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대학 건물 지어주고 수십년 無償임차하는 기부자

배준용 기자 2015. 8. 29. 11:07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기부채납 방식으로 지어진 서울대 66개 건물 중 29곳에 무상임대 "상점 임대 따른 수익 땐 실질 기부액 크게 줄어들어.. 기부 취지 퇴색한 느낌" 다양한 기부 방식 찾아야

1990년대 이후 기업이나 재력가가 세운 재단이 대학에 건물을 지어 기부하는 일이 많아졌다. 수백억원을 들여 대학에 건물을 무상으로 지어주는 자체는 평가할 만한 일이지만, 대학가에선 "내밀하게 살펴보면 기부의 순수성을 의심할 만한 부분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부자가 해당 건물의 공간 일부를 수십년간 무상으로 임차해 다시 유명 프랜차이즈 카페 등에 세를 놓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본지가 국내 대기업과 재력가의 기부금이 몰리는 서울대의 '2015년 교내 기부 건물 임대 내역'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서울대에는 1984년 법학도서관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총 66개 건물이 기부 채납 방식으로 지어졌다. 그런데 이 가운데 서울대가 기부자(기부 재단 포함)에게 다시 무상 임대한 건물 공간은 연구공원 등 공익 시설을 포함해 총 29곳 9만1738㎡(약 2만7750평)였다. 무상 임대 기간은 대부분 20년 이상이며, 50년 이상 무상으로 임대받은 곳도 4곳이나 됐다.

이 가운데 건물 기부자가 서울대에 건물을 지어주고 다시 무상으로 임차한 공간을 상업 시설로 재임대하는 경우가 있다. 실제 서울대가 기부자에게 무상 임대한 29곳 중 18곳(4359㎡·1318평)에는 유명 프랜차이즈 카페, 패스트푸드점, 편의점 등 상업 시설이 입점해 있다. 한 재단이 약 30억원을 투입해 지어 2010년 서울대에 기부한 지상 4층 규모의 건물 1층에는 'CU' 편의점과 패스트푸드점 '파파이스', 2층에 카페 '자바시티'가 들어섰다. 이 점포들은 재단 이사장에게 20년간 무상 임대됐고, 재단은 총장 승인을 받아 이 공간을 프랜차이즈 업체들에 재차 임대를 줬다.

다른 재단의 기부금으로 지난 2월 완공된 지하 2층·지상 8층 규모의 한 건물에는 2층 규모의 상가 코너가 딸려 있다. 롯데리아, 파리바게뜨, 할리스커피 등 유명 프랜차이즈 업체가 입점한 이 공간도 건물 기부 재단이 서울대에서 25년간 무상으로 임차하고 프랜차이즈 업체 측에 임대료를 받고 세를 놓아 학내에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서울대 관계자는 "일부 기부자는 무상 임차한 공간을 다시 임대해 연간 수억원에서 10여억원의 임대 수입을 올리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건물을 기부하고 대신 수십년간 일부 공간을 무상 임차해 재임대함으로써 기부 금액의 상당액을 보전받는 셈 아니냐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대학가에선 "기부 자체는 평가할 만한 일이지만 기부의 취지가 퇴색한 느낌"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 서울대 교수는 "거액 기부가 연구비나 장학금보다는 건물 기부에 몰리다 보니 매년 학교는 공사판이 되고 교수와 학생 사이에서는 '그 많은 기부금이 어디 갔느냐'는 불만이 나오는 것"이라며 "몇몇 교수 사이에서는 '기부자들이 건물을 기부하고 대신 무상으로 장기간 해당 건물에서 임대업을 함으로써 대학을 편법 상속의 도구로 삼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돈다"고 했다.

물론 한 번에 막대한 돈이 들어가는 건물을 지어 기부하다 보니 기부한 측이 기존에 하던 공익사업 등을 유지하기 위해 무상 임대권을 요구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주장도 있다. 그러나 서울대 한 단과대학 부학장은 "건물 기부자에게 무상 임대해주는 방식이 남발되면 대학과 기업이 '거래'를 했다는 부정적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며 "거액 기부가 실질적 대학 연구와 교육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외국 대학처럼 기부자 이름을 딴 석좌교수직이나 연구소 등을 개설하는 등 다양한 기부 방식을 고민하고 무상 임대 기간도 적절하게 제한해야 한다"고 말했다.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