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무면제 서비스' 카드사들 배만 불렸다

이신영 기자 2015. 8. 31.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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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하거나 중병 걸릴 때 5000만원 한도 빚 면제 상품..제대로 설명 않고 가입 시켜 10년간 수수료 1조2000억원 달해

“고객님, A카드사입니다. 사망하시거나 질병에 걸리시면 5000만원까지 빚을 면제해 드리는 상품에 가입하세요.”

대기업 직원 김모(45)씨는 2012년 여름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바쁜 업무 중이던 김씨는 5분간 쉬지 않고 상품 설명을 늘어놓는 콜센터 직원에게 “돈을 내야 하는 상품이냐”고 물었고, “무료이기 때문에 부담이 없다”는 콜센터 직원의 답변을 듣고는 해당 상품에 가입하겠다고 했다. 3년 후 김씨는 우연하게 카드 결제대금 명세서를 자세히 들여다보다가 깜짝 놀랐다. ‘채무면제유예 서비스’ 수수료 명목으로 지난 3년간 매달 5000~6000원씩 빠져나간 것이다. 그는 “불필요한 상품을 강매 당했다”며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제기했다.

지난 2005년부터 카드사가 판매하는 ‘채무면제유예 서비스(DCDS)’가 과열 현상을 보이면서 소비자 피해가 늘고 있다. DCDS상품은 카드 일시불·할부·카드론·현금서비스 등 카드에서 발행한 채무 잔액에서 일정 수수료(0.3~0.6%)를 매달 내고, 사망하거나 암·뇌졸중 같은 질병에 걸렸을 때 5000만원 한도 내에서 빚을 면제해주는 상품으로 불행한 처지에 놓인 서민 소비자의 빚을 탕감해주자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그러나 긴 설명을 요구하는 상품을 소비자에게 제대로 설명도 하지 않고 판매하거나, 채무면제나 유예 유인이 없는 우량 소비자에게도 강매가 집중되면서 불완전 판매가 늘자, 금융감독원은 이번 주부터 카드사 점검에 나서기로 했다.

◇소비자보다는 카드사·콜센터 이익 극대화를 위해 설계

30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2005년부터 올 상반기까지 카드사들이 DCDS를 팔아 거둬들인 수수료는 1조2000억원에 달한다. 지난 6월 현재 상품 가입자는 345만명으로, 2011년 212만명에 비해 100만명 이상 늘었다. 카드사들은 카드 소비자들의 채무 면제가 과다하게 몰릴 것으로 예상해 보험에 따로 가입해 보험사들에게 소비자 채무 면제·유예금을 처리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카드사가 지난 10년 동안 보험사에 지불한 보험료는 3580억원이고, 실제 소비자가 사망·질병 등으로 면제받은 채무는 1910억원(전체 수입 수수료의 15%)에 불과하다. 나머지 1조90억원은 카드사와 콜센터의 수익으로 처리됐다.

소비자가 받은 혜택보다, 카드사와 콜센터가 가져가는 수익이 지나치게 큰 셈이다. 이런 불균형이 발생하는 이유는, 대부분 카드사는 DCDS 가입자가 만 60~61세가 되면 서비스를 자동해지토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만 60~61세(일부 카드사는 만 70세)가 넘으면 가입이 거절된다. 주로 정기적인 소득이 들어와 카드 채무를 정상적으로 갚는 소비자들에게 판매하기 때문에, 정작 사망 위험이나 질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은 고령자는 혜택을 보지 못한다. A카드사 관계자는 “60세 이후에는 사망과 질병으로 카드 대금을 납부하지 못할 위험성이 급격히 높아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매달 100만원씩 카드 일시불을 결제하는 30세 직장인 A씨가 가입했을 경우, 매달 수수료로 6000원(채무의 0.6%)을 지불한다. A씨가 60세까지 일을 하면서, 평균 100만원씩 카드를 쓰면 30년간 내는 수수료는 216만원이다. 만60세 전까지 사망하거나 질병에 걸리지 않으면 별도 채무면제 혜택은 못 보고 카드사에 수수료만 지불하는 셈이다.

◇종신보험인 줄 알고 가입

금융 당국은 소비자들이 상품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가입하고 있으며, 콜센터 직원들의 성과에 급급한 ‘푸시 마케팅’이 복합적으로 문제를 키우는 것으로 보고 있다. DCDS는 소비자가 가입 전에 알아야 할 보장 항목이 사망, 뇌혈관·암·장기이식 수술 등의 질병, 자동차 사고, 장기 입원 등인지 보장 내역을 꼼꼼히 확인하고 가입해야 하는 상품이다.

그러나 대다수 소비자는 매달 내는 수수료가 적은 데다, 바쁜 나머지 무료인 것으로 오해해 상품에 가입하기도 한다. 카드 명세서에서 매달 결제금액만 확인하고, 구체적인 카드 지불 항목을 확인하지 않은 소비자들은 뒤늦게 잘못 가입했다며 호소한다. 금융 당국에 접수된 DCDS 관련 민원이 2013년 175건, 2014년 184건, 2015년 6월 말 99건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소비자 최모(45)씨는 “사망하면 보험금 5000만원을 주는 종신보험인 줄 알고 가입했다가 뒤늦게 보험이 아닌 줄 알고 해지했다”고 말했다.

카드 업계에 따르면 카드사 콜센터 직원은 통상 100~130만원 기본급에 DCDS 계약 성사 시 건당 3~4만원의 수당을 받는다. 보험사 콜센터 직원의 기본급은 카드사와 비슷하지만, 가입 건당 주어지는 인센티브는 10~20만원에 달한다. 상품은 보험과 대동소이한데도 카드사 콜센터 직원이 받는 수당이 훨씬 적어 상품을 무조건 많이 파는 데 집착하는 경향이 강하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카드사 스스로 콜센터 직원과 소비자들의 상담 녹취록을 분석해 불완전 판매를 걸러내라고 지도해왔지만, 제대로 지키지 않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에 금융감독원은 보험 같은 수준의 복잡한 DCDS 상품을 전화로만 판매하는 행위에 대해 집중 점검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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