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할배' 재계 8090 회장들..경영 의사결정·사회공헌서 노익장 과시

김병수 2015. 8. 31.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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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롯데그룹 사태로 재계의 원로 오너 회장의 근황에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93)은 1922년생이다. 1920년대와 1930년대에 출생한 소위 ‘8090’ 기업인들 중 여전히 기업 경영과 사회공헌 등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는 이는 적지 않다.

국내 기업 창업자 중에는 신 회장보다 고령인 이도 있다. 1917년도에 태어난 정재원 정식품 명예회장이다. 우리 나이로 99세. 이를 기념해 올 1월 ‘백수연(白壽宴)’을 치렀다.

정 명예회장은 국내에서 최초로 콩을 재료로 한 두유를 개발, 시장 개척에 성공한 의사 출신 경영인이다. 설사병에 걸린 어린이들을 치료하다 콩에 주목했다. 두유 개발에 성공한 그는 의사 대신 기업가의 길을 갔다. 1973년 ‘정식품’이란 회사를 세워 두유 대량 생산에 나섰다. 콩국이 식물성 우유라는 점에 착안해 식물(vegetable)과 우유(milk)의 영문명을 합쳐 ‘베지밀’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이후 정식품은 두유 부문만큼은 국내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정 명예회장은 현재 경영일선에선 물러났지만 ‘콩 전도사’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에 경북 영주 ‘콩세계과학관’에 2억원을 후원하고, 올 4월에는 직접 개관식에 참석하는 ‘노익장’을 과시했다. 정식품 관계자는 “90대의 나이에도 직원들과 함께 콩의 효능에 대해 토론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매일 아침 산책으로 건강을 관리한다. 지적 호기심도 여전히 왕성해 매일 오전 6시 EBS라디오의 영어 강의를 듣는다.

정재원 명예회장 다음으로는 1922년생인 박승복 샘표식품 명예회장(93)이 손꼽힌다. 공교롭게 업계도 같은 식품 분야다. 샘표식품은 올해로 창립 69주년을 맞았다. 박 회장 역시 고령에도 불구하고 활발한 대외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004년 9월부터 ‘바른 사회, 바른 기업을 위한 경영인 포럼’을 이끌고 있다. 1994년부터 현재까지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으로 재임 중이기도 하다.

박승복 회장은 오랫동안 산업은행과 재무부, 국무총리실 등 공직에 종사한 특이한 경력을 지니고 있다. 이런 인연으로 1993년 국무총리실 출신 친목모임인 ‘국총회’ 회장을 출범 당시부터 맡고 있다. 샘표식품의 경영은 아들인 박진선 사장이 이끌고 있지만, 박 회장 역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데 주저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순을 넘긴 나이에도 충무로 사옥에 종종 들러 회의를 주재하고 제품 개발에 대한 의견을 낸다. 특히 임직원의 경조사를 직접 챙기고 매년 신입사원들을 만나 경영인이자 인생 선배로서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은 1925년 출생, 올해로 만 90세다. 지난 1995년 만 70세가 되던 해에 장남인 구본무 현 회장이 50세였던 1995년 스스로 회장에서 물러났고 이후 아들의 경영에 간섭하지 않았다. LG그룹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뒤에도 LG연암문화재단과 LG복지재단의 교육 사업은 손수 챙기고 있다. 구 명예회장은 1973년 학교법인 LG연암학원을 설립했고, 1974년과 1984년에 천안연암대학과 연암공업대학을 설립, 후진 양성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보인 바 있다. LG그룹 관계자는 “LG에서 GS가 분리하는 과정에 잡음이 나오지 않게 만든 숨은 주역도 명예회장이었다”고 말했다.

구자경 명예회장과 두 살 터울인 1927년생 강신호 동아쏘시오홀딩스 회장과 윤덕병 한국야쿠르트 회장은 올해로 미수(米壽·88세)를 맞았다.

강신호 회장은 박카스 신화로 유명하다. 직접 박카스를 개발하고 이름을 지었다. 독일 함부르크 시청 지하홀 입구의 술과 추수의 신 ‘바커스(디오니소스)’에서 이름을 따온 박카스는 1963년 드링크제로 만들어진 후, 지금까지 시장에서 1위를 지키고 있다. 강 회장은 지난해까지 경영일선에 있었다.

강 회장은 사회 환원에도 열정적이다. 제 29대, 30대 전국경제인연합회장직을 맡고 한국 경제 살리기에 앞장섰다. 전경련 회원사들이 경상이익의 1% 이상을 자발적으로 사회를 위해 쓰는 ‘전경련 1% 클럽’ 발족을 주도해 초대회장을 맡기도 했다. 대학생 국토대장정 대회 운영위원장을 맡아 매년 행사에 참석한다. 동아제약 관계자는 “아직도 취미인 트레킹을 다니고, 해외 출장을 다닐 만큼 건재하다”고 전했다.

강 회장과 동갑인 윤덕병 회장 역시 경영일선에서 한발 물러났다고 하지만 여전한 활동력을 보여준다. 매일 잠원동 한국야쿠르트 본사로 출근한다.

윤덕병 회장은 국내 발효유 시장의 첫발을 떼게 한 기업인이다. 1969년 한국야쿠르트의 씨앗인 ‘한국야쿠르트유업주식회사’를 세운 그는 오랜 고민 끝에 일본야쿠르트의 기술 도입을 선택했다. 1971년 국내 최초의 유산균 발효유 ‘야쿠르트’가 첫선을 보였다. 윤 회장은 설립 당시부터 지금까지 전문경영인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윤 회장은 아흔이 가까운 나이지만 그 흔한 성인병 하나 없이 건강한 체력을 유지하고 있다. 소식을 하고 웬만한 더위나 추위에는 냉방기나 난방기를 가동하지 않고 견딘다. 매일 10시에 출근해서 4시에 퇴근하는 규칙적인 생활과 사옥 곳곳을 둘러보며 안전을 체크하는 열정 역시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80~90 나이에도 경영일선서 활동

보수적 식품업계 원로 창업주 많아

자기 관리·열정이 나이 잊게 만들어

1930년생인 함태호 오뚜기 명예회장(85)도 서울 강남에 위치한 본사 사옥에 모습을 자주 드런낸다. 회사 경영권은 장남 함영준 회장에게 넘겼지만 여전히 주요 의사 결정에 입김이 상당하는 게 업계에서 회자되는 얘기다. 정기적으로 시간을 내 생산시설을 둘러보거나 제품을 평가하는 활동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함태호 회장과 동갑으로는 구자학 아워홈 회장이 있다.

회사 측에 따르면 구자학 회장 역시 고령에도 불구하고 매일 회사로 출근한다. 구 회장은 일찌감치 막내딸을 후계자로 선택했지만, 최근 본부장직에서 경질시켰다. 회사 안팎에서 잡음이 나오자, 경영 일선에서 손을 놓게 한 것. 업계에선 사실상 2선으로 물러난 것으로 알려졌던 구자학 회장이 리더십의 건재를 보여줬다고 평가한다.

신격호 회장의 넷째 동생인 신춘호 농심 회장(83)은 1932년생으로 형과는 10살 차다.

50년 전 라면사업을 놓고 형과 이견을 빚자 독립해 농심을 설립했다. 농심그룹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는 농심의 경영은 장남 신동원 부회장에게 맡겼지만 요즘도 주 3회 이상 본사로 출근한다. 주요 인사나 신제품 개발, 해외 사업 등 현안을 꼼꼼히 챙긴다. 농심의 히트상품인 신라면, 새우깡 등도 모두 그의 작품이다. 백두산 인근에 2000억원 투입한 농심의 ‘백두산 백산수’ 프로젝트 역시 신춘호 회장이 진두지휘했을 만큼, 강한 체력을 자랑한다.

강신호 회장과 함께 제약업계에선 이종호 JW중외제약 명예회장(83)이 8090세대다.

올해 8월 8일 회사 창립 70주년을 맞아 이종호 회장은 2선으로 물러나고 아들인 이경하 부회장에게 경영을 일임했다. JW중외제약은 1959년 지금과 같은 형태의 수액 국산화에 성공, 현재는 업계 10위권의 중견 제약사로 자리를 굳혔다. 이 명예회장은 제약업계 오너회장답게 지금도 건강을 과시하며 회사에 모습을 드러낸다.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은 1935년생으로 올해 만 80세지만 본사로 출퇴근하며 왕성한 경영 행보를 하고 있다. ‘살아 있는 장보고’로 불리는 김 회장은 올해로 46년째 동원그룹 지휘봉을 잡고 있다. 1969년 동원산업을 창업해 세계 1위 수산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1999년부터 7년간 한국무역협회장을 지낸 김 회장은 2006년 동원그룹으로 복귀한 뒤 2008년 젊은 시절 참치를 납품했던 미국 최대 참치캔 업체 스타키스트를 50여년 만에 인수해 정상화시켰다. 동원그룹 관계자는 “주요 현안이나 신사업 프로젝트, 해외 사업 등은 여전히 김재철 회장이 직접 챙긴다”고 귀띔했다. 일찌감치 장남인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에게는 금융 사업을, 차남인 김남정 동원엔터프라이즈 부회장에게는 식품 사업을 맡겨 후계구도도 안착시켰다.

김재철 회장은 독특한 사회공헌활동을 펼치기로도 유명하다. 다양한 장학 사업과 교육 지원 사업들 중 ‘동원 책꾸러기 캠페인’은 한 달에 10~20권 책을 읽는 독서광으로 유명한 김 회장의 마음이 담긴 활동으로 꼽힌다.

[김병수 기자 bskim@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822호 (2015.08.26~09.0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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