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기자' 현실화..어뷰징 기계냐 속보 도우미냐

2015. 8. 31.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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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기아는 30일 열린 2015 프로야구 넥센과의 홈 경기에서 2-7로 크게 패하며 홈 팬들을 실망시켰다. …넥센은 이택근이 맹활약을 펼쳤다.…오늘 넥센에게 패한 기아는 5연패를 기록하며 수렁에 빠졌다."

지난달 30일 열린 프로야구 경기 결과 기사다. 흔히 볼 수 있는 기사지만, 이 기사는 '사람 기자'가 아닌 '로봇 기자'가 작성했다. 이준환 서울대 교수(언론정보학)가 이끄는 연구팀(HCI+D, Human-Computer Interaction+Design)이 개발한 '프로야구 뉴스로봇'이 그 주인공이다. 연구팀은 지난 3월부터 자체 개발한 프로그램으로 포털사이트 야구중계 코너에서 데이터를 수집한 뒤 기사를 작성해, 하루에 원고지 2장 분량의 기사 4~5개씩을 페이스북, 트위터를 통해 내보내고 있다. 단순한 사실을 넘어 "수렁에 빠졌다", "승리를 장식했다", "승부가 갈렸다" 등 상황을 판단할 수 있는 수식어들도 구사한다.

이준환 교수팀의 '야구 로봇뉴스'알고리즘 통해 로봇이 기사 작성"수렁 빠져" "승리 장식" 표현까지가디언·AP 등 해외선 이미 현실화경제 뉴스 등 초당 9.5개 생산도"기자 설 자리 줄고 어뷰징" 우려로봇기사와 차별화가 생존 관건

이준환 교수는 "자료를 분석해 대역전극인지, 박빙의 승부였는지 등 경기의 핵심상황을 뽑아내는 것이 알고리즘의 첫번째 역할이다. 기사는 거의 실시간으로 생성된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팀은 현재 프로야구 기사만 내보내고 있지만, 조만간 증권 시황 기사 등 간단한 금융기사도 내보낼 예정이다.

사람 대신 로봇이 기사를 쓰는 '로봇 저널리즘'이 성큼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외국에서는 이미 주요 언론사에서 실제 기사 작성에 활용되고 있다. 이를 두고 독자맞춤형 기사를 제공하는 등 언론시장에 활력을 줄 수 있다는 긍정론과 단순 기사가 양산되고 기자인력 구조조정이 가속화함으로써 저널리즘이 더 위축될 수 있다는 부정론이 엇갈리고 있다.

국내에서는 서울대 연구팀 실험이 로봇저널리즘을 시험하고 있는 첫 사례로, 아직 실제 언론사에 도입된 적은 없다. 하지만 해외에선 이미 정착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에이피>(AP) 통신은 지난해부터 기업 실적 발표와 같은 단순 경제 기사를 모두 로봇이 작성하고 있는데, 매달 1000여건에 이른다. '오토메이트 인사이트'라는 미국 업체는 '워드스미스'라는 기사 작성 프로그램으로 만든 기사와 콘텐츠를 언론사와 기업에 제공한다. 초당 9.5개의 기사를 생산할 수 있으며, 2013년 월평균 1만5000여개의 기사를 <포브스> 등 주요 언론사에 판매했다. <엘에이타임스>는 로스앤젤레스 주변 지역에서 발생하는 지진 관련 정보를 자동으로 수집해 기사를 작성하는 프로그램인 '퀘이크봇'을 사용하고 있다. 영국의 <가디언>은 2013년 11월부터 로봇이 편집하는 주간지 <더롱굿리드>(The Long Good Read)를 발행하고 있다. 로봇이 <가디언>에 나간 기사들 중에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공유 상황 등 일정한 기준에 따라 선별한 기사들로 24쪽 분량의 타블로이드 판형 신문을 만들어낸다.

로봇이 작성한 기사와 사람이 쓴 기사를 구분할 수는 있을까? 최근 정재민 카이스트 정보미디어 경영대학원 교수 등으로 구성된 연구팀이 기자와 독자들을 대상으로 이에 대한 연구를 진행중이다. 정 교수는 "아직 최종 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독자는 물론 기자들도 이 둘을 구별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알고리즘 기술이 발전할수록 더욱 구분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을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시각은 엇갈린다.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기계적인 기사의 생산은 기자들의 설 자리를 좁게 만들 것이다. 특히 한국의 경우 포털사이트를 중심으로 기사가 생산·소비되는데, 로봇기자가 도입되면 어뷰징(같은 기사를 조금씩 바꿔 계속 올리는 행위) 같은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준환 교수는 "로봇은 각각의 독자에게 맞춤형 기사를 제공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기아 팬에겐 기아 중심으로 쓰인 프로야구 기사를 공급하는 것이다. 이는 기존 언론사에서 하지 못하는 것으로, 저널리즘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로봇저널리즘에 대한 평가를 떠나, 언론사들이 기술발달을 이해하고 적극 대비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강정수 오픈넷 이사는 "스마트폰이 나오기도 전에 그 폐해를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사업전략 차원에서라도 언론사가 적극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해 대구대 교수(신문방송학)는 "언론의 공공적인 측면은 기계가 대체할 수 없다. 언론사들은 기계가 쓴 기사와 차별성을 갖는 기사를 생산해낼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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