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만든 인민해방군가 中열병식서 울려퍼지나

2015. 8. 30.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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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율성. <<바이두 백과사전 이미지 캡처>>

(베이징=연합뉴스) 이준삼 특파원 = 중국의 항일승전 70주년 열병식(9.3)이 나흘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인민해방군가를 작곡한 한국인 정율성(鄭律成·1914∼1976)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린다.

중국은 이번 열병식에서 2천400여 명의 군악대를 동원해 '항일군정대학교가', '보위황하', '태행산 위에서', '인민군대(중국군)의 당에 대한 충성' 등 항일전쟁 시기의 노래 30여 곡을 연주한다.

이 중에는 인민해방군가인 '중국인민해방군행진곡'을 포함해 정율성 작품이 포함돼 있을 가능성이 크다.

중국정부는 정율성을 "중국의 걸출한 작곡가이자 저명한 국제주의 전사…중국무산계급혁명음악사업의 개척자 중 한 명"으로 부르며 '혁명음악의 대부', '군가의 아버지' 등으로 기록하고 있다.

광주 출신으로 1933년 중국으로 건너가 항일운동에 투신한 그는 1939년 중국공산당에 가입한 뒤 혁명음악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다.

그는 '옌안송', '팔로군군가', '팔로군행진곡' 등 수많은 혁명음악을 작곡했다. 특히 '팔로군행진곡'은 이후 '중국인민해방군행진곡'으로 개명돼 덩샤오핑(鄧小平) 시절인 1980년대 말 인민해방군가로 공식 채택됐다.

정율성은 북한의 공식 군가인 '조선인민군행진곡'도 만들었다. 이 때문에 세계에서 유일하게 두 나라 군가를 만든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1976년 중국에서 사망한 그는 혁명열사릉인 바바오산(八寶山)에 묻혔다.

중국정부는 2009년 건국 60주년 행사에서 그를 '신중국 건국에서 걸출한 공헌을 한 영웅 모범인물 100인'에 선정했다.

반면 한국사회에서 정율성이라는 이름은 오랫동안 금기시돼왔다. 그가 북한, 그리고 한국전쟁과 깊은 관계를 맺은 탓이다.

1945년 중국에서 북한으로 건너간 그는 조선음악대학 작곡부 부장 등으로 근무했고, 한국전쟁 초기 중공군 창작팀으로 참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전쟁 발발 수개월 뒤인 1950년 9∼10월 중국으로 귀국해 중국국적을 취득했다. 그의 아내 딩쉐쑹(丁雪松)은 신중국 최초의 여성대사로 유명하다.

최근에는 정율성 탄생 100주년(2014년)을 계기로 한중 양국에서는 기념 음악회 등 관련 행사들이 잇달아 열리는 등 그에 대한 재평가 움직임이 활발히 일고 있다.

양국은 정율성의 삶을 소재로 한 공동 콘텐츠 제작 추진도 검토하고 있다.

js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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