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는 왜 8천만원짜리 '과일나무' 심었나

구영식 입력 2015. 8. 29.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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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본색] 눈에 띄는 설치미술.. 평가는 엇갈려

[오마이뉴스 구영식 기자]

'여의도본색'은 정치부 기자들이 쓰는 '取중眞담'으로 '새로운 정보'가 있는 기자 칼럼을 지향합니다. <편집자말>

 국회 잔디광장에 설치된 '과일나무'. 알록달록한 색깔 때문에 눈에 확 띄는 '과일나무'을 제작하고, 운반·설치하는 데 8000만 원이 들었다.
ⓒ 남소연
여의도에 벚꽃이 만발하던 지난 4월 초. 국회 잔디광장에는 아주 독특한 설치미술이 설치됐다. 설치미술 작가 최정화(55)씨가 제작한 '과일나무'라는 작품이다. 알록달록한 색깔 때문에 확 눈에 띄는 '과일나무'는 높이 7m, 지름 2.5m, 무게 2.5t의 규모다. 작품 표지판에는 이렇게 소개되어 있다.

"형형색색의 커다란 과일과 채소가 주렁주렁 열려 있는 <과일나무>는 결실의 상징인 과실을 통해 '풍요'와 '화합', '행복'과 '꿈'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기자가 이 알록달록한 '과일나무'를 처음 봤을 때 좀 의아했다. 국회의 이미지나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과일과 채소 등이 나무의 모습으로 구성된 것을 보며 '국회가 국산 농산물을 애용하자는 캠페인을 벌이려고 하는 것인가' 하는 엉뚱한 생각까지 들었다.

국회 안에서도 "파격적이다", "새로운 시도다", "좀 생뚱맞다" 등 의견이 엇갈렸다. '논란'까지 일지는 않았지만, 지나치게 튀는 작품 설치에 '의문'을 나타내는 눈길이 제법 있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그렇게 의견이 엇갈리는 것을 보면서 기자도 궁금해졌다. 왜 단조롭고 무거운 국회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과일나무'를 설치하게 됐는지, 그 설치에 든 비용은 얼마인지 등등…. 이런 궁금증은 '과일나무'가 설치된 지 넉 달 뒤에서야 풀렸다.

'열린 국회'를 위해 설치된 8000만 원짜리 '과일나무'

 최정화씨의 설치미술 작품 'Flower Tree'.
ⓒ 최정화씨 홈페이지
기자는 지난 8월 10일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국회 사무처에 '과일나무'를 구입한 이유, 가격, 설치기간 등을 물었다. 국회 사무처의 답변서에 따르면, 먼저 국회는 "주말 전통공연용"으로 과일나무를 구입했다.

"'과일나무'는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에 등재된 판소리 등 고유의 무형유산을 진흥시키기 위하여 개최한 주말전통공연용 설치예술품으로서 국민의 풍요로운 삶을 염원하는 상징물로 전시·활용되고 있음."

정의화 국회의장은 지난해 5월 취임한 이후 국회 잔디광장을 시민들에게 개방하는 등 '열린 국회'를 표방하며 주목받았다. 그런 '열린 국회'의 일환으로 지난 5월과 6월 국회 안에서는 '2015 열린 국회마당'이라는 행사가 열렸다.

특히 주말마다 '과일나무' 옆에 설치된 무대에서는 판소리, 공중줄타기, 국악 등 전통공연이 펼쳐졌다. 국회 사무처의 한 관계자는 "'과일나무'는 주말마다 열렸던 전통공연 무대세트의 하나다"라고 전했다. '과일나무'를 소개하는 작품 표지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 작품은 '열린 국회'를 표방하기 위하여 2015년 4월에 국회 잔디광장에 설치되었으며, 국민과 국회 간 소통이 매개체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일나무'의 가격은 얼마일까? 국회 사무처는 "제작과 운반, 설치하는 데 8000만 원이 들었다"라며 "8000만 원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에서 관광진흥기금으로 집행됐다"라고 답변했다. 지난 2007년 국악문화재단으로 시작한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은 문화체육관광부 소속 공공재단이다.

'과일나무'의 작가 최정화씨는 지난 2002년 11월 27일 광주비엔날레에서 마련한 포럼에서 자신의 작품 가격과 관련해 "구작은 작품비, 신작은 작품비+제작비를 받는다"라며 "제작할 때는 남아야 하니까 되도록 싼 재료로 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를 헤아릴 때 국회 사무처에서 밝힌 8000만 원은 '작품비+제작비'에다 '설치비+운반비'가 모두 포함된 가격으로 추정된다.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에서 최정화 작가 작품 선정"

 설치미술 작자 최정화씨.
ⓒ 대구미술관
'과일나무'를 제작한 최정화씨는 지난 1987년 홍익대 서양학과를 졸업한 뒤 인테리어 회사에 들어갔다. 미대 졸업생들이 흔히 하는 것처럼 미술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으로 생계를 잇기 싫어서였다고 한다. 지난 1988년 인테리어 회사를 나와 '가슴시각개발연구소'를 차리며 독립했다. 이후 그는 설치미술과 인테리어, 영화미술 등의 영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그 역량을 인정받았다.

특히 플라스틱, 비닐, 폐현수막, 때밀이 타올, 트로피, 쿠킹호일 등 '싸고 대량으로 생산된' 재료(오브제)를 활용한 설치미술 작품으로 명성을 쌓았다. 그의 작품들을 두고는 "한국적 팝아트" 혹은 "한국적 키치", "짬뽕미학" 등의 평가나 나왔다. 현재는 "생활대중과 미술인 사이의 불통 구조에서 대안의 길을 모색하는 문화 생산자들의 복합공간"인 '꿀'의 대표도 맡고 있다(관련기사 :"아이, 맛나다"... 한남동 골목에서 만난 '꿀' 한통).

최씨는 일본의 후쿠오카트리엔날레와 세토우치트리엔날레, 이탈리아의 밀란트리엔날레, 뉴질랜드의 SCAPE비엔날레, 리투아니아의 발틱트리엔날레, 우크라이나의 키이브비엔날레, 싱가포르의 싱가포르비엔날레, 광주비엔날레 등으로부터 초대받았다.

그밖에 미국과 중국, 프랑스, 영국, 벨기에, 이탈리아, 덴마크, 독일, 칠레, 스위스, 오스트레일리아, 대만, 말레이시아 등에서 국제전시회에 참여하거나 개인전을 열었다. 그의 설치미술 작품은 프랑스 리옹과 일본 요코하마에 전시되어 있다. 중학교 일본 미술교과서에 그의 이름이 올라 있을 정도로 지명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설치미술에서 국제적인 명성을 쌓았는데도 최씨는 자신을 '디자이너'나 '건축가'로 생각한다. 그는 지난 2009년 1월 미술월간지 <아트인컬처>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 작가 아니에요. 디자이너가 더 맞을 걸요? 아니면 건축가도 가능하겠군요. 내가 만든 말인데, AAA라고. Always Almost Artist(항상 거의 예술가)라는 뜻이에요. 이 말이 저한테 '딱'인 것 같아요."

그런데 국회 안에서는 새누리당 A의원이 최씨의 '과일나무'을 구입해 설치했다거나 국회 사무처 고위인사인 B씨가 작품 설치를 기획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특히 후자의 소문은 B씨의 부인이 오랫동안 미술관을 운영하고 있어서 그럴싸하게 돌아다녔다. 하지만 A의원실은 "처음 듣는 얘기다"라고 부인했고, 국회 사무처도 "최정화 작가 작품은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에서 선정위원회를 구성해 선정했다"라고 반박했다.

국회 사무처의 한 관계자는 "국회 분위기와 안 맞다며 생뚱맞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지만 '새로운 시도'라고 평가해주는 분들도 있다"라며 "시민들이 포토존으로 많이 활용하는 등 반응도 좋다, 지금은 많이 익숙해졌다"라고 평가했다. 이 관계자는 "'과일나무'는 주말 전통공연 무대세트의 하나인데 오는 9월과 10월 다시 주말전통공연이 열린다"라고 전했다.

국회 사무처는 기자에게 보낸 정보공개 답변서에서도 "'과일나무는 가을 전통공연시(2015년 10월)까지 전시할 예정이고, 이후에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측과 협의하여 전시기간, 전시장소 등을 결정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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