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안전문', 정비직원에게는 '죽음의 문'

입력 2015. 8. 30. 18:40 수정 2016. 5. 31.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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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대 노동자 혼자 선로 들어갔다가 열차에 끼어 사망
비용 줄이려 외주업체에 맡겨…2년 전에도 비슷한 사고

29일 오후 7시25분께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서울대입구역 방향 승강장에서 20대 남성 1명이 스크린도어와 전동차 틈에 끼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진은 소방대원들이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는 모습. 강남소방서 제공

29일 오후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전동차 기관사가 교대역 방면 ‘10-2 승강장’의 안전문(스크린도어)이 작동되지 않는다고 중앙관제실에 알렸다. 연락을 받은 강남역 역무실은 저녁 6시41분, 이 구간 안전문 유지·보수를 하는 외주업체 ㅇ사에 신고했다. ㅇ사는 강남구 삼성동 사무실에 있던 조아무개(28)씨에게 수리를 지시했다.

저녁 7시25분 조씨가 강남역 역무실에 도착했다. 승강장 안전문 수리는 ‘2인1조’가 원칙이다. 2013년 1월 지하철 2호선 성수역에서 혼자 일하던 노동자가 전동차에 치여 사망한 뒤 만든 ‘안전 매뉴얼’이다. 어찌 된 일인지 조씨는 혼자 승강장으로 내려가 작업을 시작했다. 저녁 7시27분. 선로에 서 있던 조씨는 전동차에 치여 그 자리에서 숨졌다.

지하철 승강장 안전문을 수리하던 20대 노동자가 또다시 전동차에 치여 숨졌다. 2년7개월 전 동일한 사고가 발생해 안전매뉴얼을 강화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안전 규정이 있어도 이를 지키기 힘든 구조적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씨는 왜 열차가 운행하는 시각에 선로에 혼자 내려갔을까. 원청인 서울메트로 관계자는 30일 “ㅇ사에 수리 요청을 한 뒤에는 결과만 보고받고 진행 상황은 보고받지 않는다. 현장 관리는 모두 정비업체 소관”이라고 했다. ㅇ사 관계자는 “회사에서도 반드시 2명 이상이 함께 가라는 규정이 있고 그렇게 교육한다. 외부에서 일하던 다른 직원이 조씨와 합류하기로 했는데, 이 직원 도착 전에 조씨가 혼자 수리를 하다 사고가 발생했다”고 했다.

서울메트로는 안전문 유지·보수업체 계약 조건으로 역당 1.29명의 인력을 확보하도록 했다. 서울메트로는 “전체 121개 역 중 24개 역사를 관리하는 ㅇ사가 보고한 유지·보수 인력은 역당 1.5명인 38명”이라고 했다. 그러나 신고가 접수됐을 때 조씨만 강남역으로 우선 이동한 것으로 보아 ‘2인1조 인력 운용’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현장 노동자들과 전문가들은 안전업무 외주화를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 유지·보수업체에서 일했던 한 노동자는 “(원청인) 서울메트로 쪽은 외주업체에 안전 규정을 지키라고 하고, 외주업체는 직원들에게 규정을 지키라고 한다. 하지만 현장 직원들은 규정을 지켜가며 일할 수가 없다”고 했다. 적은 수의 직원이 여러 건의 오작동 신고를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조씨 역시 강남역에 도착하지 않은 다른 직원을 기다릴 시간이 없었을 수도 있다”고 했다. 지난해 서울메트로 121개 역에서 발생한 안전문 오작동은 2852건(일평균 7.8건)이다.

서울지하철노조는 “승객과 노동자의 안전이 달린 업무를 비용 절감을 위해 용역업체에 떠넘긴 것이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외주업체 노동자 입장에서는 열악한 조건을 감내하며 관행처럼 일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교수는 “‘위험 업무의 외주화’는 노동자 안전에 대한 책임도 원청과 하청이 서로 떠미는 상황이 되며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서울메트로와 ㅇ사를 상대로 조씨가 안전 규정을 지키지 않고 혼자 수리를 한 이유 등을 조사하고 있다.

허승 최우리 방준호 기자 rais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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