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대상 이 작품] '데스노트'가 남긴 몇가지 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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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리 한국뮤지컬산업연구소장·창작뮤지컬 프로듀서] 다양한 화제가 잇따랐던 뮤지컬 ‘데스노트’가 지난 15일 막을 내렸다. 그만큼 낯설고 완성해야 할 허점도 있다는 것인데 어찌됐든 한국뮤지컬시장을 풍성하게 만든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먼저 한국뮤지컬의 다양성에 한몫했다. 대극장 뮤지컬의 무대는 항상 웅장하고 스펙터클하다? ‘천만에’라는 듯 ‘데스노트’의 무대는 단순하다. 흑과 백, 선과 면을 상징적으로 강조하며 절제·기호화한 영상과 회전무대만으로 심리와 상황의 변화를 보여준다. 사신들의 판타지 공간과 배우들이 주제를 직접 열창하는 주요 장면을 객석과 밀착시키며 무대는 비우고 음악을 채우는 선택을 했다. 한국 관객에게 익숙한 화려한 볼거리를 걷어내고 주제 전달과 인물의 심리, 세계관의 관계성에 집중한 것이다.
춤추지 않는 앙상블도 낯설다. 그러나 이들이야말로 연출가 구리야마 다미야의 메신저다. 절제되고 상징적인 움직임으로 공허한 익명성과 무책임한 집단성을 극대화하며 차가운 무대에서 한몸인 듯 생명력을 더했다. 앙상블은 공연 내내 ‘키라’에 열광하는 리프라이즈(앞에 나왔던 곡을 재연하거나 변주하는 것)로 부조리한 현대사회의 집단광기를 보여주다가 결말에서 죽음의 진혼곡을 합창하며 허무를 강조하는 연출의도에 힘을 싣는다. 조미료에 길들인 입맛을 유기농식단으로 정화하듯 관객에게 담백함을 선사한 요소들이다.
‘데스노트’의 만화 원작은 그동안 영화·애니메이션·드라마 등으로 변신해 왔다. 그리고 뮤지컬로 재탄생했다. 영상매체의 문법으로 보자면 뮤지컬은 롱테이크 풀샷이다. 그래서 연출은 배우의 걸음걸이부터 대사·호흡까지 각자의 캐릭터를 차별화하는 데 치중했다. 또 원작에서 ‘엘’과 ‘라이토’로만 한정했던 대립과 갈등을 ‘렘’과 ‘류크’, ‘미사’와 ‘사유’, 다시 ‘엘’과 ‘소이치’로, 주요 인물의 관계성으로 확장했다. 프랭크 와일드혼 특유의 감성이 풍부한 듀엣곡들은 2시간 만에 음악으로 완성해야 하는 뮤지컬 드라마의 특성을 잘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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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을 조종해 엘을 자살하게 한 라이토가 드디어 신세계의 신으로 완성되는 순간도 절묘하다. 권태를 달래기 위해 죽음의 게임을 즐겨 왔던 사신 류크는 또 다른 권태를 느끼며 라이토마저 데스노트의 대상으로 소멸시킨다. 정의와 사랑, 권태와 허무를 씨실과 날실로 교직하는 구성으로 운명론적인 주제의식을 강조했던 연출의도를 선명하게 드러낸 결말이다. 그렇게 뮤지컬은 원작을 잊게 만든다.
배우들의 원캐스트 고군분투는 교훈이었다. 홍광호, 정선아, 강홍석, 박혜나, 여기에 캐릭터 분석과 창조가 독보적인 김준수까지. ‘데스노트’의 배우들은 한국뮤지컬의 미래를 책임질 최고의 군단이었다. 가창력과 연기력, 무대 흡입력, 역할 창조까지 감동적인 하모니를 이룬 장기공연을 다 소화해 냈다. 배우들이 동시에 여러 역할을 왔다 갔다 하며 멀티캐스트로 팔려 다니는 지금의 한국 풍토에서 박수받을 일이다.
문화부 (culture@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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