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음식점 생태계 파괴한 '황소개구리 배달앱'

신훈 기자 2015. 8. 31. 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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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주들 속사정 들어보니..

스마트폰 배달 애플리케이션(배달앱)으로 치킨이나 피자, 짜장면을 주문하는 풍경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전단을 뒤적거릴 필요 없이 스마트폰 화면을 한두 번만 두드리면 음식을 배달시킬 수 있다. 결제할 때 신용카드를 내밀면서 눈치 볼 필요가 없고, 쿠폰 등 다양한 할인 혜택도 챙길 수 있다. 다른 사용자가 남긴 리뷰를 참고해 음식점을 고를 수도 있다. 소비자가 편리해진 만큼 배달앱에 가입한 음식점 사정도 나아졌을까.

서울 은평구에서 치킨을 파는 구모(52)씨는 매출 증가를 기대하면서 2012년 여러 배달앱에 가입했다. 그런데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구씨는 “1만7000원짜리 치킨 한 마리를 팔면 수수료로 3000원 가까이 나간다”며 “배달앱에서 탈퇴하고 싶어도 동네 가게들이 다 가입돼 있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유지하고 있을 뿐”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배달앱 가입으로 새 고객이 늘어나는 효과는 거의 없다고 한다. 구씨는 “새로운 손님은 미미하다. 전화로 주문하던 손님이 쿠폰 할인 혜택 때문에 배달앱으로 주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단골에게는 배달앱을 사용하지 말고 전화로 주문해 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배달앱이 전단광고를 대체한 것도 아니다. 그는 “나이 지긋한 분들은 여전히 전단을 보며 주문한다. 전단도 찍고 배달앱도 쓰려니 돈이 배로 나간다”고 덧붙였다.

소상공인들은 배달앱을 ‘황소개구리’에 비유하기도 한다. 은평구에서 10년 넘게 피자를 팔고 있는 최모(46)씨는 배달앱이 동네 음식점 사이에 ‘치킨 게임’(경쟁자가 쓰러질 때까지 출혈을 감수하며 경쟁하는 것)을 불러왔다고 꼬집었다. 그는 “수수료 부담에 재료비를 아낀 음식점은 평이 나빠지고 손님이 끊겨 하나둘 문을 닫았다. 남은 음식점은 손님 한 명이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무리를 해서라도 재료를 넉넉하게 쓴다”며 “이런 과열 경쟁이 얼마나 갈지 모르겠다. 배달앱이 황소개구리처럼 동네 상권 생태계를 망쳤다”고 말했다.

최씨는 앱에 남겨지는 리뷰 때문에 속앓이를 하기도 했다. 악평이 달려도 달리 대처할 방법이 없어서다. 배달앱 운영업체에 ‘악플’을 지워 달라고 요구해도 ‘고객이 남긴 리뷰에 손을 댈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최씨는 “순식간에 매출이 빠진다. 경쟁 음식점 주인 등이 악성 댓글을 달아도 손쓸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배달앱의 인기는 배달원의 노동환경도 바꿨다. 배달을 하지 않던 음식점들도 배달앱에 가입하면서 배달에 나섰지만 대부분 배달대행업체에 맡긴다. 배달원을 직접 고용하는 것보다 부담이 적기 때문이다. 대신 배달대행업체에 소속된 배달원들은 무한경쟁에 내몰리고 있다.

10대 때부터 배달원으로 일하고 있다는 김모(22)씨는 2년간 일했던 서울 영등포구의 중국 음식점이 지난해 문을 닫으면서 배달대행업체에 취업했다. 그는 “중국집에서 일할 땐 월급 통장에 200만원은 찍혔다. 지금은 배달한 건수대로 돈을 받는다. 점심이나 저녁 시간에 주문이 몰리는데 1건이라도 더 배달하려면 가속페달을 밟을 수밖에 없다. 사고가 나도 전적으로 내 책임”이라고 말했다.

2010년 처음으로 국내에 등장한 배달앱은 30일 현재 4000만건이 넘는 다운로드 횟수를 기록하며 덩치를 키워가고 있다. 반면 동네 음식점들은 제자리걸음도 힘에 부친다고 한다. 장기 경기침체로 매출은 줄어들고, 경쟁업소는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상황에서 배달앱이라는 새로운 부담이 생겼다는 것이다. 손동민 한국배달음식업협회 이사는 “수수료 부담에 등골이 휜다는 배달음식점 업주가 많다. 배달앱은 영세 자영업자에게 또 다른 짐을 안겼다”고 말했다.

신훈 기자 zorb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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