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독재 미화' 교학사 교과서 외면 당하자 국정화 공세

2015. 8. 3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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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국정화 이면의 근현대사 논쟁

박근혜 정권 들어 '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는 뜨거운 쟁점이 됐다. 여권과 교육부가 '국정화'를 밀고 끄는 모양새다. 논쟁의 연원은 1974년 박정희 정권이 학계의 반대 속에 강행한 국사 교과서 국정화에서 출발한다. 1980년대 중반 사회민주화의 영향으로 축적된 근현대사 연구의 학문적 성과가 이후 역사 교과서 서술과 관점에 반영되면서 유신시대 국정 교과서의 한계를 극복하는 듯했다. 하지만 1994년 이후 주로 보수 우파들의 집중 공격을 받으며 교과서는 학술적 공론이 아닌 '정쟁'의 대상으로 변했고, 특히 근현대사 부분은 '역사 전쟁'의 한가운데 놓이게 됐다. 지난 논쟁을 돌아보면 향후 교과서 국정화의 방향도 가늠할 수 있다.

제주 4·3 '항쟁' 등 용어갈등 서막1994년 이후 보수우파의 집중공격교과서가 '정쟁'의 대상으로 변해"국정교과서 집필 참여자정부에 호의적인 사람일 수 밖에다수 역사학자 참여 힘들것 "

■ '용어 갈등' 막 오르다

2004년, 근현대사를 둘러싼 '정쟁'이 불타올랐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반민족 친일행위와 권위주의 정권 때 인권침해 진상 규명을 제의한 뒤였다. 한나라당에서는 친북·용공 활동도 조사 대상에 넣어야 한다고 맞섰다.

'용어 논란'은 이처럼 과거에 대한 '해석 투쟁'의 하나였다. 학계는 교과서 서술 용어에 따른 '역사 전쟁'의 첫 총성이 울린 때를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4년으로 기록한다. 교과서 집필 가이드라인인 '국사교육 내용 준거안'에 대해 보수 언론은 '항쟁'이란 용어를 트집 잡아 좌파적 민중사관에 입각했다며 맹공을 퍼부었다. 당시 준거안 마련에 참여한 서중석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보수 언론이 가장 문제 삼은 것은 대구 '10월 사건'과 제주 '4·3항쟁'이었다"며 "현대사의 중요 사실을 교과서에 언급하자고 했을 뿐인데 냉전 수구 언론에 의해 재해석되고 문제가 불거질지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또 다른 '개념 논쟁' 사건이 바로 2011년 이명박 정권 때 벌어진 '자유민주주의 파동'이었다. 애초 역사 교육과정을 개발한 학자들이 현대사 부분에서 '민주주의'라고 표현한 용어를 교육과학기술부(장관 이주호)가 '자유민주주의'로 바꾼 것이다. 교육과정 개정 참여 학자들이 집단으로 항의성명을 발표하는 등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뉴라이트 성향 인사들이 중심이 된 한국현대사학회의 수정 건의를 교과부가 받아들여 일어난 사건이었다.

■ 정권 따라 교과서도 수정되다

역사 교과서 편찬은 '국민의 정체성'을 결정한다며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 휩쓸려 들어가기 일쑤였다. 김영삼 정부가 고시한 제7차 교육과정에 따라 김대중 정부가 발행한 고등학교 교과서 <한국 근·현대사>가 먼저 도마 위에 올랐다. 2004년 노무현 정부 때 한나라당이 금성출판사 교과서가 "철저하게 좌파·친북"이라며 포문을 열었다. 그즈음 출발한 뉴라이트 단체들도 '자학 사관'이라며 비판했다. 2008년, 이명박 정부 들어 '좌편향' 논란이 다시금 발생한다. 금성 교과서 저자였던 김한종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당시 분위기에 대해 "그 이전까지 해당 교과서에 별문제가 없다고 밝히던 교육부의 태도가 갑자기 돌변했다"고 말했다. 검정을 주도했던 교육과학기술부가 정권이 바뀐 뒤 발벗고 교과서를 수정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정부, 보수 시민단체뿐 아니라 대한상공회의소 등 재계까지 단합한 총공세였다.

뉴라이트 계열의 '교과서포럼'은 여세를 몰아 2008년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를 출간했다. "기존의 교과서는 우리 삶의 터전인 대한민국이 얼마나 소중하게 태어난 나라인지, 그 나라가 지난 60년간의 건국사에서 무엇을 성취했는지를 진지하게 다루지 않는다"는 것이다.

■ 교학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 증폭되다

2013년 박근혜 정권이 들어선 뒤 뉴라이트 성향의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가 교육부 최종 검정에 합격했다. 반공주의에 기반한 '7080 국정체제'로 퇴행했다는 비판이 나온 건 그때부터였다. 9월 역사학계와 단체들은 해당 교과서의 각종 오류 300여개를 지적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은 해당 역사를 축소, 왜곡한다며 검정 철회를 촉구했다. 친일·독재 미화 논란에다 오류까지 드러나 '수준 미달 교과서'라는 지적이 잇따르자 9월17일 박근혜 대통령은 "교과서가 이념 논쟁의 장이 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2014년 1월 교학사 교과서 채택률이 0%대에 머물자 이번엔 정치권에서 국정 교과서 논의에 불을 지폈다.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황우여 교육부 장관 등이 번갈아 교과서 국정화에 대해 긍정적인 발언을 이어갔다. 교육부는 8월 '한국사 교과서 발행체제 개선 토론회'를 열었지만 국정화에 힘을 싣는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다. 학계가 전반적으로 부작용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김한종 교수는 "국정 교과서는 하나의 특정한 해석이 담긴 것일 뿐이고, 집필 참여자 또한 정부 정책에 호의적인 사람일 수밖에 없다"며 "그렇게 되면 절대다수의 역사학자들이 국정 교과서 집필에 참여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40년 동안 국정의 질은 검정을 넘지 못했고 학생 수준과 환경을 고려해 교과서를 다양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었다.

■ '역사 전쟁'을 '역사 논쟁'으로

지난 20년 동안 '역사 전쟁'은 끝간 데 없어 보였다. 김정인 춘천교대 사회과교육과 교수는 "뉴라이트 쪽은 국내 역사학계가 사회와 역사를 '민주 대 독재'라는 이분법적 시각에서 본다고 비판하고, 역사학계는 '자유민주주의'가 특정 정당 정강으로 사용된 정치적 개념으로 학문적 검토가 미비한 상태라며 맞서왔다"고 풀이했다. "서로 반민주적이라 비판하는 것을 넘어 각자의 민주주의가 어떤 것인지 논쟁한다면 '역사 전쟁'도 '역사 논쟁'으로 '정상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그는 덧붙였다.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는 "지금의 국정화 논의 방향은 국정화, 검인정화, 자유발행제라는 교과서 발전 추세에 역행한다"며 "국사학계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채 정권의 취향을 따라간다는 게 비극적"이라고 말했다. 교과서 문제는 정치권이 아닌 진지한 학문적 공론장에서 다뤄야 한다는 뜻이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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