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백 사모님은 나가주세요" 까칠한 클래식 사랑방 '풍월당'

김호정.권혁재 입력 2015. 8. 31. 00:43 수정 2015. 8. 31.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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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호 대표가 말하는 12년음악 좋아하는 정신과 의사연 2억씩 적자에도 버텨 .. 강의 인기 끌며 작년 첫 흑자대기업서 인수 제의 거절"돈 벌 거면 칼국수 장사하죠"
서울 강남구 신사동 ‘풍월당’의 박종호 대표는 명함이 없고 ‘박씨 아저씨’로 자신을 소개한다. 특별한 일정이 없을 때는 반바지를 입고 출근한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풍월당’은 설명이 어려운 공간이다. 수식어 찾기가 쉽지 않다. 후보 단어로는 음반 매장, 클래식 음악 강의 공간, 음악 감상실 정도가 있다. 클래식 음반만 취급하는 곳이고, 강의도 활발히 진행된다. 세계적 연주자들이 작은 음악회를 열기도 한다. 음악도 들을 수 있고 커피도 마실 수 있다. 하지만 그중 어느 하나로 정의하기는 힘든 곳이다.

 문 연 지 올해로 12년이다. 하지만 정확히 몇 월 며칠에 시작했는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2003년 여름 즈음에 ‘레코드 가게’라는 썰렁한 간판 하나 붙여놓고 과연 손님이 올지 지켜봤을 뿐이다. 많은 음반 가게가 문을 닫던 시절이었다.

 게다가 10년 동안 적자를 봤다. 지난해 처음으로 약간의 흑자를 냈다. 정체성은 애매하고 수지도 맞지 않았다. 그런데 이 공간은 어떻게 12년을 버텼을까. 버텼을 뿐 아니라 어떻게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했을까. 풍월당은 쉽게 구할 수 없는 음반을 취급하고 소개하는 곳, 음악뿐 아니라 예술을 가르치는 강의로 유명하다. 문을 열고 지금까지 이끌어온 박종호(55) 대표, 최성은(41) 실장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풍월당 생존기’를 구성했다.

 이 사회에서 음악이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함. 풍월당은 여기에서 출발했다. 2003년 즈음 음반 가게뿐 아니라 음반사들이 사라졌다. 특히 클래식 음반은 고객을 못 찾고, 사고 싶은 사람은 물건을 못 구하기 시작했다. 정신과 의사로 음악 애호가였던 박종호 대표는 “그 둘을 연결하는 플랫폼이 되고자 했다”고 말했다. 모두가 음반은 끝났다고 생각할 때 음반 가게를 열며 거꾸로 갔던 이유다.

 특히 많이 취급되지 않는 마이너 음반사를 소개했다. 기존의 명성이나 이력에 기대는 대신 들어서 좋은 음악, 연주자를 기준으로 음반을 골랐다. 수입상들에게 음반을 추천해 한국에 들여오도록 했다. 폐반됐던 음반을 살려내기도 했다. 음악 듣는 사람 사이에서 풍월당의 선택이 조금씩 신뢰를 얻어갔던 시기다.

 음악 강의는 원래 음반을 위해 시작했다. 최 실장은 “음반을 많이 팔려면 사람들을 좀 가르쳐야겠구나 하는 생각에 강의 코스를 시작했다”고 했다. 박 대표의 음악 수업을 들은 사람들은 음반 구매를 많이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강의가 음반을 역전했다. 사람들이 음반 매장보다 강의실에 더 많이 몰렸다. 수강신청 경쟁은 매번 치열하고, 기존 수강생이 다시 듣는 재수강률은 90%를 넘는다.

 강의가 쉽거나 재미있어서가 아니다. 박 대표는 오페라뿐 아니라 그 안의 역사·철학·문학을 훑고 사회적 메시지도 전한다. 같은 시대의 다른 예술들도 함께 거론한다. ‘가로형 강의’다. 수강생들은 어렵고 두꺼운 책들도 읽어내야 한다. 또 ‘부유층이 노닥거리며 예술 강의 듣는다’는 말이 싫어 수강생들을 엄격하게 다룬다. 책상 위에 명품백 올려놓은 사모님이 강의실에서 퇴장당하는 일도 있었다.

 수강생들은 어려워도 따라온다. 박 대표의 강의 수강자는 1주일에 500명 규모다. 음반 매장은 1년에 2억씩 적자를 냈지만 강의는 갈수록 호황이다. 지난해 첫 흑자 또한 강의 덕분에 냈다.

 박 대표는 풍월당 바깥에서 음악 강의를 하지 않는다. 요청은 쇄도한다. 기업, 경제연구소, 백화점, 크고 작은 모임에서 그를 부른다. 하지만 단발성으로 흥미를 위해 하는 ‘출장 강의’는 5년 전쯤 접었다.

 대기업이 풍월당 인수 제의도 했다. 강남의 으리으리한 새 건물들은 임대료 없이 들어오라고도 했다. 그래도 풍월당은 출발했던 그 동네에서 월세를 내가며 유지한다. 박 대표 외의 강사진 네 명도 처음 그대로 함께 간다. 이미 전문가인 강사들도 더 깊이 있게 오랫동안 공부해서 강의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인기있는 강좌를 온라인으로 확대하면 수입도 좋을 텐데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 돈 벌 거면 칼국수 장사한다”는 게 박 대표 말이다. 풍월당을 기존의 수식어로 정의하기 힘든 이유는 이런 원칙들 때문이다. 박 대표는 “풍월당이 일반명사가 되는 날이 올 것”이라고 했다.

글=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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