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밀당남' 유희관-해커 '승승장구'

박현철 기자 입력 2015. 8. 30. 06:01 수정 2015. 8. 30.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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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박현철 기자] 타자와 밀고 당기기를 하는 에이스들의 승승장구가 인상적이다. 한 명은 공이 빠르지 않아도 제구력과 배짱. 그리고 뛰어난 완급조절능력으로 다승 공동 선두를 달린다. 또 다른 에이스는 주자 없을 때 분절 투구폼, 주자 있을 때는 한결 빠른 슬라이드 스텝으로 타이밍을 흐트러뜨린다. 2015시즌 다승 공동 선두(16승, 30일 현재) 유희관(29, 두산 베어스)과 에릭 해커(32, NC 다이노스)의 공통점. 바로 타자와 제대로 '밀당'을 하는 '타자 밀당남'이다.

유희관은 지난 29일 잠실 한화전 선발로서 8이닝 6피안타 8탈삼진 1실점 호투를 거두며 16승(4패)째를 수확, 해커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해커 또한 앞서 27일 마산 한화전에서 8이닝 4피안타 6탈삼진 1실점으로 16승(4패)을 거뒀다. 쓰고 보니 이들의 16승 희생양이 같은 팀이고 패배 수도 같지만 일단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둘은 150km 이상의 광속구를 던지는 파워피처가 아니다. 한 달 전까지 광속구 투수인 알프레도 피가로(삼성)가 유희관과 함께 다승 선두 경쟁을 펼치기도 했으나 어깨 피로 누적으로 인해 잠시 전열 이탈, 현재 피가로의 승리 시계는 12승에서 멈춰있다. 심지어 유희관은 선수 생활 내내 140km 이상의 공을 던져본 적이 없다. 해커는 140km대 후반까지 던질 수는 있으나 평균 구속은 140km대 초중반이다. 힘보다 기교를 앞세운 두 투수가 다승왕 경쟁을 펼치는 형국으로 볼 수 있다.

'느림의 미학' 유희관의 경우는 공 자체가 빠르지 않은 대신 뛰어난 제구력과 비슷한 구종으로 스피드 차이를 주는 기교를 앞세워 타자들을 일축 중이다. 올해 유희관의 포심 패스트볼 최고 구속은 134km 가량. 공이 빠른 편인 투수들의 슬라이더 스피드에도 미치지 못한다. 대신 유희관의 가장 느린 공은 시속 70km대까지 떨어진다.

현재 리그에서 유희관 같은 초슬로커브를 구사하는 좌완은 팀 동료 이현승이나 kt 정대현 정도. 단순 구속 차이를 보면 무려 60km 가량 차이가 난다. 여기에 시속 120km대 중후반의 역회전 싱커와 시속 110~120km대 슬라이더 등 지난 2년에 비해 무기가 많아졌다. 싱커와 슬라이더는 포심 패스트볼과 팔 스윙 속도 차이가 없다. 버릇 노출이 되지 않은 만큼 올 시즌 유희관의 뛰어난 활약이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포심이 느려도 일상적인 패턴에서 변화를 주며 타자를 밀고 당기고 들었다 놓았다.

영리한 팔색조 배짱투가 유희관의 성공 이유라면 해커는 좋은 공을 던지는 것은 물론 투구폼에서 타자를 현혹하는 위력이 있다. 한국 무대 3년 째. 첫 두 시즌 에릭이라는 등록명으로 뛰던 해커는 2013시즌 초반 주자 없을 때 투구폼에서 멈춤 동작으로 인해 보크 판정을 받은 적도 있다. 그리고 주자 있을 때 세트 포지션 동작이 1.7초 대로 느린 편이었다. 부진으로 인해 퇴출 위기까지 빠졌던 해커는 잠시 1군 엔트리 말소된 뒤 수정을 거쳐 돌아왔다. 그리고 꾸준히 NC 선발진 주축으로 활약 중이다.

KBO리그 기존 투수 중에서도 멈춤 동작을 이용하는 투수들이 몇몇 있었다. '돌부처' 오승환(한신)도 데뷔 초기 멈춤 동작으로 인해 보크 논란을 빚기도 했고 서재응(KIA)도 키킹 후 정점에서 한 차례 멈춘 뒤 투구를 이어간다. 만약 주자 없을 때 투구 동작이 잠시 멈춘 후 무릎이 다시 올라갔다면 부정 투구로 간주되어 볼이 주어진다. 그러나 잠시 동안의 멈춤 후 내려가는 동작을 취한다면 투구 순동작이라는 측면에서 지적받지 않는다. 해커의 경우도 왼발을 들어 멈췄다가 내려가는 모습을 보인다.

그런데 해커는 주자 없을 때 한 차례가 아니라 두 번 멈춘다. 왼 무릎을 들었다가 내리는 과정에서 한 번 더 멈춘다. 아무것도 아닐 수 있지만 공과 0.3초의 대결을 펼치는 타자 입장에서 이 동작 하나는 타자의 타격 준비 동작에 혼선을 준다. 공을 때려내는 어림짐작 타격, 이른바 게스 히팅에 있어 타이밍 포착은 필수 요소이기 때문이다. 주자 없을 때 해커의 피안타율은 0.248. 자신의 전체 피안타율 0.222보다 높지만 그래도 준수하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빠른 세트 포지션 속도. 2013시즌 초반 가장 느릴 때 1.8초 대까지 찍었던 해커는 주자 있을 때 왼발을 살짝 들었다가 슥 미끄러지는 듯한 중심이동 투구를 펼친다. 발을 드는 동작이 간결해지고 무게중심을 자연스럽게 옮기며 1.6~7초대의 슬라이드 스텝 시간은 최소 1.1초대까지 빨라졌다. 폼은 간결한 데 공의 힘도 있으니 타자들은 주자 있을 때 더 해커를 어려워한다. 주자를 두고 던지는 해커의 피안타율은 0.184에 불과하다.

야구는 좋은 운동 능력 뿐만 아니라 상대를 잘 이용하는 능력까지 갖춰야 성공할 수 있는 종목. 특히 투타 대결은 공 하나 당 아무리 느려도 0.5초를 넘기지 않는 만큼 순간의 생각과 기술이 더욱 중요하다. 광속구 투수가 아닌 유희관과 해커의 올 시즌 성공은 타자 상대 밀고 당기기가 얼마나 중요한 지 제대로 보여주는 중이다.

[사진] 유희관-해커 ⓒ 한희재 기자

[영상] 유희관-해커 호투 ⓒ 영상편집 송경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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