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하레디'의 출산 인해전술
27일 예루살렘 시청역에서 지상 전철의 문이 열리자 검은색 모자를 쓴 남성과 무릎 아래까지 내려온 긴 치마를 입은 여성이 함께 유모차를 밀고 들어왔다. 이 유대인 부부의 옆으로 어린 자녀 둘이 있었다. 유모차의 갓난아기까지 총 다섯 식구였다. 그 옆에도 마찬가지로 검은 모자를 쓴 한 유대인 부부가 유모차와 아이 여럿을 데리고 비좁은 전철 안의 한쪽을 차지하고 있었다.
독특한 복장과 함께 '한 손에 아이, 한 손에 유모차'인 모습으로도 유명한 이들은 유대교 율법을 전적으로 따르려는 초(超)정통파 유대인 '하레디'다. 이들이 최근 이스라엘의 신흥 권력 집단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30~40년 전만 해도 전체 인구의 극소수에 불과했지만, 하레디의 인구가 그새 전체의 10%인 80만명에 이를 정도로 많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만큼 유권자 수도 늘었다. 이스라엘 정부에 따르면 하레디 여성은 1인당 평균 6.2명의 아기를 낳았다. 보통 이스라엘 여성보다 훨씬 아이를 많이 낳는 것이다.
하레디 사이에서는 경전 토라의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구절을 근거로 출산을 적극 장려하고 피임은 죄악시한다. 이대로면 10여 년 뒤에 하레디가 이스라엘 인구 20%가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하레디의 입장을 대변하는 정당의 세력도 점점 강해지고 있다. 지난 3월 실시한 선거에서 샤스, 유나이티드 토라 주다이즘 등 친(親)하레디 정당이 전체 의석 120석 중 약 18%에 해당하는 21석을 차지했다. 30석을 차지한 집권여당 리쿠드당의 당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연립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눈치를 봐야 할 정도였다. 하레디 일부 남성에게 부여되는 '군 복무 면제권'이 '평등권에 위반된다'는 반대 여론에도 계속 유지되는 것도 '하레디의 로비 파워' 때문이다.
하레디는 '코셔 인증 허가권'을 무기로 이스라엘의 상권도 잡고 있다. 코셔는 돼지고기나 비늘 없는 생선은 먹어선 안 된다는 등의 유대교 율법에 따라 가공한 식품을 말한다. 이들은 율법에 맞는 음식 재료와 조리법을 사용했는지를 검사하고 코셔 인증서를 발급해주고 돈을 받는다. 하레디는 이 같은 권력을 이용해 샤밧(유대교 안식일인 토요일을 일컫는 히브리어)에 율법을 어기고 영업을 하는 식당·카페에 '코셔 인증을 취소하겠다'고 압박을 하기도 한다.
하레디에 대한 반대 여론도 만만찮다. 이들이 종교 생활만 하면서 국가 보조금을 계속 받아가 국가 재정에 큰 부담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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