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금'인 줄 알고 '유황' 놓고 아귀다툼한 중국인들

임상범 기자 입력 2015. 8. 29. 13:15 수정 2015. 8. 29.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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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산시성의 한 소도시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도로 위에 잔뜩 몰린 사람들이 허리를 숙이고 열심히 무언가를 줍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 수는 늘어갔고 뒤늦게 오토바이에 자가용까지 몰고 온 주민들도 서둘러 도로로 뛰어들었습니다. 그 많은 사람이 몰렸는데도 서로 아무 말도 주고 받지 않고 쭈그리고 앉아 묵묵히 무언가를 쓸어 담는데만 몰두했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가져가려다 간간이 아귀다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두 손만으로 움켜쥐기엔 부족했던지 지니고 있던 비닐이며 가방이고 닥치는대로 담았습니다. 이들이 바닥에서 쓸어 담는 것은 멀리서 봐도 반짝이는 아주 입자가 고운 가루들이었습니다. 햇빛을 받아 노란빛을 뿜어내는 그 물질은 분명 황금가루 같아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금이다!"를 외치지는 않았습니다. 제발 이 횡재가 나 혼자만의 차지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을 겁니다. 그저 길을 가다 바닥에서 주운 이 물건이 분명 내 것은 아니었지만 원래 누구의 소유였는지, 남의 걸 이렇게 내가 주워가도 괜찮은 건지…. 어느 누구도 묻지 않았습니다.

노다지 사냥꾼들로 도로가 아수라장이 되자 지역 공안(경찰)까지 출동했지만 아침 6시부터 시작된 황금 사냥은 오후 2시가 넘어서야 정리됐습니다. 사람들은 강제로 해산됐지만 긁어모은 '금가루'를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고 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불로소득에 들뜬 얼굴들이었을 뿐 그냥 모두 "묻지마!"였습니다.

소동이 벌어지기 6시간 전인 26일 자정쯤 화물을 잔뜩 실은 물류회사 트럭 한 대가 과속으로 이 도로를 지났습니다. 졸음을 이기지 못한 운전수는 중앙선을 침범해 반대편 차와 부딪칠 뻔한 위기를 가까스로 모면하며 차를 급회전 시켰습니다. 다행히 사고는 없었지만 차량이 심하게 흔들리다보니 뒤에 실린 화물에서 다량의 물질이 바닥으로 쏟아지고 말았습니다. 이 화물차가 운반 중이던 화물은 비료용 유황가루였습니다. 유황가루는 확실히 금가루라고 착각을 일으킬 법한 '비주얼'을 갖고 있었지만, 값어치를 따질 만한 귀금속은 아니었습니다. 한편의 블랙코미디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올 1월1일 자정 신년맞이 행사를 위해 상하이 황푸강가에 모였던 인파는 강변 인근 건물에서 한 레스토랑이 호객을 위해 뿌린 가짜 지폐를 줍느라 아귀다툼을 벌이다 35명이 숨지는 최악의 압사사고로 이어졌습니다. 중국 당국은 사고 원인이 지폐 투척과 무관하다고 주장했지만 사고 당시 '공짜 돈' 쟁탈전이 얼마나 심각했었는지를 증언하는 목격담이 부지기수였습니다.

공짜! 불로소득! 일확천금! 우아한 뉘앙스는 아니지만 이성을 순식간에 무장해제시키는 달콤한 유혹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전통적으로 마장이나 포커 등 도박을 즐기는 중국인들에게 별다른 노력과 비용을 들이지 않고 공짜로 재물을 얻을 수 있다는 건 거부할 수 없는 강력한 악마의 유혹입니다.

지난해 말 상하이에서도 홍콩 주식을 사고 팔 수 있는 이른바 '후깡퉁'이 열리자 중국인들은 너도 나도 주식시장으로 몰렸습니다. 은퇴자나 중산층의 지갑이 고스란히 열린 건 물론이고 교복입고 가방 맨 중고등학생들까지 증권사 객장에 몰려들었습니다. 종목 분석이고 투자위험경고고, 레버리지고간에 그들의 귀와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주식을 사기만 하면 대박을 맞을 것이라는 '묻지마!' 투자 열기에 사로잡혀 맹목적인 떼지어 몰리기에 동참한 겁니다. 마치 유황가루를 금가루라고 착각해 달려든 산시성 주민들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반짝 올랐던 중국 증시는 이후 대폭락을 거듭했고 지수는 반토막 아래로 접히고 말았습니다. 라오바이싱들의 벼락 부자 꿈은 깡통이란 차가운 현실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증시 폭락으로 시작된 중국발 경제위기를 우려하는 경제전문가들의 비관적 전망 속에 우리나라를 비롯한 각국의 증시도 흔들거리고 있습니다.

지난 30여년 간 자국 경제의 고도 성장과 함께 손쉽게 부자가 된 중국인들이 이제는 재테크의 기본이 뭔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봤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 세상 그 어디에도 공짜 점심은 없는 법이니까요.임상범 기자 doongl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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