오늘(31일)도 국회가 이 문제에 발목을 잡힌 모습인데요. 야당에선 국정원을 비롯한 모든 국가기관의 특수활동비 집행내역을 공개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여당에선 "세계 어느 나라도 정보기관의 특수활동비를 공개하는 곳이 없다"며 맞서고 있습니다. 팩트체크에서 과연 무엇이 사실인지 짚어보겠습니다.

김필규 기자, 특수활동비가 어떻게 시작된 건지부터 볼까요?

[기자]

기획재정부 예산기금 운영계획지침을 보면 정부 돈 들어가는 곳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는데, 특수활동비에 대해선 '기밀유지가 요구되는 정보 및 사건수사, 기타 이에 따르는 국정 수행 활동에 직접 소요되는 경비'라고 돼 있습니다.

처음 등장한 게 1994년이고, 당시 판공비에서 업무추진비와 특수활동비가 분리됐는데, 증빙 자료도 제출해야 하고 인터넷에 내역도 공개되는 업무추진비와 달리 특수활동비에는 이런 의무가 전혀 없습니다.

[앵커]

어디다 썼는지 도저히 알 수 없는 돈이잖아요. 그러다 보니 문제가 발생했잖아요?

[기자]

그렇습니다. 최근에도 발생했었죠. 홍준표 경남지사가 성완종 리스트 수사 과정에서 국회 운영위원장 시절, 당시 운영위원장을 하고 여당 원내대표면 월 3, 4천만 원씩 특수활동비가 나왔는데, 이 특수활동비 일부를 생활비로 썼다고 고백해 논란이 됐습니다.

또 입법 로비 혐의로 기소된 새정치연합 신계륜 의원도 재판과정에서 특수활동비를 "아들 유학비로 썼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습니다.

올해 정부가 편성한 특수활동비는 총 8,810억 원인데 국정원에 절반 이상이 배정됐고 국방부, 경찰청, 국회 등 19개 기관이 특수활동비를 가져갔습니다.

야당에선 국정원에서도 홍 지사나 신 의원 같이 엉뚱하게 쓰는 경우가 과연 없겠느냐, 그러니 투명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인 건데, 여당의 생각은 다릅니다. 들어 보시죠.

[원유철/새누리당 원내대표 : 특수활동비 대부분은 국가정보원, 국방부, 경찰청 등 정보·안보·치안 기관의 국정 수행 활동에 사용되는 것으로 정보기관의 예산을 공개하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습니다.]

같은 당 하태경 의원의 경우 "(심지어) 통진당도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의 투명화를 요구한 적 없다. 야당은 '국민의 요구'라고 말하는데 이는 국민의 요구가 아니라 북한의 요구다"라고 반박하기도 했습니다.

[앵커]

실제 정보기관의 특수활동비를 공개하는 사례는 없습니까?

[기자]

일단 정보기관으로 유명한 미국의 경우 의회 정보위원회에서 CIA나 NSC의 정보 활동에 대한 직·간접적 지출승인을 하고 있긴 하지만 정확한 규모까지 공개되진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2013년, 전직 CIA 요원인 에드워드 스노든이 미국 16개 모든 정보기관의 예산을 공개하고 어디에 어떻게 쓰고 있는지까지 폭로했습니다. 그때 미국 사회가 발칵 뒤집혔던 거죠. 전례가 없는 일이었으니까요.

유럽의 경우는 좀 다른 이유로 특수활동비 논란이 많지 않다고 하는데 전문가 이야기로 들어보시죠.

[정도영 박사/국회입법조사처 경제산업조사실 : 미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다 의원내각제이다 보니까,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하는 과정은 정부가 주도적으로 행사하는 경향이 많아서. 영국이나 유럽 같은 사회에서 특수활동비를 가지고 이게 문제 제기가 되었던 적은, 우리나라처럼 그렇게 많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사례가 축적이 거의 안 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앵커]

문제는 정당하게 쓰이는 문화가 있느냐, 그런 시스템이 돼 있느냐. 그럼 문제 제기할 일이 별로 없지만. 그렇지 않은 사례가 자꾸 있다고 치면, 그만큼 공개하길 바라는 것이 많을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일단 다른 나라들이 정보 예산에 대해 다 드러내지 않는 것이 관례라면, 이번에 '다 공개해라' 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지는 겁니까?

[기자]

또 생각해 볼 부분이 있는데, 그렇다면 미국 사회가 이런 상황을 과연 자연스럽게 받아들고 있느냐 하는 겁니다.

미국에선 9·11 이후에 정보기관의 파워가 막강해지면서 '묻지마 예산'도 많아졌는데, 스노든의 폭로 이후 수십 명의 상원의원이 "불투명성이 오히려 국가안보를 해친다"며 자발적인 예산 공개를 정보기관에 요구했습니다.

이를 거부당하자 공개를 강제하는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는데, 법안 발의에 중심에 서 있던 피터 웰치 하원의원은 "예산 공개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정보기관이 투명성 확보를 통해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일본에서도 비슷한 논란이 있어서 "10~15년 정도 일정 기간을 정해 그 이후에 특수활동비 집행 내역을 공개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방안이 정치권에서 논의된 적이 있습니다.

[앵커]

당장이 아니라면 나중에라도 공개해라, 이런 얘기군요. 그러니까 정보기관 예산을 공개하지 않는 곳에서도 이 문제가 논란이 되고, 또 대책이 논의되고 있는 거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그러니 앞서 '국정원 특수활동비 투명화는 국민의 요구가 아닌 북한의 요구'라고 했던 하태경 의원의 발언을 두고 "그러면 미국 공화당이 CIA 예산 공개하자는 건 미국 시민 요구가 아니라 '알카에다의 요구'인 거냐" 이런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사실 국내에서 이런 논란 처음이 아닙니다. 2005년 당시 한나라당 대표이던 박근혜 대통령도 "국정원이 쓰는 예산이 상당히 불투명하다. 투명성을 최대한 강화해 국회가 철저하게 감시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특수활동비가 대표적인 국정원의 불투명예산"이라고 콕 집어 이야기했는데, 지난 10년간 큰 변화가 있었던 게 아니라면 여야가 무조건 "된다, 안 된다"만 할 게 아니라 머리 맞대고 적절한 방안 찾아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앵커]

팩트체크 김필규 기자였습니다. 수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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