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만 있고 '산업'은 없는 방위산업 브로커 비리 척결..수출 전략 다시 짜야

강승태, 류지민 2015. 8. 31.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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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국내 방산업계는 그야말로 침체 분위기다. 업체들은 몸을 숙이고 있으며 생산 현장은 극도로 위축됐다. 합동수사단의 ‘방산 비리’ 수사 때문이다.

합동수사단은 지난해 말부터 대대적인 방산 비리 수사에 착수했다.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은 “방산·군납 비리는 안보의 누수를 가져오는 이적행위다. 일벌백계 차원에서 철저히 척결해 그 뿌리를 뽑을 것이다”라고 강력 경고했다. 이후 검찰과 경찰, 국세청 등 7개 기관에 100명이 넘는 인원이 투입된 ‘방위사업 비리 합동수사단(이하 합수단)’이 출범했다. 방위사업 전반에 대한 범정부 차원의 수사는 1993년 율곡비리사건 이후 21년 만이다.

떠들썩하게 출발했지만 정작 수사 중간결과로 발표한 내용은 새로운 것이 없었다. 무엇보다 비리 주범이 해외 도입 과정에서 발생한 ‘중개상의 비리’로 나타났지만 ‘방위산업’ 전체가 비리 집단으로 매도되고 있다. 수사 방향도 방산업체를 겨냥하고 있지 않지만 관련 업계는 조심스럽다. 비리 규모가 부풀려졌다는 주장도 있다. 합수단은 비리 규모가 1조원에 육박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1조원은 비리 규모가 아닌 사업 규모다. 실질적인 비리 금액은 20억원 전후로 알려졌다.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국내 방산업계에 대한 인식은 대내외적으로 점점 나빠졌다. 전문가들은 “빨리 수사를 마무리하고 이미지를 회복해야 하는데 합수단이 너무 시간만 끌고 있다”고 우려한다.

결과적으로 국내 방위산업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합수단 조사 결과와 상관없이 이제 국민들의 뇌리 속엔 ‘방위산업=비리’란 인식이 깊숙이 박혔다. 관련 기업들은 괜히 트집이나 잡히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면서 잔뜩 웅크리고만 있다. 산업 현장에는 생동감이 사라졌으며, 업계 종사자들의 사기는 바닥까지 떨어졌다. 1년 내내 두들겨 맞으면서 방위산업은 그야말로 ‘동네북’으로 전락했다. 가뜩이나 국내 수요는 줄고 글로벌 경쟁은 심화되는 상황에서 수사가 장기화되며 업계 분위기는 더욱 위축됐다. 국내 방산업계가 ‘비리 집단’으로 알려지면서 업체들은 해외 상담에 엄두를 못 내는 실정이다. 이로 인해 올해 방산 수출은 지난해 대비 절반 이하로 줄었다.

전문가들은 “방위산업도 하나의 산업으로 간주하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합수단 수사를 빨리 종결짓고 현재 분위기를 전환하지 않으면 국내 방위산업은 큰 위기를 맞이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국내 방위산업 문제점

내수 위주의 저수익 구조 심각

국내 방위산업은 분단이라는 특수 상황 아래서 국방 정책의 보조 역할로 육성됐다는 태생적 한계를 지닌다. 국내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정책적으로 운영되다 보니 하나의 독립적인 산업으로 자리 잡지 못했다. 방산업체조차 국내 방위산업을 가리켜 ‘속 빈 강정’이라고 자조 섞인 한탄을 할 정도다.

방위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가장 큰 요인은 정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생산 시스템이다. 현재 국내의 모든 방위업체들은 정부가 필요 군수물자에 대한 수요를 제기하면 이를 받아 그대로 생산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개별 업체가 자체적으로 신제품을 개발하거나 품질을 향상시켜 판매한다는 게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구조다. 기술 개발에 대한 유인이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2013년 기준 국내 방산 업체들의 R&D(연구개발) 투자 비중은 전체 매출액의 2.4%로 전년 대비 0.2%포인트 감소했다. 관련 산업과의 R&D 투자액을 비교해봐도, 방위산업(2351억원)은 자동차산업의 5.2%, 기계산업의 11.4%, 조선산업의 53.4%, 철강산업의 49.1% 수준에 불과하다.

독과점식 산업구조도 문제다. 현재 국내에는 95개의 정부 지정 방산업체가 있지만, 대부분 업체들은 주요 생산물품에 대해 독점적 지위를 누린다. 한화테크윈은 자주포와 장갑차, LIG넥스원은 미사일과 레이더를 도맡아 생산하는 식이다. 경쟁이 없다 보니 수익구조도 기형적인 형태로 정착됐다. 하지만 독점이라고 해서 큰 수익을 남길 수 있는 건 또 아니다. 수요처가 국방부뿐이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경쟁력 약화는 필연적이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방위산업의 제품 경쟁력은 선진국 대비 84~88% 수준. 기업과 정부의 경쟁력은 77~80%로 더욱 낮은 것으로 평가된다. 2013년 국내 방위산업 수출 비중은 전체 생산액의 12.8%로 초라한 수준이다. 반면 선진국의 방산 수출 비중은 미국 15~23%, 영국 24~28%, 프랑스 23~35%, 독일 35~50% 등으로 높은 편이며, 특히 이스라엘은 생산액의 71~78%를 수출이 차지한다. 전투기·함정·레이더 등 핵심 무기체계를 제외하고는 100% 자급률을 자랑하는 국내 방위산업이지만, 글로벌 시장에서는 외면받고 있는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가 안보라는 핑계 아래 방위산업을 꽁꽁 묶어두려고만 하다 보니 대부분의 문제가 발생한다. 방위산업이 하나의 독립된 산업으로 진화해 나가기 위해서는 규제 완화와 더불어 베일에 싸인 부분들을 최대한 공개적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국내 기술로 개발된 군수물자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K9 자주포, 수리온 헬기, 중거리 지대공 유도무기 천궁2, 해군 경기함 해성.
동네북 전락한 방위산업

글로벌 시장에서도 샌드위치

방위산업이 연일 ‘비리’에 연루되고 낮은 경쟁력이 부각되면서 일각에서는 “굳이 방위산업을 육성해야 하나”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수입에 의존하면 당장은 비용이 적게 들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정치·경제적 측면에서 방위산업 육성은 당연하다는 것이 전문가들 생각이다. 우선 국가 입장에선 안보 차원에서 방위산업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국가 핵심 무기를 수입에만 의존해선 자주국방을 구현하는 데 한계가 있다.

경제적 가치도 크다. 국내 기술로 개발한 초음속 고등훈련기 T-50. 이라크에 수출한 경험이 있는 T-50은 1대 수출할 경우, 중형차 1150대를 수출한 것과 맞먹는 효과가 있다. 209t급 잠수함 1척을 수출하면 무려 중형차 1만8600대를 수출한 것과 비슷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기업들은 수출을 통해 이익을 창출할 수 있으며, 고용 등 내수 경제 활성화에 효과를 준다. 또 방위산업을 육성하면 해외 무기를 도입할 때 가격 협상에서도 유리하다.

방위산업은 기본적으로 막대한 설비 투자를 요구한다. 연구개발 단계에서 전력화에 이르기까지 장기 투자가 필요하다. 자금을 회수하는 기간도 다른 산업 대비 긴 편이다. 수요가 불규칙하기 때문에 다품종 소량생산이 주를 이룬다. 정부는 유사시를 대비해 국내 방산업체들의 가동률을 50~60%선으로 제한한다. 때문에 가동률을 높여 규모의 경제를 구현하기 어렵다. 결국 새로운 수요를 발굴해야 가동률을 높일 수 있다. 수출이 중요한 이유다.

한국방위산업진흥회에 따르면 국내 방산업체들의 매출은 2013년 10조4650억원을 기록했다. 소폭이지만 매년 꾸준히 증가 추세다. 주목할 점은 수출이다. 2006년 국내 방산 수출 규모는 2억5300만달러에 불과했다. 하지만 방위사업청 신설 이후, 수출은 매년 큰 폭으로 늘었다. 지난해 국내 방산 수출 규모는 36억달러. 8년 만에 14배 이상 증가했다. 하지만 합수단의 수사로 업계 분위기가 위축되고 국내 업체들에 대한 국내외 인식이 나빠지면서 올해 7월 말까지 방산 수출은 6억7000만달러에 그쳤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40% 수준이다.

“외국에선 방산 장비에 대한 안전, 신뢰도에 민감하다. 우리 제품을 사려고 하는데 지금처럼 비리 사실이 계속 알려지면 절대 구입하지 않는다. 유럽과 같은 국가는 특히나 기업 윤리 등을 중요시한다.” 서우덕 건국대 방위사업학과 교수의 우려다.

방위산업에 대한 국민들 시선도 한없이 나빠지고 있다.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이규태 회장의 일광공영, 통영함 소나 등 비리 사건은 대부분 해외 무기 도입과 관련해 에이전트들이 일으킨 사건이다. ‘방산 비리’가 아닌 ‘해외 무기 도입 비리’ 사건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다. 그럼에도 방위산업 전체가 비리 집단으로 치부되고 있다. 자칫 ‘방위산업의 여론 악화→국방예산 감축→국내 방산업체들의 경쟁력 약화→해외 수출의 어려움’ 등의 악순환이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우리가 내부에서 비리 문제로 티격태격 하는 가운데 글로벌 방산업체 간 경쟁은 점점 격화되고 있다. 최근 뉴욕타임스는 일본 방산업계가 동남아시아, 인도 등의 무기 수출 시장에 조심스럽게 진입 중이라고 보도했다. 일본은 잠수함, 수상비행정, 전차 엔진 등 고부가가치 제품 수출 상담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지난 5월에는 일본 요코하마에서 처음으로 국제 무기 전시회도 개최했다.

한국방위산업진흥회 관계자는 “방산 수출 지역은 중남미, 동남아, 중동아시아 등 제3세계 지역에 국한돼 있다. 일본은 첨단 기술력, 중국은 가격 경쟁력을 갖추고 국제 무기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고 있다. 국내 방위산업은 90% 가까이 내수에 의존하면서 급성장하지 못하고 있다. 자칫 이들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로 전락하지 않을까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해법은 없을까

민간 비중 강화·인식 전환 요구

국내 방위산업이 비리 문제를 척결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갖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핵심은 세 가지다.

먼저 연구개발 방식의 변화다. 현재 방위산업은 국방과학연구소 등 국책연구기관이 연구개발을 맡고, 개발된 기술을 업체가 양산하는 식이다. 민간 기업이 연구 개발에 참여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 국방용으로 쓰이는 무기만 수출 가능하다. 정부에서 요구한 제품만 만들기 때문에 이것만으로 해외 시장에 나가는 데 한계가 있다. 세계 시장에 맞는 제품을 연구해야 하지만 국내 방위산업은 내수용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는 전체 생산 무기의 80%를 수출하는 이스라엘과 비교된다. 안영수 산업연구원 방위산업팀 전문연구위원은 “이스라엘은 수출하지 않는 무기는 개발하지 않는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다. 철저히 경제 논리에 의해 무기를 개발한다. 국내 방위산업은 철저히 수요자(국가) 중심이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 정부 주도의 연구개발 체제를 단계적으로 민간에 이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방위사업청의 독립성 확보도 중요하다. 방위사업청이 온갖 비리의 온상으로 지목된 이유는 군 출신 인사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안규백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에 따르면 방사청은 출범 당시만 해도 민과 군이 7 대 3 구조였다. 하지만 지금은 군 비중이 50%를 넘어섰다. 주요 보직도 군 출신이 장악하고 있다. 방산업체 한 관계자는 “군인들은 뼛속까지 상명하복 문화가 깊이 박혀 있다. 이러다 보니 출신 간 인맥 관계를 통해 비리가 양산되고 있다. 통영함 도입 비리 사건도 브로커와 방사청 담당자들이 같은 해군사관학교 선후배 관계로 얽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해외 주요 국가들의 경우, 방사청의 민간인 비중이 평균 70~80%가 넘는다”고 말했다.

군인들은 무기 운영 측면에서 전문성을 갖고 있지만 기술적인 부분은 잘 모른다. 해외에 팔려고 해도 세계 시장 분석, 국제법, 협상 능력, 마케팅 등에 대한 전문성이 떨어진다. 기본적으로 산업은 스스로 독립적이어야 하지만 국내 방위산업은 그렇지 못하다. 전문가들이 참여한다는 가정하에 방사청의 민간 비중을 높여야 산업도 발전하고 비리도 줄일 수 있다는 얘기다.

방산업체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 전환도 필요한 시점이다. 매번 문제가 생길 때마다 정부는 땜질식의 규제만 늘렸다. 이 같은 배경에는 방위산업을 하나의 산업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 무기 도입을 위한 ‘하청업체’ 수준으로만 보는 시각이 뿌리 깊게 박혀 있기 때문이다.

“방산기업 적정한 이윤 보장이 중요하다. 최저가 입찰제도 손을 볼 필요가 있다. 방사청 입찰 과정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가격이다. 이는 외국 기업에 유리한 구조다. 일본처럼 수의계약으로 입찰 방식을 바꿔야 국내 방위산업이 발전한다. 나아가 방위산업을 얻은 기술로 민간으로 파생시켜야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조진수 한양대 기계공학과 교수의 생각이다.

인터뷰 |채우석 한국방위산업학회장

무기뿐 아니라 무형 자산도 수출해 부가가치 높여야

Q.한국 방위산업 40년을 어떻게 평가하나.

A방위산업은 1974년 율곡사업을 통해 출발했다. 국가 기간산업과 연동돼 발전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자동차, 조선, 전자, 항공 등 민간 분야 발전에도 큰 기여를 했다. ‘수출 한국’의 발판을 만들었다는 평가다. 최근엔 수출도 증가 추세다.

국가 전체 규모로 보면 수출 비중이 낮지만 빠른 속도로 수출 규모가 증가하고 있다. 방위산업은 한번 시간과 비용을 투입하면 지속적으로 운영하고 정비해야 한다. 때문에 생산성은 일반 제조업에 비해 떨어져도 고용 측면에서 큰 기여를 하고 있다.

Q.최근 방산업계 분위기가 좋지 않다. 무엇이 가장 큰 문제라고 보는가.

A수출 열풍이 타오르던 상황에서 합수단의 수사는 좋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격이다.

수사하는 사람들의 전문성도 부족해 보인다. 제도 개선이나 본질적인 문제를 파헤치는 것이 아니라 피상적인 수사에 그치고 있다. 종사자 의욕이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 큰 문제다. 수사란 일을 많이 한 사람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다. 의욕을 갖고 일에 매진하는 사람이 더 집중적인 수사를 받는 환경에서 일을 안 하는 게 낫다는 풍토가 자리 잡고 있다.

Q.앞으로 국내 방산업계가 나아갈 방향은 무엇인가.

A방위산업을 유지·발전시키는 것은 필연적이다. 하지만 수출을 늘리지 못하면 수요에 한계가 오기 때문에 산업으로서 규모의 경제를 가져갈 수 없다.

적극적으로 수출 시장을 개척해야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

앞으론 단순히 무기나 장비를 수출하는 데 그치지 않고 훈련 방식, 장비 활용 등 부가 서비스를 패키지 형태로 수출해야 한다. 필요에 따라 예비역도 해외로 보내 교관 등으로 활용한다면 수출 증가는 물론 고용 확대에도 방위산업이 기여할 수 있다.

[강승태 기자 kangst@mk.co.kr, 류지민 기자 ryuna@mk.co.kr / 그래픽 : 정윤정]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822호 (2015.08.26~09.0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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