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들 "신경숙 표절 사태, 출판사·비평가 책임 크다"

신효령 2015. 8. 26. 18:3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실천문학 등 문예지 '한국문학, 침묵의 카르텔' 토론회

【서울=뉴시스】신효령 기자 = 소설가 신경숙(52)의 표절 파문에 출판사·비평가 등의 책임이 크다는 지적이 나왔다.

출판사 실천문학은 오늘의 문예비평·황해문화·리얼리스트와 함께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숭동 책읽는사회문화재단에서 '한국문학, 침묵의 카르텔'을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소영현 문학평론가('21세기 문학' 편집위원)는 '가을호 계간지를 통해 본 현재의 한국문학', 임태훈 문학평론가('말과 활' 편집위원)가 '환멸을 멈추고 무엇을 할 것인가', 박형준 문학평론가('오늘의 문예비평' 편집위원)의 '비평가의 로케이션과 비평의 역할'을 주제로 각각 발표했다.

이어 이강진 문학평론가와 시인 박일환('리얼리스트' 전 편집주간)이 토론자로 참여해 열띤 토론을 했다. 이날 오후 2시10분 경에 시작된 토론회는 오후 5시30분이 넘어서야 끝났다.

소영현 평론가는 "지난 6월16일 이응준 작가가 허핑턴포스트에 글을 게재한 이후 소설가 신경숙의 표절 논의가 예기치 못한 논쟁을 불러왔다"며 "삽시간에 한 작가의 표절 시비에서 문단 전체의 불의와 그에 대한 윤리적 단죄 요청으로 논의가 뒤바뀌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 사과나 특정 작가의 표절 여부를 판정하는 것만으로 수습되고 정리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며 "표절 시비에서 문학권력 비판을 거쳐 다음 스텝으로 논의 지평이 확장되고 있다. 문학장 쇄신에 대한 요청에 어떤 방식으로든 응답이 필요한 시점이다. 여전히 표절 프레임 내부에서 답을 찾으려하는 반응에 멈춰 있다는 점에서 창비의 이번 대응이 아쉽다. 좀 더 책임감 있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임태훈 평론가는 "한국문학이 독자에게 외면받는 현상이 출판 시장의 위기에 맞물려 있다는 사실도 직시해야 한다"며 "창비와 문학동네가 비겁한 변명과 어정쩡한 방어 논리 사이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까닭도, 지금 같은 불황기에 신경숙급의 베스트셀러 작가를 잃는다는 게 출판 시장에서 얼마나 큰 손실인지 감당이 안 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문학은 소셜네트워크 뿐만 아니라 출판사 회계 장부에서도 큰 고민거리"라며 "한국문학이 창작 노동자(작가)와 출판 노동자들의 밥이 되고 생활비가 될 수 있도록 필사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1조3000억원에 불과한 단행본 시장의 매출 규모가 곧 7000억원대로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도 도저히 허투루 들을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임 평론가는 "아직 세상에 나오지 못한 미래의 책이 많다"며 "일말의 희망이라도 품고 힘을 보태야 할 것은 책과 문학의 생태계다. 새로운 사람들을 새롭게 키워내는 것이야말로 신경숙 사태의 진정한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문학 재생산의 한 축이라 할 수 있는 대학에선 국문과와 문창과가 사라지고 있다. 학과만이 아니라 아예 대학이 사라지고 있다"며 "앞으로 4~5년 사이에 출판 시장은 더 큰 위기를 겪게 될 것이다. 출판계 어디를 들여다봐도 곡소리가 가득하다. 실적 전망이 어둡다보니 신규 채용 규모도 줄어들고 있다. 출판 생태계가 사람을 제대로 길러내지 못할 지경에 이른 것이다. 신경숙 사태는 이 와중에 터졌다"고 덧붙였다.

임 평론가는 "한국문학의 기초적인 토대인 출판 생태계를 시장 기반 수익 창출에서 공공기반 비용 조달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읽고 싶은 책, 갖고 싶은 책을 중심으로 느슨한 사회적 연대를 구성하고, '펀딩'이라는 이름에 값하는 현실성 있는 설계를 갱신해나가는 기획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형준 평론가는 "신경숙 사태가 보여주듯 '창비'와 문학동네' 식의 한국문학 융성 기획과 비평적 균형 감각의 유지는 분명 실패했다"며 "신경숙 사태가 한국문학에 제기한 중요한 문제는 자기 한계에 부딪힌 특정작가의 비도덕적 일탈, 혹은 실체를 가늠하기 어려운 문학권력에 대한 추상적 비판을 넘어선 것이어야 한다. '창비' '문학동네'가 유지하고 버려야 하는 비평적 균형감각의 '실패'를 사유하고 성찰하며 재전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문학에서는 매체와 비평이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거나 쏠리지 않도록 '균형 감각'을 유지해주는 것이 바로 비평"이라며 "'창비' '문학동네'가 중핵 매체로서의 역할과 비평적 균형 감각을 잘 유지하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문제는 이들이 문학권력이냐 또는 아니냐가 아니라 이들 매체의 비평적 균형 감각이 어느 지점에서 무너지고 상실됐는지, 그러한 기획의 실패 자체를 왜 인정하지 않는지 진단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소설가이자 시인인 이응준은 지난 6월16일 온라인매체 허핑턴포스트 코리아를 통해 신경숙의 단편소설 '전설'(1996)의 한 대목이 미시마 유키오의 단편 '우국'(1983)의 일부를 표절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신경숙은 다음날 창작과비평 출판사에 보낸 메일을 통해 "오래 전 '금각사' 외엔 읽어본 적 없는 작가로 해당 작품('우국')은 알지 못한다"며 일본 작가의 작품을 표절했다는 의혹을 부인했다. 창작과비평(창비) 역시 두 작품의 유사성은 전체 작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다며 표절로 판단할 근거가 부족하다고 밝혔다. 거센 비판에 휩싸이자 창비는 하루 만에 입장을 번복하고, 사과하는 내용의 입장글을 18일 오후 발표했다.

하지만 2개월 만에 또다시 신작가를 두둔해 최근 논란을 일으켰다. 백영서 '창작과비평' 편집주간(연세대 사학과 교수)은 지난 24일 가을호 책머리에서 "독자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사죄드린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저희는 그간 내부토론을 거치면서 신경숙의 해당 작품에서 표절 논란을 자초하기에 충분한 문자적 유사성이 발견된다는 사실에 합의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런 유사성을 의도적 베껴쓰기로 단정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며 "무의식적인 차용이나 도용도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표절이라는 점이라도 신속하게 시인하고 문학에서의 '표절'이 과연 무엇인가를 두고 토론을 제의하는 수순을 밟았어야 했는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또 창비가 '문학권력'의 축이란 비난을 들었던 것에 대해 방어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는 "표절 문제에 대한 발언이 특히 어려웠던 것은 그것이 또다른 쟁점, 곧 문학권력(내지 문화권력) 논란과 결부되어 있었기 때문"이라며 "창비가 '문학권력'으로 지목되는 순간 감정이나 도덕 차원의 비난 대상에 오르고 무슨 발언을 해도 불순한 권력행사로 비치기 십상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문제 또한 찬찬히 따져볼 때가 되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snow@newsis.com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Copyright ©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