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학습 금지' 1년..사교육비만 늘었다

신하영 2015. 8. 30.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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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시행 후 중·고등학생 1인당 사교육비 오히려 늘어공교육 불만 커지자 방과후학교에 선행학습 허용키로"시행 1년 안 돼 고치나"VS"공교육서 예습 가능해야"
교육부가 통계청과 공동으로 실시해 발표한 ‘2014년 사교육비 의식조사’(자료: 교육부)
[이데일리 신하영 기자]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선행학습 금지법)이 시행된 지 1년째다. 정부는 지난해 9월 12일 사교육을 줄이고 공교육을 정상화한다는 목표 아래 ‘선행학습 금지법’을 시행했지만 오히려 그 반대의 결과를 낳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 같은 논란은 선행학습금지법이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으로 제시돼 작년 2월 국회를 통과한 뒤부터 시작됐다. 공교육 정상화를 촉진하기 위한 법이 공교육만 규제한다는 지적 때문이다. 사교육의 경우 선행교육을 직접 규제하지 못하고 광고만 금지하기 때문에 ‘학원 배만 불린다’는 지적이 많다.

◇ 선행학습 금지에도 사교육비 더 늘어

지난 2월 교육부가 통계청과 공동으로 전국 초·중·고 1189개교의 학부모와 학생 7만8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4년 사교육비 의식조사’에 따르면 선행학습금지법 시행 후 학생 1인당 월평균 명목 사교육비는 24만2000원으로 시행 전인 2013년(23만9000원)보다 1.1%(3000원) 늘었다. 초등학교는 23만2000원으로 전년과 같았지만 중학교는 1.2%(26만7000원→27만원), 고교는 2.9%(22만3000원→23만원) 증가했다. 학교 내 선행학습 금지로 학원으로 빠져나간 학생들이 증가했다는 얘기다.

반면 공교육이 받은 타격은 크다. 법 시행 이전에는 적지 않은 학생들이 학내 방과후학교에서 선행학습을 했다. 특히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학생에게 방과후학교는 학원수업을 대체하는 효과가 컸다.

정부가 사교육비 경감과 교육격차 완화를 위해 2006년부터 시행한 방과후학교는 기존의 특기적성교육과 수준별 보충학습이 통합돼 출범한 것이다. 중학교 방과후에서는 특기적성교육도 이뤄지지만, 대입을 앞에 둔 고교 방과후수업은 국어·수학·영어 등 수능과목에 초점을 맞춘 선행·보충학습이 대부분이다.

방과후학교에서는 월 4~5만원대의 수업료만 내면 선행학습이 가능하다. 사교육 수요를 공교육 내로 흡수하기 위해 시행된 측면이 있어 교육청 지원도 받는다.

하지만 법 시행 후 방과후학교에서의 선행학습이 차단되면서 이 수요가 학원으로 빠져 나갔다. 현장 교사들이 관련 규제를 풀어달라고 요구한 이유다. 강북지역 A여고 교감은 “방과후학교의 선행학습을 금지하면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은 예습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풍선효과’에 놀란 교육부도 결국 방과후학교에 한해 선행학습을 허용하기로 했다. 지난 4일에는 방과후학교의 선행학습 규제를 푸는 내용의 ‘선행학습 금지법 개정안’을 마련, 국회 입법에 착수했다.

◇ “이번엔 학교 정규수업 죽이기” 반대론도

개정안이 시행되기까지는 아직 국회 입법 절차가 남았지만 벌써부터 이에 대한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다. 방과후학교에서만 선행학습이 허용되고 정규수업에서는 여전히 선행학습이 금지되기 때문이다. 이미 방과후학교를 통해 다음 학기과정을 배운 학생들이 정규수업에 흥미를 갖겠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안상진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부소장은 “방과후학교에서 수업진도를 미리 나가면 정규수업에서는 집중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며 “방과후수업을 안 듣는 학생도 있기 때문에 정규수업을 정해진 교육과정대로 하다보면 같은 내용을 듣는 학생도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공교육을 살리자는 취지로 도입된 법이 학교 정규수업의 집중도를 떨어뜨리게 된다는 비판이다.

반면 선행학습 수요를 방과후학교에서라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현실론’도 적지 않다. 김진훈 숭의여고 교사는 “학생들은 학교 내에서 선행교육이 이뤄지지 않으면 이를 학원 수업으로 대체하려 할 것”이라며 “학원보다 저렴한 방과후학교에서 이 수요를 흡수하는 게 현실적”이라고 주장했다.

◇ “대입·수능체제 개편 없이는 공염불”

이러한 논란은 대입제도와 수능체제 개편 없이 선행학습금지법이 제정된 탓이다. 대학 진학이 수능 성적에 따라 좌우되는 현행 대학입시 구조에서는 공교육 틀 안에서도 선행교육이 불가피하다. 수학 등 일부 과목은 정해진 교육과정대로 진도를 나가면 수능에 대비하기가 쉽지 않다. 수능 시험범위를 줄여 학습 부담을 낮춰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안상진 부소장은 “수능시험의 이과 수학과목의 경우 미리 진도를 나가야 수능에 대비한 문제풀이를 할 수 있다”며 “선행학습금지법의 한계는 대입·수능은 놔두고 무리하게 선행교육을 규제하려한 데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공교육을 살리기 위해 선행학습을 규제했다가 이를 다시 푸는 상황은 ‘촌극’에 가깝다. 교사들도 방과후학교와 학교 정규수업이 정상화되려면 대입·수능 개편이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은다.

김진훈 교사는 “수능을 고교 졸업시험이나 대입 자격시험 정도로 완화하면 방과후학교에선 특기적성교육이 가능할 것”이라며 “정규수업에서 수능을 대비하고 방과후교육에서는 대학에서 전공하고 싶은 과목을 심화 학습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신하영 (shy1101@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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