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아이스하키 안정현 "이민자들에게 희망 되고 싶어요"

입력 2015. 8. 27. 0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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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평창 동계올림픽 위해 캐나다 시민권 포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위해 캐나다 시민권 포기

(안양=연합뉴스) 신창용 기자 = 국내 아이스하키 실업팀 안양 한라의 공격수 안정현(22)은 두 살이던 1994년 유학길에 오른 부모의 품에 안겨 캐나다로 건너갔다.

3년 전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20년에 가까운 시간을 캐나다에서 보냈으니 그는 한국인이라기보다는 캐나다인에 가깝다.

그런 그가 캐나다 시민권을 포기했다. 이유는 단 하나.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태극 마크'를 달고 자신의 모든 것을 불사르고 싶었기 때문이다.

최근 안양 실내빙상장에서 만난 그는 "솔직히 고민을 많이 했다. 주변에서도 말리는 사람이 더 많았다"면서 "하지만 마지막에는 내 가슴이 그걸 원했고, 그게 맞는 길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고향인 한국에서 열리는 이번 올림픽은 나에게는 일생에 한 번뿐인 기회"라며 "후회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안정현은 아이스하키의 본고장인 캐나다에서도 촉망받는 유망주였다.

2008년 앨버타주 16세 이하 대표팀에 뽑혔고, 2009년에는 앨버타주 17세 이하 대표팀에 선발되며 웨스턴하키리그(WHL) 관계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WHL은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사관학교로 알려진 3대 메이저 주니어리그 중 하나다.

훗날 아버지는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교수, 어머니는 미시간대 교수가 됐지만, 안정현이 어렸을 때 그의 부모는 배고픈 유학생이었다.

하나뿐인 외아들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생활비를 아껴가면서까지 많은 것을 포기하며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했던 부모의 희생도 보답을 받는 듯 했다. 안정현이 경기 도중 발목이 부러지는 큰 부상을 당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안정현은 이 부상으로 1년을 거의 통째로 날려야 했다. 소속팀은 경기에 뛰지 못하는 그를 다른 팀으로 보내 버렸다. 안정현은 이적한 팀에서 다친 곳을 또 다쳤다. 대학 진학과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입성의 꿈은 그렇게 멀어져갔다.

안정현은 재기를 위해 몸부림쳤지만, 유망주 중에서도 톱클래스에 속했다가 순식간에 땅바닥으로 추락한 그를 눈여겨보는 사람들은 없었다. NHL 진출도 대학 진학도 불투명하던 그때 안양 한라에서 연락이 왔다.

"사람은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꿈이 있어야지 살 수 있잖아요. 한국에 오면 올림픽이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올림픽이라면 내가 살아갈 수 있는 이유가 될 거라고 믿었어요."

그렇게 안정현은 2012년 11월 한국 아이스하키 실업팀 최연소 입단 기록을 세우며 안양 한라 유니폼을 입었다. 국적 문제로 캐나다 서부 지역 주니어 대표팀 선발 기회를 놓치는 등 보이지 않는 차별을 당했던 아픈 기억도 영향을 미쳤다.

동양인 아이스하키 선수라는 이유로 캐나다에서 놀림을 당해야 했던 안정현은 한국에서는 또 다른 어려움을 겪었다. 캐나다에서의 행동방식이 몸에 익은 터라 그에게는 '나이도 어린 데 건방지다'는 평가가 따라다녔다. 안양 한라에서 맞은 첫 시즌에는 별다른 기회를 얻지 못하고 5경기 출전에 그쳤다.

2013년 8월에는 대한아이스하키협회의 '핀란드 프로젝트'에 선발돼 키에코 완타에 입단했다. 아이스하키 강국 가운데 하나인 핀란드의 선진 시스템에서 올림픽 유망주를 육성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핀란드 프로젝트'는 흐지부지됐고, 안정현은 오갈 데 없는 몸이 됐다. 2014년 여름 체코 2부리그 트라이아웃에 도전했지만 낙방했고, 이어 미국 프로 3부리그에 해당하는 ECHL 트라이아웃에 도전했지만 역시 계약에 이르지는 못했다.

안정현은 결국 지난해 12월 시즌 중 뒤늦게 안양 한라에 재입단했다. 다시 돌아온 그는 캐나다 시민권 포기를 계기로 심기일전해서 올 시즌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겠다는 각오로 임하고 있다.

떠돌이 생활을 했던 지난 2년과 달리 올 시즌에는 한국에 머물며 체계적인 체력 훈련을 소화했고 더는 뛸 팀을 구할 걱정을 던 만큼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다.

물론 안정현이 캐나다 시민권을 포기하는 결단을 내렸다고 해서 '태극 마크'가 자동적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먼저 올림픽 국가대표 엔트리 경쟁을 뚫어내야 한다.

그는 "누구든지 열심히 하지 않으면 대표팀에 선발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또 백지선 감독님이 그런 면에서는 공평하다"면서 "하지만 누구나 똑같은 부담이 있고, 나는 선발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고 당차게 말했다.

그만큼 자신의 실력을 믿기 때문이다.

185㎝, 87㎏의 당당한 체격에다 센터와 레프트 윙, 디펜스까지 소화할 수 있는 만능 플레이어인 안정현은 "항상 어떤 포지션에서 뛰든 내가 나왔을 때는 얼음을 지배한다는 느낌으로 뛴다"면서 "드리블 능력이나 패싱 능력에 더해 피지컬적인 면을 섞는 게 내 특기다. 또 경기의 흐름을 읽을 줄 아는 시야까지 갖췄다고 생각한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한국 최초의 NHL리거인 백지선(미국명 짐 팩) 국가대표팀 감독, NHL 스타 플레이어 출신인 박용수(미국명 리처드 박) 국가대표팀 코치가 선수들에게 누누이 강조하는 것도 자신감이다.

안정현은 "백 감독님과 리처드 코치님은 대표팀 훈련할 때마다 '우리 자신이 자신을 스스로 믿어야 한다. 그래야 평창에서 그런 모습이 나올 수 있다'고 강조한다"면서 "캐나다에서 그분들을 보고 영감을 받으면서 자랐던 나에게는 너무나도 특별한 말이었다"고 전했다.

공교롭게도 대표팀은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조별리그에서 세계 최강 캐나다와 맞붙는다. 안정현에게는 특별한 상대다.

"캐나다를 만나게 되면 이기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들 것 같아요. 한국으로 오게 된 상황은 운명이라고 볼 수 있지만 어떻게 보면 캐나다에서 꿈을 펼치지 못하고 돌아온 거잖아요. 그들이 틀렸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물론 캐나다를 원망하는 것은 아닙니다."

안정현에게는 그것 말고도 평창에서 잘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그는 "지금도 타지에서 많은 차별과 놀림을 받는 이민자 분들을 위해서라도 잘하고 싶다"며 "내가 캐나다에서 살아온 배경이 있고, 또한 동양인 아이스하키 선수이기 때문에 내가 잘해야지 그분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안정현이 뛰는 모습을 볼 수 있는 2015-2016 아시아리그 아이스하키는 오는 29일 안양 실내빙상장에서 열리는 안양 한라와 차이나 드래곤의 개막전을 시작으로 출발한다.

chang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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