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 표절 사태 이후의 한국문학.."문제는 신경숙의 대응"

신효령 2015. 8. 28.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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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지성사 계간지 '문학과사회' 가을호에서 김영찬 평론가 지적황호덕 평론가 "윤리적인 문제로 급작스럽게 변형시킨 것은 신경숙의 망각"소영현 평론가 "표절 사태, 문학 범주 내의 문제로 다루어야"

【서울=뉴시스】신효령 기자 = 소설가 신경숙(52·사진)의 표절 파문과 관련해 문학과지성사가 계간 '문학과사회' 가을호에 '표절 사태 이후의 한국문학' 대담을 게재했다.

28일 출판계에 따르면 지난 7일 서울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내부 편집위원인 김형중·강동호 문학평론가와 외부 평론가인 김영찬·소영현·황오덕 등 평론가 5명이 참석해 4시간 가량 좌담이 진행됐다.

문학과지성사는 관련 내용을 정리해 최근 발간한 문학과사회' 가을호에 '표절 사태 이후의 한국문학'이라는 좌담을 실었다.

김형중 평론가는 "단순히 한 작품의 표절 문제뿐만 아니라 한국 문학 전체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다"며 "몇몇 출판사의 상업주의, 문학권력 문제, 1990년대 한국문학에 대한 재평가의 필요성 등 신경숙 표절을 둘러싼 일종의 담론이 형성됐다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가장 큰 비판을 받은 대상은 '창비와 '문학동네'다. 그러나 '문학과 지성사' 또한 적지 않게 비판의 대상으로 언급되었고 이런 상황에서 '문학과 사회' 역시 이번 사태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와 자기 반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앞서 소설가이자 시인인 이응준(45)은 지난 6월16일 온라인매체 허핑턴포스트 코리아를 통해 신경숙의 단편소설 '전설'(1996)의 한 대목이 미시마 유키오의 단편 '우국'(1983)의 일부를 표절했다고 주장했다.

그가 표절 의혹을 제기한 대목은 다음과 같다.

"두 사람 다 실로 건강한 젊은 육체의 소유자였던 탓으로 그들의 밤은 격렬했다. 밤뿐만 아니라 훈련을 마치고 흙먼지투성이의 군복을 벗는 동안마저 안타까와하면서 집에 오자마자 아내를 그 자리에 쓰러뜨리는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레이코도 잘 응했다. 첫날밤을 지낸 지 한 달이 넘었을까 말까 할 때 벌써 레이코는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고, 중위도 그런 레이코의 변화를 기뻐하였다."(미시마 유키오)

"두 사람 다 건강한 육체의 주인들이었다. 그들의 밤은 격렬하였다. 남자는 바깥에서 돌아와 흙먼지 묻은 얼굴을 씻다가도 뭔가를 안타까워하며 서둘러 여자를 쓰러뜨리는 일이 매번이었다. 첫날밤을 가진 뒤 두 달 남짓, 여자는 벌써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다. 여자의 청일한 아름다움 속으로 관능은 향기롭고 풍요롭게 배어들었다. 그 무르익음은 노래를 부르는 여자의 목소리 속으로도 기름지게 스며들어 이젠 여자가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니라 노래가 여자에게 빨려오는 듯했다. 여자의 변화를 가장 기뻐한 건 물론 남자였다."(신경숙)

황호덕 평론가는 "그 일이 언론에 보도되고 나서 '문학과 사회(1994년 겨울호)에 실렸던 '전설'이라는 소설을 찾아보았다"며 "내가 읽어본 소설이더라. 왜 기억이 안 나는가 생각해봤는데, 신경숙 전체 작품 중에서는 전형적이기는 하지만 그다지 인상에 오래 남는 성공적인 작품은 아니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어 "'우국'에서 굉장히 남성의 성애적인 관점에서 묘사된 대목을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에, 소설 '전설'의 전체 톤에서도 약간 돌출적이다"며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한편으로 어떻게 보면 이게 작품들 사이의 인유라는 관계 안에 있는데, 이것을 윤리적인 문제로 급작스럽게 변형시킨 것은 역시 신경숙의 망각이었다는 생각이 들고, 그 망각을 부추기거나 내지는 망각을 옹호하는 관점들이 출판사 성명을 통해 '공식화'되면서 이 사건을 하나의 수수께끼에서 저잣거리의 사건으로 단번에 몰고 갔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김영찬 평론가는 "일단 명확하게 표절이라 할 수 있는 문제의 구절만 지워버린다면 '전설'은 그 자체로는 표절작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며 "즉, '우국'의 구조를 차용해 그 소설의 남근적 주제를 여성적 시선으로 다시쓰기한 소설로 볼 여지가 있다는 얘기다. 두 작품의 구조의 유사성도 그런 맥락에서 보면 충분히 설명된다"고 말했다.

이어 "역시 문제는 표절 혐의에 대한 신경숙의 대응이다"며 "'우국'을 읽지 않았다는, 기억나지 않는다는 대응. '우국'을 읽었고 거기에 기대어 새로 썼다, 그리고 명확히 그대로 베껴 쓴 문제의 그 부분은 실수였다 라고 했으면 사태는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라고 덧붙였다.

소영현 평론가는 "내가 문제제기하고 싶은 것은, '창작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관해서다"며 "특정 작품의 표절 여부를 떠나서 여러 작가, 작품을 대상으로 한 표절 논의가 왜 반복적으로 불거지는가를 질문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긴급 사안에 대한 판정을 위해서라도, '창작'에 대한 우리의 상상, 공동체가 합의한 규정에 대한 질문이 필요한데, 그런 차원에서 보자면 낭만주의 천재론에 입각한 작가론이 시대착오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도 근본 원인 가운데 하나라 할 수 있겠다"고 말했다.

강동호 평론가는 "'우국'과 '전설'을 서로 비교했을 때 석연치 않은 유사성이 발견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며 "그리고 문장 및 서사 구조의 유사성을 고려할 때, 신경숙이 미시마 유키오를 적극적으로 참고했을 것이라는 의심을 제기하는 것 역시 합리적이다. 그러나 이를 직접적으로 표절과 동일시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한 고민은 선행될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노파심에 먼저 말하면, 나는 신경숙을 변호하려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며 "무엇보다 '표절'이라는 규정 자체가 사후적으로 이루어지는 다분히 제도적 규정이라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즉, 표절이라는 사건은 일종의 구성된 담론이지 어떤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강 평론가는 "신경숙의 '전설'이 좋은 작품인지에 대한 판단도 동의할 수 없지만, 더욱 동의할 수 없는 것은 작품의 성취로 표절인지 아닌지를 규정하는 기준과 그와 같은 미학적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은연 중에 자임하는 비평가의 위치이다"며 "결국 미학적 성취 여부로 표절을 판단하게 된다면, 상이한 미적 판단들의 공허하고 소모적인 투쟁만 반복될 뿐이다. 이것은 작금의 사태를 공통의 토론 주제로 우리가 고민하는 데 오히려 불필요한 오해를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소 평론가는 "표절의 판정이라는 것은 공동체의 합의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다"며 "동시에 과거와 현재와의 관계성 문제로 다루어져야 한다. 긴 역사적 안목에서 보자면, 인용이 반복되면서 표절 여부의 판정이 역사적으로 번복될 수 있는 것이다. 번복과 재번복의 역사를 포함해서, 표절 사태를 문학 범주 내의 문제로 다루어야 한다고 말해두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판정을 어렵게 하는 골치 아픈 문제는 문학의 문학적 활용인데, 이것은 법적 판정의 문제로 볼 수 없으며 그렇게 보아서도 안된다"며 "법적 차원에서 저작권 침해의 핵심은 이윤 배분 문제와 연결된다. 문학에 관한 한 이런 관점으로 접급할 때 얻을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황 평론가는 "출판사들의 대응이나 지난 행적, 특히 창비의 대응, 그 뒤의 대표적 고유명의 입장, 아직도 베일에 가려져 있으나 누구나 대체로 짐작하는 입장. 또 한편으로는 그게 어떤 진영이든 아니면 출판사이든 간에, 출판이 어떤 작가에 대한 비평적 옹호나 상업적 응원이 개연성을 갖고 그 진영이 해온 그간의 일들과 일관되게 엮어있는 것으로 사람들이 인식했느냐의 여부다"며 "신경숙의 경우에는 아니었던 것 같다. 창비가 생각했던 것, 해왔던 것과는 어떤 다른 형태의 문학을 다른 이유에서 옹호하고 응원해왔다라는 생각이 이미 만연해 있다"고 말했다.

김영찬 평론가는 "발단은 신경숙 표절 사태였지만 그것이 문학권력 비판으로까지 번져간 건 어떤 측면에선 비약이긴 하지만 충분히 있을 수 있는 문제 제기라고 생각한다"며 "분명히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그런 방식으로 터져나오는 것이다. 그건 한편으로 지금 한국 문학장의 시스템, 당연하게 생각해왔고 관행적으로 굴러와 경직되어버린, 그래서 여러 문제를 발생시키는 그 시스템의 문제점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 그 시스템이 한계에 다다른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기존 시스템의 불가피함이나 순기능도 물론 있을 순 있겠지만, 그 시스템이 90년대 이후로 서서히 바뀌어왔던 한국 문학출판의 논리와 불가피하게 결합되어 있다는 건 분명하다"며 "이를테면 80년대까지 문학출판이 일종의 문화운동이나 실전의 차원이었다면, 이제는 자본주의적 경영과 관리의 차원으로 바뀐거다"고 덧붙였다.

한편 소설가 신경숙은 표절 의혹이 처음 제기된 지난 6월17일 창작과비평 출판사에 보낸 메일을 통해 "오래 전 '금각사' 외엔 읽어본 적 없는 작가로 해당 작품('우국')은 알지 못한다"며 일본 작가의 작품을 표절했다는 의혹을 부인했다.

창작과비평(창비) 역시 두 작품의 유사성은 전체 작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다며 표절로 판단할 근거가 부족하다고 밝혔다. 거센 비판에 휩싸이자 창비는 하루 만에 입장을 번복하고, 사과하는 내용의 입장글을 18일 오후 발표했다. 같은날 고려대 교수를 지낸 현택수 한국사회문제연구원장이 신경숙을 사기와 업무방해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 표절 논란은 문학계 바깥으로 번졌다.

침묵하던 신경숙은 엿새만에 다시 입을 열었다. 6월23일자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작품과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우국'과 여러 차례 대조해 본 결과 "표절이란 문제 제기를 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표절 의혹을 단호히 부인했던 기존 입장을 바꿨다.

이러한 태도에 누리꾼들은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고, 표절 파문은 작가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거대 출판사들의 '문학권력'을 둘러싼 논란으로 이어졌다.

신 작가의 주요 작품을 출간해온 창작과비평(창비), 문학동네(문동), 문학과지성(문지)이 한국 문학에 작동하는 '문학권력'으로 지목됐다. 이들 출판사들의 폐쇄된 권력구조와 상업주의, 문단 내 형성된 '침묵의 카르텔', 평론가들의 영혼없는 '주례사 비평' 등이 신 작가를 둘러싼 표절 논란을 무마하는 데 일조했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입장 표명 요구와 비난 여론이 거세졌다.

창비는 2개월 만에 또 다시 신작가를 두둔해 최근 논란을 일으켰다. 백영서 '창작과비평' 편집주간(연세대 사학과 교수)은 지난 24일 가을호 책머리에서 "독자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사죄드린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저희는 그간 내부토론을 거치면서 신경숙의 해당 작품에서 표절 논란을 자초하기에 충분한 문자적 유사성이 발견된다는 사실에 합의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런 유사성을 의도적 베껴쓰기로 단정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며 "무의식적인 차용이나 도용도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표절이라는 점이라도 신속하게 시인하고 문학에서의 '표절'이 과연 무엇인가를 두고 토론을 제의하는 수순을 밟았어야 했는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또 창비가 '문학권력'의 축이란 비난을 들었던 것에 대해 방어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는 "표절 문제에 대한 발언이 특히 어려웠던 것은 그것이 또다른 쟁점, 곧 문학권력(내지 문화권력) 논란과 결부되어 있었기 때문"이라며 "창비가 '문학권력'으로 지목되는 순간 감정이나 도덕 차원의 비난 대상에 오르고 무슨 발언을 해도 불순한 권력행사로 비치기 십상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문제 또한 찬찬히 따져볼 때가 되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snow@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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