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에 싸인 조선화가 김훈의 채색 불화 첫 발견

2015. 8. 28.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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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상 박사 "19세기 북학파 불교문화 보여주는 그림"

박철상 박사 "19세기 북학파 불교문화 보여주는 그림"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추사 김정희, 초의선사와 교류했지만 남겨진 작품이 거의 없어 잘 알려지지 않은 조선화가 형암 김훈(金壎)의 채색 불화가 처음으로 발견됐다.

이 그림은 지난 5월 한 미술품 소장가가 일본 경매에서 구입한 '무량수불'(無量壽佛) 불화로, 가사를 걸친 부처가 복숭아와 불로초를 든 채 홀로 서 있다. 그림의 크기는 가로 21㎝, 세로 33㎝다.

고문헌연구가인 박철상 박사는 28일 학술 연구 모임인 '문헌과 해석'에서 김훈의 무량수불 불화를 다룬 짧은 논문을 발표한다고 밝혔다.

발표문에 따르면 김훈은 오세창이 1917년 편찬한 서화가 사전인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에 "중국에 있었더라면 당연히 명류(名流)의 한 자리를 차지했을 텐데, 마침내 아무도 없는 물가의 초목처럼 사라져 버렸으니 참 안타깝다"고 기록된 인물이다.

이 사전에는 충청도 사람으로 천문학에 조예가 깊고 불상 그리기를 좋아했으며 "붓질 한 번에 그려 냈는데도 오묘한 모습이 모두 갖춰져 있었고, 붓질을 두 번 한 곳이 없었다"는 내용도 있다.

박철상 박사는 김훈의 불화를 연구하면서 부처의 좌우에 있는 글씨를 통해 그림에 깃든 사연을 찾아냈다.

부처 오른쪽에는 추사의 서체로 "소재노인(蘇齋老人)의 축수를 위해 형암에게 부탁해 무량수불 하나를 공경히 그렸다. 조선의 유최관은 손을 씻고 백 번 절합니다"고 쓰여 있고, 왼쪽에는 "계유년 2월 조선의 김해 김씨 김훈은 정벽암 안에서 삼가 그렸다"는 글이 있다.

그는 이 내용을 토대로 1813년 2월 유최관의 집인 정벽암에 김훈, 김정희, 유최관이 모였고, 이 자리에서 불화가 제작됐다고 말했다.

세 사람이 불화를 만든 이유는 소재노인의 축수인데, 소재노인은 1733년에 태어난 중국 학자 옹방강을 지칭한다.

당시는 김정희가 1810년 연행에서 옹방강과 연을 맺고 귀국해 추사와 친한 조선 문사들 사이에서 옹방강이 청나라 학술의 대명사로 불리던 시기다.

유최관 역시 1812년 왕세자의 책봉을 주청하는 사신으로 연경을 갔다가 옹방강을 만나 환대를 받았고, 이듬해 옹방강이 팔순을 맞자 김훈에게 불화 제작을 주문한 것으로 추정된다.

박 박사는 "김훈의 채색 불화에 나타난 부처의 얼굴을 보면 일반적인 부처가 아니라 평범한 승려처럼 느껴진다"면서 "불교문화가 북학파 지식인들의 삶 속에 깊이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그는 그림이 돌아온 경위에 대해 "그림의 뒷면에 '조선화불 해일루장'(朝鮮畵佛 海日樓藏)이란 글씨가 있는데, 해일루는 청나라 말기 학자인 심증식이 상하이에 머물 때 사용한 서재의 이름"이라면서 "1930년대 이후 중국을 떠돌다 일본을 거쳐 귀환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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