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아무도 이 억울한 죽음을 책임지지 않는가"

2015. 8. 31. 09:2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현장]구파발 검문소 총기사고 희생자 故 박세원 상경 추모식 '세원이를 잊지말아주세요'

[미디어오늘 정민경 기자]

개강을 앞둔 대학생들이 친구의 영정 앞에 섰다. 영정 옆에는 '왜 아무도 이 억울한 죽음을 책임지지 않는가'라는 제목의 대자보가 붙어있었다. 동국대학교 총학생회와 문과대 학생회 가 쓴 이 대자보에는 "자신을 빼놓고 간식을 먹었다는 이유로 세원이와 함께 근무하던 박모 경위는 총을 빼들었다"며 "장난이라는 이름하에, 실수라는 이름하에 21살의 청춘이 생을 다했다"고 쓰여 있었다.

지난 25일 구파발 검문소에서 의무경찰로 복무하던 고 박세원(21) 상경은 총기사고로 숨졌다. 서울 은평경찰서에 따르면 박 모 경위(54)는 은평구 군경합동검문소에서 38구경 권총을 의경 대원 박 상경에게 쏴 숨지게 했다. 경찰조사에서 박 경위는 간식으로 나온 빵을 '너희끼리만 먹느냐'며 총을 쏘는 장난을 치다가 실탄이 발사되었다고 말했다. 경찰에서도 박 경위의 진술에 따라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했다.

▲ 구파발 검문소 총기사고 희생자 故 박세원씨의 영정

박 상경의 사망 후 7일이 지난 이날 추모제 <세원이를 잊지말아주세요>는 동국대 팔정도에서 오후 5시에 열렸다. 교수와 학생 80여명이 옷깃에 하얀색 리본을 달고 추모제에 참석했다. 추모제에 앞서 동국대 교법사 진오스님의 인도로 박 상경을 추모하고 극락왕생을 비는 학내 행진을 진행했다. 박 상경은 생전에 불교신자였고 유가족 역시 불교신자다.

행진을 진행한 진오스님은 "세원이의 추억이 깃든 도정을 함께 돌겠다"며 행진의 의미를 설명했다. 5시 20분부터 진행된 학내 행진은 동국대학교 교정을 한바퀴 돌아 6시 25분 정각원 뒤의 종을 치며 마무리됐다. 행진 이후 100여명의 학생들이 분향을 한 뒤 7시에 추모제가 시작됐다.

추모제에 참가한 교수와 학생들은 박 상경을 추모하면서 박 상경 죽음에 대한 진실규명과 함께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 이날 추모제 사회를 본 박문수 문과대학 학생회장은 사건 경과를 보고한 후 "업무상 과실치사로 죽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54세 경위가 21세 상경이 자신과 토스트를 나눠먹지 않았을 때 가슴에 총을 겨누는 것이 '업무'여야 한다"며 "대한민국 경찰이 그런 것도 업무로 인정해서 과실치사로 인정한다는 사실에 분노한다"고 말했다.

이어 박문수 씨는 "장난으로는 사람이 죽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며 "총체적인 관리부실의 주체인 경찰 총장은 지금 무얼 하는지 답답하다"고 비판했다.

▲ 동국대학교 철학과 홍윤기 교수

교수 추도사를 진행한 홍윤기 교수(동국대학교 철학과)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때도 경찰은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고 말했다"며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것을 경찰발표라고 해놓으니 사람들의 의문이 여기저기서 치솟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총기사건은) 장난이라고 해도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총 장난"이라며 "세원이의 죽음에 대해 끝까지 물을 것"이라고 전했다.

추모제는 사건경과 보고 후 동국대 철학과에서 박 상경과 함께 재학한 학생들이 만든 추모영상을 보는 것으로 이어졌다. 영상에는 지난해 박 상경이 의무경찰로 입대하기 전 모습이 담겨있었다. 추모영상에서 생전의 박 상경의 모습과 목소리가 나오자 여기저기서 울음이 터졌다. 영상 속 박 상경은 "친구들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고 "잘 다녀오세요"라는 박 상경 후배의 목소리로 영상이 마무리됐다.

영상이 상영된 후에 박 상경과 같은 과였던 학생들의 추모사가 이어졌다. 특히 추모사를 한 5명의 학생들이 박 상경이 생전에 자주 했던 인사말이라며 "다솜(순우리말로 사랑이라는 뜻)"이라고 인사를 할 때 마다 참석한 이들 사이 울음이 터져 나왔다. 박 상경의 같은 과 후배인 황민하(13학번)씨는 추모사에서 생전의 박 상경을 "누구보다도 사랑이 흘러넘쳤고 순수했다"고 말하며 "(박 상경의)죽음이 억울해지지 않도록 끝까지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 날 추모제는 2시간가량 이어져 9시께 김광석의 '부치지 못한 편지'를 부르는 것으로 마무리 됐다. 추모제 참가자들은 촛불을 켜고 함께 노래를 부르며 추모제를 마무리했다. 동국대학교 철학과 최인숙 교수는 "박세원 학생의 죽음에 대한 진짜 원인을 밝히는 것은 물론이고, 이번 일을 계기로 부당한 사회 구조에 경각심을 일으키고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동국대는 학교차원에서 '고 박세원 학생 총기 사망사고 진상규명을 위한 동국대학교 특별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특별대책위원회는 사고 경위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을 요구하는 활동을 할 예정이다. 또한 동국대는 학내 정각원과 법학관 건물에 분향소를 차리고 49일 동안 분향소를 유지할 것이며 49제를 봉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故 박세원 상경의 추억이 깃든 동국대학교 교정을 돌고 있는 추모제 참석자들

Copyrights ⓒ 미디어오늘.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Copyright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