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지도 못하는 게 '야당'인가

입력 2015. 8. 30.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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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박성민의 2017오디세이아
(15) 문재인과 새정치민주연합

박근혜 대통령이 반환점을 돌았다. 어떤 일이든 절반이 지났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전반전이 끝나면 ‘하프타임’이 있고, 1학기가 끝나면 ‘방학’이 있다. 쉬면서 전반을 평가하고 후반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그러나 국정에는 하프타임도 없고 방학도 없다. ‘경험하지 못한 사건’과 ‘예상하지 못한 위기’가 쉴 새 없이 몰려온다. 박근혜 대통령은 8월24일 “내일이라고 갑자기 다른 해가 뜨나요?”라고 반문했는데 국정은 그런 것이고, 대통령은 그런 자리다. 그래도 대통령 임기의 딱 절반인 8월25일이 갖는 상징적인 의미를 사람들은 놓치지 않는다. “드디어 절반이 지났다”며 ‘더 빠르게 지나갈’ 나머지 절반에서 삶의 의욕을 찾는 국민이 훨씬 많은 게 야속한 민심이다. 앞에서는 죽는 시늉도 하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이젠 내려갈 일만 남았지 뭐”라며 새로운 권력을 찾아 떠나는 것도 이때쯤이다. 고은 시인이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이라고 통찰한 것처럼 힘이 빠지면 인간과 권력에 대해 ‘새로운’ 눈을 뜨게 된다.

‘끌려다닐 것 같은’ 이미지

박근혜 대통령은 임기 전반을 “한 게 없다”는 박한 평가와 ‘레임덕의 징후’에 시달리고 있었다. 한국갤럽 조사를 보면 박근혜 대통령 직무평가에서 긍정적으로 답한 사람들조차 가장 많은 이유로 ‘열심히 한다’를 들었는데 이는 딱 떠오르는 업적이 없다는 방증이다. 최근에는 박 대통령 직무평가에서 부정적으로 평가한 이유가 ‘경제 정책’ 때문이라고 답한 사람들이 꾸준히 증가했다. “다른 건 몰라도 경제만큼은 잘하겠지”라고 큰 기대를 걸었던 50대가 등을 돌리는 결정적 이유로 보인다. 가장 아픈 비판은 “대통령이 평소에는 안 보여도 위기 때는 보여야 하는데 박근혜 대통령은 위기가 오면 더 안 보인다”는 거였다. 대통령이 ‘총사령관’의 이미지를 잃은 것이다.

박근혜 정권은 불과 1년 만에 레임덕의 징후를 보였다. 사람이 거부당했고, 정책이 거부당했다. 그리고 기밀이 새나갔다. 전형적인 레임덕 현상이다. 집권 전반기임에도 국회의장·당대표·원내대표 선거에서 청와대가 민 후보들이 연거푸 졌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는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며 노골적으로 대통령 정책에 반기를 들었다. 청와대에서 만들어진 비밀문건이 언론에 새나가 ‘콘크리트’라는 박 대통령 지지율이 29%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친박은 당내에서 ‘비주류’로 전락했다. 의원들은 하나둘 미래권력인 김무성, 유승민에게 줄서기 시작했다. 이때 박근혜 대통령의 첫번째 승부수가 나왔다. 김무성과 유승민을 무릎 꿇림으로써 당을 다시 장악했다. 당분간 누구도 대통령에게 대들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8월25일 갑자기 ‘다른 해’가 떴다. ‘2+2 고위급 회담’에서 남북이 공동선언문에 합의한 것이다. 전투복을 입고 야전군 사령부를 방문하고, 강경한 태도로 북한의 굴복을 받아냄으로써 잃었던 ‘총사령관’의 이미지를 한순간에 되찾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유승민 원내대표를 ‘찍어내던’ 6월25일로부터 불과 두달 만에 두번의 승부수로 불리한 전황을 일거에 뒤집었다. 지지율은 반등할 것이고, 레임덕의 징후도 사라질 것이다. 정권교체의 가능성은 그만큼 낮아질 것이다.

이번 사건은 야당에 북한 이슈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던져주었다. 문재인 대표는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던 시간에 “북한에 ‘퇴로’를 열어주어야 한다”는 ‘온건한’ 주문을 함으로써 ‘강경한’ 박근혜 대통령과 대조를 보였다. 야당의 고민은 20~30대 젊은층조차 갈수록 북한과 김정은에 대한 반감이 늘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안보 이슈에 대한 ‘새로운 구상’이 없다면 야당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대통령 선거는 유권자가 ‘시민’의 정체성에서 ‘국민’의 정체성으로 이동해서 투표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북한에 끌려다닐 것’ 같은 이미지를 벗지 못하면 나라를 맡길 ‘대안’으로 인식되기 어렵다.

야당이 정권교체에 성공하려면 “정권교체를 원하는가?”, “야당이 더 나은 대안인가?”라는 두 질문 모두에 ‘그렇다’고 답하는 국민이 더 많아야 한다. 아무리 정권교체 여론이 높아도 ‘더 낫다’는 인식을 주지 못하면 정권은 교체되지 않는다. 2012년 대선에서 정권교체 여론이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후보가 패배한 것은 박근혜보다 더 나은 대안이라고 국민들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4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의 존 케리는 공화당의 조지 부시 대통령에게 미국을 다시 맡길 수 없다는 여론은 이끌어 냈지만 ‘과연 존 케리가 대안일까’라는 의구심을 해소하지 못한 탓에 패배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더 많음에도 국민들은 왜 ‘새정치민주연합’을 ‘대안 정당’으로 보지 않는 걸까. 이대로 간다면 다음 대선에서도 야당은 높은 정권교체 여론에도 불구하고 또 질 것이다. 국민들은 ‘웬만하면’ 야당에 정권을 맡길 준비가 되어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지금 야당의 모습은 웬만하지가 않다. 국민들은 야당에 세가지를 묻고 있다. 나와 내 가족, 그리고 대한민국의 안위를 맡길 만큼 ‘강한가?’, 야당이 제시하는 방법대로 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믿어도 되는가?’, 나 같은 보통사람의 아픔에 공감하고 귀 기울여주고 ‘돌봐줄 수 있는가?’ 묻고 있다.

국민은 나를 위해 싸워줄 ‘강한 야당’을 원하지만 문재인 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은 싸우지 않는다. 지금 야당은 무엇에 분노하는지, 무엇과 싸우고 싶은지, 누구를 대변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정치는 싸우는 것이다. 총칼을 버리고, 폭력이 아닌, 말로 싸우는 것이 정치고 민주주의다. “그만 싸우라”는 것은 민주주의를 “그만하라”는 것이다. 정치는 ‘갈등을 조직화’하는 것이다. 생각이 다른 삶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가 민주주의다.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싸우는 것이고, 민주주의이기 때문에 ‘말’로 싸우는 것이다. 야당은 원래 ‘반대하고’ 싸우는 것이다.

야당은 본래 ‘반대하고’ 싸우는 것
문재인 대표는 거꾸로 하고 있다
당대표 되더니 ‘강한 야당’ 아닌
중도화 전략으로 대권 행보 나서
지금은 지지층 결집해 싸울 때
남북 긴장 국면서 온건한 주문
강경한 박 대통령과 대조 보여
20~30대 대북 반감 느는 게 현실
안보 이슈 새로운 구상 없다면
야당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할 것

불리한 의제라면 사람을 데려와라

2006년 9월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는 야당이 비전이 없다는 지적에 대해 “한나라당이 야당, 오포지션 파티(Opposition Party, 반대하는 당)이니 결국 이슈는 여당이 만든다. 우리가 이슈를 못 만들더라도 야당의 속성을 조금 더 이해해달라. … 그런데 지금 우리는 126석이고 과반수에 가까운 열린우리당은 멋대로 해왔다. … 우리가 발목을 잡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도 있다. 야당은 발목이 아니라 웃통을 확 잡아야 할 경우도 있다” 바로 그거다. 야당은 그렇게 하는 것이다. 노무현은 대통령일 때도 야당은 원래 반대하는 거라고 태연히 말했다. 2004년 6월에 국회 개원 축하 연설을 한 후 정당 대표 및 5부 요인과 만난 자리에서다. “여야라는 개념이 지금 현재로서는 여당에 불리한 것 같다. 유럽에서는 룰링 파티(Ruling Party)나 오포지션 파티라는 개념을 쓰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어쨌든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것은 사실인데 다른 당들은 ‘반대당’인지 모르는데 모두 야당으로 불려서 불안한 측면이 있다. … 이것이 우리 사회 구성 원리이기 때문에 여야가 치열하게 대립하고 경쟁해야 한다.”

야당은 싸우는 것이고, 지도자는 싸움을 이끄는 사람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더 강하게 반대하고 싸워야 한다. 그리고 문재인 대표는 그 싸움을 앞에서 이끌어야 한다. 이끌지 못하면 지도자가 아니다. 2006년 1월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신년 기자회견에서 ‘사학법’ 투쟁으로 촉발된 여야 대치 국면에 대한 질문에 “국정운영 책임은 정부·여당에 있다. 여당이 다수고, 강자다. 사학법 투쟁도 여당이 빌미를 제공했다. 정부·여당이 노력해야지, 우리가 어쩌겠나. … 야당은 영어로 ‘오포지션 파티’다. 나라를 위해 확실히 반대하는 게 야당의 역할이다. 우리가 반대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는가.”

그렇다면 야당은 반대하고 싸우면 되는가? 그렇다. 그럼 국민들이 ‘무조건 반대만 하는 당’이라고 등을 돌릴 것 아닌가? ‘대안을 내놓는 정당’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 둘 다 맞는 말이다. 시기가 중요하다. 평소에는 야당은 반대하고 싸우는 것이다. ‘강한 야당’이 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총선이나 대선이 오면 그때 ‘우리의 대안은 이것입니다’라고 내놓는 것이다. ‘대안 정당’이 되는 것이다. 1994년 미국 중간선거에서 ‘보수혁명의 풍운아’라고 불린 뉴트 깅그리치는 빌 클린턴 대통령의 집권 초 대표적 의제인 ‘헬스 케어’를 좌절시켰지만 선거를 앞두고는 그 유명한 ‘미국과의 계약’이라는 공약을 내세워 상하원 모두 압승을 이끌었다.

문재인 대표는 거꾸로 하고 있다. 당대표가 되더니 싸우는 ‘강한 야당’이 아닌 ‘대권 행보’를 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유능한 경제 정당’ ‘안보 중시 정당’ ‘노인 우대 정당’의 이른바 ‘중도화 전략’은 두가지 오류에 빠져 있다. 먼저 시기다. 지금은 대안을 놓고 경쟁할 때가 아니라 ‘국민이 분노하는 이슈’에 집중해서 싸울 때다. 노동, 재벌, 국정원, 청년 일자리 등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싸움을 할 시기다. 지지층이 분노하는 이슈를 갖고 싸워야 지지층이 결집한다. 두번째 오류는 ‘경제와 안보’는 ‘방어 의제’일 뿐 ‘공격 의제’가 될 수 없다. 문재인 대표가 이것을 전면에 내걸었다고 새누리당보다 더 잘할 거라고 믿지 않는다. 어떤 경우에도 상대보다 내가 더 잘할 것 같지 않은 것을 내세우면 안 된다.

하고 싶다면 문재인 대표가 주장할 것이 아니라 국민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데려와서 그 일을 맡겨야 한다. 선거에서는 대중이 관심을 갖고 있고, 정당이나 후보 간에 차이가 큰 이슈만이 영향을 미친다. 2012년 대선에서 ‘경제민주화’, ‘정치혁신’, ‘복지 확대’ 등은 모두 중요한 이슈였다. 그중에서 복지는 박근혜 후보도 경쟁력이 있었지만 경제민주화와 정치혁신은 불리한 이슈였다. 그런데 대중의 마음속에 이미 들어와 있는 이슈를 캠페인으로 지워버릴 수는 없다. 다만 불리한 의제라면 차이를 없앨 수는 있다. 그럴 때 가장 빠른 방법이 사람을 데려오는 것이다. 김종인, 안대희, 한광옥을 데려와 ‘경제민주화’, ‘정치혁신’, ‘국민통합’을 맡기면 불리한 이슈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 문재인 대표가 아무리 유능한 경제 정당과 안보 정당을 외쳐도 사람들이 믿겠는가. 그렇게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을 데려와 일을 맡기는 것이 훨씬 빠른 길이다. 물론 그렇게 하더라도 이 의제는 야당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이슈는 아니다. 야당에 대한 반대를 약화시키는 ‘방어 의제’일 뿐이다.

‘보수·진보·중도’ 용어를 완전히 지워버려야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야당이 패배한 중요한 이유는 전선이 ‘보수’ 대 ‘진보’의 진영 싸움으로 구축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념적 구도는 집권당에 무조건 유리하다. 야당은 보수·진보·중도라는 용어를 선거 지형에서 완전히 지워버려야 한다. 최근에 새정치민주연합에서 벌어지고 있는 ‘중도·진보’ 논쟁도 전략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보수·진보의 구도는 쌍방 ‘역사적’ 책임을 묻게 만들어, ‘현 정권’의 실정을 은폐하고, ‘정권심판론’을 약화시키면서 계속 새누리당 정권을 지지할 명분을 준다. 대선은 70년 역사의 총체적 심판이 아니다. 그렇게 되면 현 집권당의 실정으로 선거를 치러야 유리한 야당에는 치명적이다. 이념적 구도로 전환되면 엉뚱하게도 집권당이 야당을 심판하는 선거가 될 수도 있음을 2012년 총선에서 경험했다. “‘국민 성공 시대’를 약속한 이명박 정권과 ‘국민 행복 시대’를 약속한 박근혜 정권의 약속이 지켜졌다면 새누리당에 다시 한번 정권을 맡겨도 좋습니다. 그러나 ‘대기업만 성공’하고 ‘부자만 행복’한 나라가 되었다고 분노한다면 우리에게 기회를 주십시오”라고 하는 것이 좋다. 대선은 새누리당 집권 5년에 대한 심판이 되어야 야당에 유리하다. 이념 구도, 역사 논쟁은 집권당 실정에 면죄부를 준다.

새누리당은 지지기반·정체성·조직력·리더십에서 야당을 압도한다. 그렇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새누리당은 누구를 위해서 무엇과 싸울지를 알고 있고 투쟁을 이끄는 지도자가 있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지지자들을 위해 싸운다. 그리고 선거 때가 되면 외연 확대를 위해 정체성에 맞지 않더라도 과감한 혁신을 한다. 야당은 지지층을 위해 싸우지도 않고 선거 때 과감한 혁신을 하지도 않는다.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 1991년 설립한 ‘민(MIN) 컨설팅’ 대표. 30년간 정치를 현장에서 관찰하고 수많은 선거를 이끌었다. 전략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승리를 위한 캠페인 방법을 몸으로 익혔다. 세계 최고의 전략컨설팅 회사를 꿈꾼다. 생각이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가 민주주의라고 믿고 있다. ‘힘든 일은 있어도 나쁜 일은 없다’는 인생관으로 버틴다. 책과 영화, 커피를 사랑하며 걷는 것을 즐긴다. ‘2017 오디세이아’를 통해 차기 대선을 향한 여정을 독자들과 함께한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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