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이전' 혁신도시, 지역발전에 도움되고 있나

2015. 8. 31.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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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싱크탱크 광장] '혁신도시 사업' 문제점 점검

경북 김천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최아무개씨는 석달 전 10년간 살던 시내를 떠나 집을 옮겼다. 한국도로공사 등 12개 공공기관이 이전하는 혁신도시에 분양받은 새 아파트로 이사를 한 것이다. 김천 혁신도시는 옛 도심에서 20㎞가량 떨어진 율곡동에 들어섰다. 초등학생 아이 때문에 교육·의료 등 초기 생활 여건이 다소 걱정되긴 했지만 미래를 내다보고 이사를 결심했다. 최씨는 "20년 전을 생각해보면 답은 분명해요. 김천시청이 당시 허허벌판이었던 신음동으로 옮겼을 때 이렇게 번화가로 바뀔지 누가 알았겠어요. 당시 시내였던 평화동은 지금은 죽은 동네가 되어버렸잖아요."

2008년 시작된 공공기관 이전과 지방 혁신도시 사업이 종착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올해 5월 말 기준, 전체 이전 대상 공공기관 154곳 가운데 107곳, 70%가량이 세종시를 비롯한 지방 혁신도시로 이전을 완료했다. 주무 부처인 기획재정부의 계획대로라면 늦어도 내년 말까지는 이전이 완료될 예정이다.

현재 70% 이전…내년말엔 완료혁신도시 건설뒤 '원도심 공동화'이전 과정서 환경훼손도 잇따라중소 혁신도시는 인구 증가 없어이전 직원 23%만 가족 동반 이주지역인재 채용, 작년 신규 10%뿐혁신도시 안착 위해 '소통' 필요전주 기속가능보고서 발간 모범

과연 혁신도시가 '지역경제 활성화를 통한 국토의 균형발전'이란 취지에 걸맞은 성과를 내고 있을까? 아직 이전 초기 단계여서 성패를 평가하기엔 이르지만, 곳곳에서 우려스러운 현상들이 불거지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원도심의 공동화'다. 혁신도시 건설 이후 옛 도심의 인구 유출과 상권 쇠퇴 조짐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강원 원주, 충북 음성·진천, 경북 김천, 전남 나주, 경남 진주 등 인구 규모가 적은 중소 혁신도시에서 이런 우려가 높다. 경남 진주의 경우, 혁신도시가 들어선 충무공동의 올해 공시지가는 전년 대비 평균 8% 이상 상승한 반면, 원도심 지역인 대안동·동성동·중안동의 공시지가는 각각 2.28%, 1.37%, 1.08% 하락했다. 지난 3월 <영남일보>가 김천시민 522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를 보면, 원도심에 살고 있는 20~30대의 70.8%가 혁신도시로 이주할 의사가 있다고 응답했다. 최씨의 경우처럼 혁신도시의 새 아파트로 옮겼거나 옮기려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얘기다. 이들 중소 혁신도시는 기존 원도심 인구의 10~55%를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다. 실제 통계청 자료를 보면, 공공기관 이전으로 유입 인구가 크게 늘어날 것이란 기대와 달리 지난 3년 동안(2012~2014년) 이들 중소 혁신도시의 인구 추이는 거의 변화가 없다. 공공기관 이전에 따라 외부 인구의 순유입이 늘어나는 게 아니라, 도심에 살던 원주민 가운데 상대적 여유 계층이 혁신도시로 이전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대규모 새도시를 짓는 개발 방식이 원도심 공동화의 주된 요인이라고 분석한다. '신도시형 개발'은 인구 규모가 일정 수준 이상인 대도시에서 채택할 수 있는 모델이며, 인구와 상권이 크지 않은 소규모 혁신도시들은 도시 재생과 재개발 방식으로 차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강현수 충남연구원 원장)

대규모 새도시형 혁신도시는 환경 오염과 생태계 훼손의 문제도 낳고 있다. 환경부가 지난해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2013년 한 해 동안 공공기관 이전 과정에서 환경영향평가법을 위반한 사례는 모두 40건이다. 특히 제주 서귀포의 용암동굴 훼손, 울산 태화강 지천의 생태계 파괴 등 건설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시적인 폐기물이나 수질오염이 아닌 심각한 환경 피해 사례도 나타났다.

공공기관 이전이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어떨까? 혁신도시가 들어선 지방자치단체들은 이전 공공기관의 직원·가족이 이주하는 동시에 지역 출신 인력이 대거 채용될 것으로 기대를 걸고 있지만 아직까지 결과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3월 지방 이전 공공기관 직원 2만219명을 조사한 결과, 가족과 함께 이주한 이들은 전체의 23.1%인 4666명에 불과했다. 미혼자 5052명을 포함해 1만5000여명이 가족과 떨어져 '기러기 생활'을 택한 것이다. 특히 대도시 인근보다 중소 혁신도시에서 가족 동반 이주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았다. 원주(11.5%), 진천·음성(15.3%), 김천(18.1%)은 10명 중 1~2명만 가족과 함께 이전한 반면, 부산(28.5%), 대구(28.1%), 전주·완주(27.3%) 등 대도시에 편입된 혁신도시들은 평균보다 높았다. 교육·문화·의료 등 기본적인 정주 여건의 차이가 빚어낸 결과로 풀이된다.

'지역 인재' 채용도 아직은 지지부진하다. 국토교통부가 혁신도시로 이전했거나 이전중인 109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지난해 지역 인력 채용은 모두 888명으로, 전체 신규 채용 인력(7776명)의 10.2%에 그쳤다. 올해 지역 채용 계획은 840명(신규 채용 대비 10.8%)으로 48명 감소했다. 현행 '지방대학 및 지역균형인재 육성에 관한 법률'을 보면, 공공기관의 지역 채용 비중을 35% 이상으로 권고하면서 이를 수용한 공공기관에는 국가·지방자치단체가 투·융자, 자금조달, 기술개발 등을 지원할 수 있게 돼 있다. 정부의 법 제도가 현실에선 별다른 실효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올 3월 국회는 공공기관 직원을 채용할 때 일정 비율 이상의 지역 채용을 의무화하는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이에 대한 공공기관들의 반론도 만만치 않다. 대다수 공공기관 일자리가 전문성이 요구되는 만큼, 공공기관뿐 아니라 지역 대학 등 교육 기관의 노력도 병행되어야 지속가능한 인재 채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지역 채용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한국남부발전 관계자는 "본사가 부산에 있다고 해서 이곳만 배려하긴 어렵다. 발전소가 있는 다른 지역도 배려해야 하는 만큼 단순히 본사 지역 기준으로 채용률을 따질 경우 또다른 차별 논란을 부를 수 있다"고 말했다. 남부발전의 전체 직원 2000명 가운데 부산권 근무자는 500명, 25%가량이다. 또다른 이전 공공기관의 관계자는 "혁신도시는 긴 안목으로 도시 생태계 전반을 고려해야 하는데, 당장에 공공기관 건물과 아파트 짓는 데 우선순위를 두다 보니 기본적인 정주 여건과 인재 채용 인프라가 너무 부실하다. 직원들이 가족과 함께 이주하지 못하고 지역에서 인력들을 뽑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다"라고 말했다. 특히 시간이 많이 걸리고 투자 대비 효용을 계량하기 힘든 인적 자원과 교육에 대한 지방정부의 투자가 시급하다는 것이다. 실제 프랑스 소피아앙티폴리스, 영국의 셰필드, 스웨덴 웁살라 등 해외 혁신도시 사례를 보면, 대학 등 고등·전문 교육기관의 설립이나 이전이 빠져 있는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같은 맥락에서 중장기적인 안목이 결여된 속도전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해외의 경우 많게는 7차까지 단계적 이전 계획을 수립해 오랜 기간 점진적으로 이전을 추진하는 반면, 국내 혁신도시는 불과 몇 년 만에 일괄 이전 형태로 추진된다는 것이다.

혁신도시를 둘러싸고 제기되는 다양한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공공기관, 지방정부, 지역사회 간 소통의 부재 탓이 크다. 우리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이전 대상 공공기관 직원들에게 아파트 특별 분양권과 이주 정착금을 맨 처음 제시했다. 하지만 1970년대 지역 중소도시에 공공기관을 이전한 스웨덴 정부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이주할 공공기관 직원 가족들의 일자리를 알선하는 것이었다. 이전 공공기관 직원들이 가족 동반 이주를 꺼리는 가장 큰 이유로 배우자의 직장과 자녀들의 교육 문제를 우려하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이전 공공기관들 역시 지속가능성보고서를 발간하는 등 지역과 소통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지속가능성보고서는 기업이 사회적 책임에 대한 성과를 정리해 이해관계자들과 소통하는 도구다. 지방의 10개 혁신도시 가운데 가장 높은 가족 동반 이주 비율을 기록한 전주시는 유일하게 지속가능성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는 기초자치단체다.

서재교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CSR팀장 jkse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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