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갈등·난민 사태.. 흔들리는 '하나의 유럽'

황현도 2015. 8. 30.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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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유럽 통합의 꿈.. 反EU 원심력 커진다

20세기에 발발한 두 차례 세계대전은 유럽인들에게 쓰디쓴 교훈을 남겼다. 유럽 전역이 전쟁터로 변하며 쑥대밭이 됐고, 과거 세계의 중심이었던 유럽은 미국과 소련이 주도하는 국제정치질서의 하위 파트너로 전락했다. 1951년 서유럽 6개국이 참여한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로 시작된 유럽 통합의 역사는 폐허가 된 유럽을 ‘평화와 번영의 공동체’로 재건하기 위한 목적에서 시작됐다. ECSC가 유럽경제공동체(EEC)와 유럽공동체(EC)를 거쳐 더욱 심화된 형태인 유럽연합(EU)으로 발전하고, 1999년 1월 드디어 유로 단일화폐동맹(유로존)이 출범했을 때 유럽에는 장밋빛 미래가 펼쳐지는 듯했다. 2000년 EU 정상들은 ‘리스본 전략’을 통해 이렇게 공언했다.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고 사회통합을 더욱 진전시켜 유럽 경제를 2010년까지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고 역동적인 체제로 만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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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IGS의 탄생과 그렉시트 위기

그러나 ‘하나의 유럽’ 이상은 최근 그리스 사태를 거치며 크게 흔들렸다. 3차 구제금융 협상이 가까스로 타결되며 ‘그렉시트’(Grexit·그리스의 유로존 이탈) 위기는 봉합됐지만, 그 과정에서 그리스에 대한 각국의 경멸적인 태도와 그렉시트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입장이 확인되면서 유럽 통합 정신에 큰 생채기를 남겼다. 유럽은 또 ‘넥시트’(Nexit·다음 이탈우려국)가 생기는 것은 아닐까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대니얼 앨트먼 뉴욕대 교수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를 통해 “유로존의 미래는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며 최소 5개국이 넥시트 후보군이라고 진단했다. 2014년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비율이 높은 이탈리아(132%), 포르투갈(130%), 아일랜드(110%), 스페인(98%), 프랑스(95%)가 이에 속한다.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매긴 국채 등급은 포르투갈이 정크(투자부적격), 이탈리아 BBB-, 스페인 BBB 등이다. 이들 국가 중 프랑스를 제외한 나머지 4개국은 그리스와 함께 영문 앞글자를 따 ‘PIIGS’로 불리곤 한다. 영어로 돼지(pig)를 연상시키는 이 경멸적인 조어가 통용된다는 것 자체가 유럽 내 결속력이 붕괴하고 있다는 방증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지난 3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유로존 정상회의가 열리기 앞서 알렉시스 치프라스 당시 그리스 총리(왼쪽 두번째)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각각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이들 국가의 위기는 성장 둔화에 따른 세입 감소가 주 원인이다. 그러나 경제사정이 서로 다른 국가를 단일 통화권에 묶어 놓은 자체모순이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든다는 시각이 많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 한국이 고환율 정책을 통해 수출 경쟁력을 회복한 것 같은 독자적인 활로를 모색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앨트먼 교수는 “그리스처럼 관광산업 의존도가 큰 이들 국가의 경제 사이클은 나머지 유로존 국가와 엇박자가 나곤 한다”며 “그런데도 각국에 동일한 통화정책을 적용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독일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빠르게 탈출한 뒤 유럽중앙은행(ECB)이 인플레이션에 대해 강경 입장을 취하면서 이들 국가는 침체 탈출을 위한 아무런 정책적 지원을 받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최근 독일보다 높은 성장률을 보이는 아일랜드의 경우 경기 과열을 피하기 위해 결국 고금리 정책이 필요한 때가 올 텐데, ECB가 단지 아일랜드만을 위해 그런 조치를 취할 가능성은 많지 않다.

그 결과 이들 국가는 각종 긴축 정책으로 허리띠를 졸라맸는데도 부채가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 특히 이탈리아, 포르투갈, 스페인은 막대한 수의 베이비붐 세대가 10∼20년 내 은퇴를 앞두고 있다. 연금, 의료 복지 지출 수요가 늘면서 부채 상환 여력이 더욱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앨트먼 교수는 “그리스는 이미 긴축 등의 비용을 지불하고 유로에 남는 길을 선택했지만, 다음 위기를 맞는 국가는 아마 제3의 길을 선택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차라리 일찌감치 유로존을 떠나 독자생존을 모색하는 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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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사태·브렉시트 위기…EU 원심력 수두룩

유럽의 통합은 각국 국경을 허물고 자유로운 왕래를 보장했으며, 단일화폐가 통용되는 거대 자유무역시장을 탄생시켰다. 또 경제적 결속을 통해 전쟁 당시의 적의를 극복하고 평화를 구현하고자 했다. 통합의 시발점인 ECSC는 재래식 무기 생산 및 군수산업에 필수적인 석탄·철강의 공동관리를 통해 다른 국가, 특히 2차대전 전범국인 독일의 재무장을 막겠다는 의도도 있었다.

하지만 EU 같은 초국가 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해 각국은 주권 일부를 내놔야 했다. EU의 토대가 된 1992년 마스트리히트 조약은 통화관리뿐 아니라 외교·국방·치안 등 주권국가의 일부 권한을 EU에 이양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EU 출범 때부터 지금까지 논란을 낳고 있다. 올 들어 급증한 난민·이주민 문제는 이와 관련해 극심한 갈등요인으로 작용했다. 지난 6월 EU는 4만명의 난민을 28개 회원국이 골고루 나눠 수용하는 의무할당제(쿼터제)를 제안했으나 영국, 아일랜드, 덴마크와 상당수 동유럽 국가들이 반기를 들었다. 난민 유럽 이주의 기착지인 이탈리아의 마테오 렌치 총리는 이에 맞서 “유럽이 쿼터제와 관련해 연대하지 않는다면 이탈리아는 ‘플랜B’로 갈 것이며, 그 타격은 유럽이 받게 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주민 문제는 각국의 반EU·반이민 극우 정당의 부상과 연결돼 EU에 대한 원심력을 강화시킨다. EU가 개별국가 주권을 무시하고 자국민 일자리를 빼앗는 이주민을 수용하라고 강요한다는 것이 극우 정당들의 기본 인식이다. 프랑스 국민전선은 지난 3월 지방선거에서 전국적 기반을 확보했고, 6월 덴마크 총선에서는 배타적 이민정책을 내세운 덴마크국민당이 속한 우파연합이 승리했다. 핀란드, 노르웨이에서도 극우정당이 포함된 우파연정이 실현됐다.

심지어 영국마저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를 압박하고 나섰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지난 5월 총선에서 영국의 EU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공약으로 내걸고 재집권에 성공했다. 역내 이민자에 대한 복지혜택 제한, 일부 정책에 관한 주권 회복 등을 목표로 EU 협약 개정 협상을 벌인 뒤 이를 토대로 2016년 또는 2017년에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지금껏 유럽이 걸어 온 통합의 길을 역행하는 내용이어서 EU 내 마찰의 씨앗이 되고 있다. 미국의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가 EU 회원국 6개국의 6028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지난 6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영국인은 51%만 EU에 긍정적인 시각을 보였다. 폴란드(72%)와 이탈리아(64%), 스페인(63%), 독일(58%), 프랑스(55%)와 비교해 가장 회의적인 태도를 나타낸 것이다.

지난해 12월 독일 드레스덴에서 반이민 극우단체 페기다(PEGIDA·서구의 이슬람화에 반대하는 애국적 유럽인들) 주최의 집회가 열리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열쇠는 독일이 쥐고 있다

결국 유럽 통합의 열쇠는 EU 최대 경제국이자 리더 격인 독일이 쥐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의 콘스탄체 스텔첸뮐러 연구원은 이달 초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기고문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EU에 닥친 위기 앞에서 그럭저럭 시간을 끌며 사태가 진정되기를 기다리는 전략을 써 왔는데, 이는 결국 유럽 분열의 심화로 이어졌다”며 “러시아 제재에서부터 구제금융 지원에 이르기까지 독일이 더 큰 책임감을 갖고 적극적으로 나서야만 북·동유럽 국가를 안심시킬 수 있고 (경제 위기를 겪고 있는) 남유럽 국가들도 연대와 격려의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짚었다.

메르켈 총리는 최근 “난민 문제가 그리스 경제 위기보다 EU에 더 큰 도전”이라고 밝힌 지 며칠 만에 시리아 출신 망명 신청자를 모두 받아들이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EU 통합과 관련해 향후 독일의 행보가 주목된다.

유태영 기자 anarchy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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