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대격변' 시작된다

박종훈 2015. 8. 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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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한 경제 #35 (마지막 회)

2015년은 정말 우리 경제의 대내외 환경이 송두리째 바뀌는 중요한 변곡점이 되는 해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변화는 2015년 이후 15~64세 인구인 생산가능인구의 비중이 본격적으로 감소하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2012년에 정점을 기록했던 생산가능인구의 비중이 3년째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다가 본격적으로 줄어들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우리 경제는 생산가능인구 비중이 늘어나면서 경제성장이 가속화되는 인구 보너스(Demographic Bonus) 혜택을 누려왔다. 하지만 2015년 이후에는 생산가능인구 비중의 감소로 경제성장이 둔화되는 ‘인구 오너스(Demographic Onus)의 습격’이 시작될 것이다.
인구 오너스 시대에는 노동력 감소가 가장 큰 문제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것보다 심각한 문제는 소비 시장이 위축된다는 점이다. 은퇴세대는 젊은 층과 달리 자동차나 냉장고, 가구 같은 내구재를 적극적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더구나 청년층이 줄어들면 신제품이 나오자마자 사는 ‘얼리 어답터(Early Adopter)’의 숫자가 감소해 창의적인 신제품이 설 자리가 사라진다.
더 큰 문제는 자산시장이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은퇴세대는 아무래도 실물 자산을 팔 수밖에 없는데, 이를 사줄 청년층의 숫자가 줄어들면 자산 가치가 하락할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지금까지 인구 오너스의 습격에서 자산 가치를 방어하는 데 성공한 나라는 해외 자본이 대거 유입됐거나 청년층이 든든한 경제 기반을 갖고 있는 경우밖에 없었다.

■ 빠른 추격자 전략의 종말

2015년 이후 우리가 겪을 거대한 변화는 단지 인구 문제만이 아니다. 우리가 맞이하게 될 또 다른 문제는 그동안 우리 경제가 성장하는 데 가장 큰 원동력이 되어왔던 ‘빠른 추격자 전략’이 급속히 힘을 잃어간다는 점이다.
‘빠른 추격자 전략’이란, 다른 나라에서 성공이 확인된 혁신적인 상품이나 서비스를 벤치마킹해서 뛰어난 조직력을 동원해 빠르게 선두주자를 추격하는 방식이다. 비록 남의 것을 베끼는 것이지만 혁신 기반이 부족한 개도국에서는 매우 효율적인 전략이 될 수 있다. 이미 성공한 혁신을 추격의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투자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고, 한정된 개도국의 자원을 한 곳에 집중시켜 자원을 낭비하지 않고 신속하게 추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빠르게 성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던 이 빠른 추격자 전략이 이제는 더 이상 과거와 같이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없게 됐다. 혁신의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생산성 향상 속도가 눈에 띄게 더뎌진 데다, 중국이나 인도처럼 강력한 내수 시장으로 무장한 나라들이 우리보다 더 빠르고 효율적인 추격 전략으로 도전장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지금 우리가 빠른 추격자 전략을 버리고 ‘혁신을 선도하는 전략(First Mover Strategy)’으로 전환하기도 쉽지 않다. 이를 위해서는 대기업에 편중된 경제 시스템이 아니라 새로운 창업 기업이라도 언제든 1등이 될 수 있는 역동적인 창업 생태계가 조성되어야 하지만, 이미 대기업에 중독된 우리 경제가 당장 혁신적인 경제로 전환하기는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 2015년, 대외 경제 여건마저 악화되다

게다가 우리를 둘러싼 대외 경제 여건마저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 그동안 세계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해왔던 중국은 이미 2012년부터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드는 인구 오너스 현상을 겪고 있다. 다행히 지금까지는 농촌의 유휴 인력이 도시로 몰려드는 ‘도시화’ 현상 덕분에 그 충격을 완화할 수 있었지만, 이제 그 한계에 가까워지면서 중국의 빠른 경제성장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특히 한없이 부풀어 오른 중국의 자산 버블은 언제 꺼질지 모를 만큼 위험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중국 정부가 대대적인 부양책으로 거품 붕괴를 잠시 뒤로 미뤘지만, 이미 성장률이 하락하기 시작한 상황에서 자산 버블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만일 중국의 자산 버블이 꺼지기 시작하면 지금까지 온갖 회계 부정으로 부실을 숨겨왔던 은행이나 기업들이 무너져 내려 경제 전체에 큰 충격을 주게 될 것이다.
유럽의 상황도 우리에게 결코 유리하지 않다. 유럽이 불황과 싸우겠다며 대대적인 양적 완화를 한 탓에 유로화 가치가 낮아지면서 우리 수출기업들의 경쟁력이 크게 악화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경기 회복 속도는 여전히 더딘 상황이다. 게다가 양적 완화를 무한정 유지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이러한 극단적인 조치로도 경제가 살아나지 못한다면 더 이상 유로존에 남아 있는 경기 부양책은 거의 없다.

■ 한국 경제에 ‘엔드게임(Endgame)’이 시작되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면 우리가 당장 금리를 따라 올리지 않더라도 더 이상 기준금리를 내릴 수는 없게 된다. 이 같은 상황은 그동안 금리 인하와 추경을 통해 경기 부양을 해왔던 우리 경제를 ‘엔드게임(Endgame)’ 상황으로 몰아넣게 될 것이다.
‘엔드게임’이란 체스 게임이 종반부에 이르면 남아 있는 장기 말이 거의 없어 둘 수 있는 수가 더 이상 남지 않은 상황을 가리키는 체스 용어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온갖 경기 부양책과 신용팽창 정책을 쏟아 부어 정부가 쓸 수 있는 정책 수단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을 나타내는 단어로도 쓰이고 있다.
주가가 회복되고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당장은 경기가 회복되고 있는 것처럼 착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사상 초유의 저금리 정책과 추경으로 풀린 천문학적 규모의 돈이 만들어낸 환상이었다면 어떻게 될까? 이제 2015년 이후 우리 경제가 서서히 엔드게임 단계에 들어가기 시작하면 돈의 힘이 사라진 우리 경제의 ‘진짜 실력’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돈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베일(Veil)’이 걷힌 뒤 우리가 직면하게 될 한국 경제의 민낯이 어떤 모습일지는 아직 속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 경제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 없이 경기 부양책만 반복해왔던 점을 감안할 때, 우리가 맞이하게 될 한계상황이 그리 녹록하지 않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대대적인 변화를 앞두고 있는 우리 경제에서 과거 고성장 시대에 누렸던 영화(榮華)의 그림자를 쫓기보다는 거대한 변화의 물결에 주의를 기울이고, 어떻게 생존할 것인가를 더욱 주의 깊게 연구할 필요가 있다. 한마디로 대격변의 시대에 당신의 생존 확률을 높이기 위해 안전벨트를 매어두는 편이 유리한 시기가 시작된 것이다.
지금까지 모두 35회에 걸쳐 연재된 ‘대담한 경제’는 이러한 경제 변화의 흐름을 먼저 포착하고 더 늦기 전에 이에 대비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특히 우리나라가 일본이나 남유럽의 실패사례를 답습하지 않고, 보다 나은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자 노력하였다. 이 칼럼이 경제 성장이 정체된 이후 맞이하게 될 깊고 어두운 수렁에서 헤쳐 나갈 방향을 알려주는 아주 작은 등불이라도 되기를 바란다.

* 대담한 경제는 35화를 마지막으로 시즌 1을 마칩니다. 앞으로 더 심도 깊은 연구를 통해 더욱 내실 있고 유익한 내용으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애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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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훈기자 ( jonghoon@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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