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1.5mm 불사조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입력 2015. 8. 29. 03:0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if 사이언스 샷] 이상하게 생겼죠? 지구 최강의 극한동물 '물곰' 물불 안가리고 살아남는 생존력..체르노빌에서도 견디는 생명력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살아남는 자가 결국 강한 것이니..

미지의 세계 우주로 지구 최강(最强) 동물을 보낸다면 누굴 뽑을까? 몸집이 가장 큰 흰수염고래일까, 아니면 사자나 호랑이도 꼼짝 못 하는 아프리카코끼리일까? 우주과학자들이 꼽은 지구 대표는 다 자라도 몸길이가 1.5㎜를 넘지 않는 완보동물(緩步動物)이다. '느리게 걷는 동물'이라는 뜻이다. 1776년 이탈리아 과학자 스팔란차니가 같은 뜻의 이탈리아어로 '타르디그라도(il Tardigrado)'라고 이름을 붙였다. 물속을 헤엄치는 곰처럼 생겼다고 '물곰(water bear)'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 이끼에 주로 살아 '이끼 돼지(moss piglet)'라고도 한다. 미 항공우주국은 2013년 3월 6일 '오늘의 천문 사진'에 이끼에 매달린 물곰〈사진〉을 싣고는 '지구에 사는 동물 중 외계 생명체로 가장 적합한 후보'로 꼽았다.

완보동물은 곤충과 거미, 갑각류 등이 포함된 절지동물의 이웃이다. 1773년 독일의 목사가 처음 발견했다. 이후 해발 5546m의 히말라야산맥에서부터 일본의 온천과 바다 밑바닥, 남극까지 지구 곳곳에서 900여종이 확인됐다. 다리가 8개이고 끝에는 곰처럼 날카로운 발톱이 나있다. 입에는 단검처럼 날카로운 이빨이 있어 먹잇감인 플랑크톤을 찔러 죽인다. 화석을 통해 5억년 전부터 지구에 살아왔음을 알 수 있다.

물곰은 극한(極限) 동물이다. 수십년 동안 음식은 물론 물 없이도 살 수 있으며, 섭씨 영하 273도의 극저온이나 물이 끓는 온도를 한참 지난 151도 고열에도 끄떡없다. 1948년 한 이탈리아 동물학자는 박물관에서 보관하던 120년 된 이끼 표본에 물을 붓자 그곳에 있던 물곰들이 다시 살아났다고 보고했다. 심지어 치명적 방사선을 맞아도 살 수 있다. 동물 대부분이 10~20그레이 정도의 방사선량에 목숨을 잃는데 물곰은 무려 5700그레이의 방사선도 견딘다. 지구에서 가장 깊은 마리아나 해구(海溝)보다 6배나 높은 수압도 견딘다.

물곰의 생존력은 이미 우주에서 입증됐다. 유럽우주국(ESA)은 2007년 9월 14일 무인 우주선 '포톤(FOTON)-M3'를 발사했다. 우주선에는 다양한 과학 실험 장비가 실렸는데, 그중 하나가 물곰의 우주 환경 생존 실험 장치였다. 12일 후 지구로 귀환한 물곰들에게 수분을 제공하자 일부가 살아났다. 진공 상태의 우주 공간에서 치명적 방사선에 견딘 생명체는 물곰 이전에 이끼와 박테리아밖에 없었다. 동물로는 물곰이 최강인 셈.

그렇다면 물곰은 어떻게 극한 환경에서 살아남을까. 일단 물곰은 물이 없으면 몸을 공처럼 말고 일종의 가사(假死) 상태에 빠진다. 신체 대사율은 평소의 0.01%로 떨어진다. 또 트레할로스(trehalose)란 당분으로 단백질 등 주요 부분을 감싼다. 몸에 얼마 남지 않은 수분도 감싼다. 덕분에 온도가 갑자기 올라가도 수분이 팽창하지 않아 세포를 파괴하지 않는다. 트레할로스는 수분이 얼어 세포를 찢는 일도 막는다. 수분이 사라지면 몸에 다량의 항산화제도 만든다. 항산화제는 DNA가 파괴되는 것을 막고 손상된 부분은 보수한다.

과학자들은 물곰이 수분이 없는 조건에서 살 수 있도록 진화하다 보니 부수적으로 방사선이나 고압에도 견딜 수 있게 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물곰 중 원시종은 극한 조건을 견디지 못한다. 바다에 사는 종도 마찬가지다. 이를 통해 물곰이 바다에서 육지와 담수(淡水)로 이주하면서 극한 조건에서 견디는 능력을 진화시켰다고 볼 수 있다.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