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무소불위 권한은 일제식민지 지배의 잔재

이범준 기자 2015. 8. 29.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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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검찰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과도한 힘을 가지고 있다. 설령 현행법상 합법이라고 해도 세계적인 기준에서 보면 지나친 것이고, 그 연원은 식민지 시절 일본이 강압통치를 위해 시행하던 식민지 조선만의 제도다.

효과적인 전쟁 수행을 위해 서구와는 달리 행정권을 극대화한 국가제도를 운영하던 본국에서조차 인권침해 우려 때문에 시행되지 않던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해방 후 70년이 지나서도 이런 제도를 상당 부분 가지고 있고, 시민들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1912년 조선총독부는 피고인의 방어를 어렵게 하고 법원의 판단절차를 최소한으로 줄인 ‘조선형사령’을 공포했다. 일본에서는 1925년부터 형사재판에 배심제를 도입하는 등 근대 형사사법이 자리잡아 갔지만 조선에서는 최소한의 기본권도 보장하지 않았다. 조선형사령 12조와 13조는 검사에게 모든 사건에서 영장 없이 압수·수색할 수 있고 피의자를 20일간 유치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영장 없이 개인의 신체를 구속할 수 없다’는 근대 형사소송법의 원칙을 무너뜨리고 구속·압수·수색을 검찰의 권한으로 만들었다.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 앞 국기 게양대에 걸린 태극기와 검찰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 이준헌 기자

지금까지 남은 대표적인 악습이 이른바 ‘피의자 소환’이다. 현행 형사소송법 어디에도 검사가 피의자를 소환할 권한은 없다. 실제로는 출석을 요청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런 왜곡의 연원을 찾아보면 식민지 시절 조선 검찰이 조선형사령에조차 없는 피의자 소환권을 스스로 만들어낸 데 있다.

식민지 당시 일본 본토의 다이쇼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소환은 출석의무를 발생시키고 불응하면 강제구인이 가능했다. 당연히 판사의 영장으로만 가능한 강제처분이었다. 일본 본토 검사들은 출석을 요구할 수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조선 식민지 검사들은 조선형사령 12조에서 소환권도 유추된다고 주장하고, 일제강점기 내내 소환권을 행사했다.

LKB&파트너스 이용구 변호사는 “현행 형사소송법을 보면 소환은 재판절차에서 판사의 권한이며 검찰 수사과정에서는 소환 권한이 없는데도, 검사들은 소환이라는 말을 쉽게 쓴다”고 말했다. 심지어 언론도 사전적으로 ‘부른다’는 뜻뿐이 없는 소환을 마치 검찰에 출석해야만 하는 것으로 왜곡해 ‘소환 통보’ 같은 어법에도 안 맞는 표현을 쓰고 있다. 검사가 부르면 반드시 나가야 한다는, 식민지 시절 몸에 밴 의식을 해방 이후 없애기는커녕 ‘소환=출석’으로 강화시킨 것이다.

일제강점기 공안통치의 최악의 잔재는 ‘검찰 조서’에 부여된 과도한 힘이다. 검찰 조서에 증거능력이 부여된 기원을 살펴보면, 일제강점기 조선말을 모르는 일본 판사들이 검사가 만들어온 조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하면서 시작된 것이다. 오히려 일본에서는 1892년 이미 현재의 최고재판소 격인 대심원에서 ‘현행범이 아닌 피의자에 대한 조서는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결한 바 있다.

검찰 조서에 대한 법원의 절대적인 신뢰는 공안사건에서 수사기관의 고문으로 이어졌다. 일본인 판사들은 검사의 조서에 의존해 판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변호인 법정신문은 재판장에게 청구해서 허락을 받아내야 가능했다. 해방 후에도 오랫동안 검찰 조서는 공안통치를 지탱하기 위한 ‘전가의 보도’였다. 1984년 대법원은 국가보안법 위반사건에서 ‘검사의 조서는 고문을 통해 작성된 것’이라는 변호인 주장에 ‘검사가 작성한 조서를 법정에서 부인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이 판례를 뒤집은 때가 2004년이고, 형사소송법에 반영된 때가 고작 2008년이다.

특수부 검사 출신의 법무법인 공존 금태섭 변호사는 검사들이 “우리가 설마 거짓말로 조서를 만들겠느냐”고 말하지만 실상은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범죄사실과 직접 관련이 없지만 인상을 나쁘게 만드는 질문을 연이어 던지고 답변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묵묵부답하다’라고 적는다”며 “판사들이 아무리 주의를 기울여도 이런 조서를 읽다 보면 판결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한 검찰 조서의 증거능력이 인정되는 이상 검사실은 법정과 같아야 하는데, 변호인의 조력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금 변호사는 “검사실에서 조서를 작성하는 순간부터 토론의 모든 규칙이 무너진다”며 “조사받는 당사자들은 어떤 질문이 부당한 것이고 답변하지 않아도 되는지조차 모르는데, 검사들은 피의자가 묻기 전에는 도움말을 하지 말라고 하고, 경고를 어기면 변호사를 쫓아낸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불법수사 공화국…싹쓸이 압수수색, 무제한 조사

<이범준 기자 seirot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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