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은 힘이 세다..호칭으로 본 재벌의 속살

배성민 기자 2015. 8. 22.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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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회장 사실상 제압한 롯데 회장..회장이 많으면 분쟁이 싹튼다?

[머니투데이 배성민 기자] [명예회장 사실상 제압한 롯데 회장…회장이 많으면 분쟁이 싹튼다?]

총괄회장과 부회장, 이사장이 한편, 반대편은 회장, 이들의 충돌에서 회장이 선승했다. 한달 가까이 재계와 경제계를 뒤흔들고 있는 롯데 얘기다.

총괄회장은 이전까지는 60여년간 회장이었지만 이번 일을 전후로 명예회장이 됐고, 부회장은 그나마 전직이다. 이사장은 사장이었지만 회장은 달지 못 했다. 조직내 원 리더(one leader)가 된 회장은 이사, 전무, 본부장, 대표이사 부회장을 차근차근 거쳤다.

롯데가의 분쟁은 축약해보면 직함(호칭)간 다툼이었다. 통상적인 회장은 조직의 최고 결정권자다. 법적으로야 대표이사가 최고지만 국내 정서로는 대표이사는 사장이라는 의미 정도고 여러 계열사 대표이사를 거느린 기업집단(재벌)의 총수는 곧 회장이었다. 분쟁과 승진 등을 둘러싼 재벌가에서 직함의 의미를 뜯어봤다.

# 인사이드 롯데

롯데에서 신격호 회장의 말은 곧 법이었다. 세간에서는 '너 왜 있어? 나가'라는 손가락 지시라고도 했지만 그의 존재와 언급은 롯데의 고속성장을 이끌어낸 원동력이었다. 그는 1966년 일본의 롯데가 한국으로 진출할 때도 회장(일본 롯데그룹 회장은 1948년부터)이었고 2011년 총괄회장이 됐다. 롯데에서는 부인하지만 몇 년 전까지도 조선 3대왕 태종(세종 즉위 후 상왕(上王)이 된 태종은 죽을 때까지 4년 동안 초보 임금 세종의 멘토 역할을 했다)-4대왕 세종(태종 신격호, 세종 신동빈)과 비슷한 구도였다.

신동주 부회장은 올해 초 일본쪽 지주회사격인 롯데홀딩스에서 해임된 뒤로 전(前) 부회장이 됐다. 그는 형이지만 동생(신동빈)이 회장이 될 때도 외형상 크게 반발하지 않았고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지 않았다. 지난달말부터 롯데가의 분열이 생겼을 때도 자신보다는 아버지를 앞세웠다. 롯데호텔 34층(총괄회장 집무실)에서 공항으로, 비행기로 끌어낸 아버지의 육성과 지시서가 무기였다. 한계를 지닌 부(副)자의 역할에 거역도, 반발도 하지 않았다.

신동빈 회장은 군대로 치면 사단장같은 야전 사령관에서 합참과 VIP 벙커를 모두 장악하게 됐다. 이사(일본 롯데), 전무, 본부장(롯데 정책본부장), 대표이사, 부회장(1997년 그룹 부회장)을 거쳐 2011년 롯데그룹 회장이 됐다. 총괄회장이 있긴 했지만 금기어같던 '원 롯데-원 리더'라는 말을 남의 입을 빌어서긴 했지만 과감히 꺼냈고 결국 일궈냈다. 부회장이던 형(신동주)이 경영일선에서 배제된 것도 회장(신동빈)으로서의 영향력과 회장을 따르는 이들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했다. 신동빈 회장이 원 리더로 사실상 일본과 한국 롯데를 완전 장악한 전후로 신격호 총괄회장은 명예회장이 됐고 그의 수족같은 비서실장도 바뀌었다.

공식화되진 않았지만 신격호 총괄회장의 딸인 신영자 롯데삼동복지재단 이사장은 신동주 부회장의 편에 섰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20여년 가까이 롯데쇼핑과 부산롯데호텔 등에서 부사장을 지내다 2008년부터 사장직을 달았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막후 실력자라는 평가는 여전했지만 부회장으로까지는 못 올라갔고 롯데쇼핑보다는 복지재단 이사장으로 불리는 일이 늘어났다.

 # 다른 대기업은

삼성그룹의 연말 인사에서 매해 주목을 끌었던 것이 있다. 사장단 인사도 그랬지만 이건희 회장의 아들인 이재용 부회장과 딸(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등)의 승진 여부에 더 관심이 쏠렸다.

이재용 부회장은 2009년말 부사장이, 한해 뒤에는 사장이 됐고 2013년에는 부회장에 올랐다. 올해 5월에는 삼성생명공익재단과 삼성문화재단의 이사장(직전 이사장은 이건희 회장)으로 올라섰다. 아버지의 그룹 경영 관여가 어려운 상황에서 최고 정점에 오르면서 그룹내 전문경영인들보다 한단계 앞서게 된 것이다. 이부진 사장은 2005년 상무, 2009년 전무에 이어 2011년 사장이 돼 오빠보다는 두세걸음 뒤쳐졌다.

그룹 장악이나 경영권 행사 여부와 무관하게 부(副)자와 씨름하는 이들도 있다. 김남구 한국금융지주 부회장이 대표적인 경우다. 김 부회장은 아버지(김재철 회장)가 일군 동원그룹의 동원증권 시절부터 회사를 이끌어왔고 한국투자증권 인수 이후 외형을 키운 뒤로도 회장직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동원그룹은 아버지(김재철 회장)가 일찌감치 그룹을 둘로 쪼개 장남(김남구 한국금융지주 부회장)과 차남(김남정 동원그룹 부회장)에게 나눠준 상태다.

김남구 부회장은 전문경영인 사장 외에 회장직은 관가 등의 원로(고 장승우 장관, 윤진식 전 의원 등) 에게 맡기며 꾸준히 회사의 내실을 다져 수위권 회사로 키웠다.

회장이라는 직함이 폭넓게 허용된 것으로 인해 갈등이 빚어진 곳도 있다. 2000년 3월 발생한 현대그룹 '왕자의 난'은 창업자(정주영 명예회장)와 두 아들(차남 정몽구 회장, 5남 정몽헌 회장)이 주요 등장인물이었는데 당시 두 정 회장은 자신이 그룹 대권을 이어받을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회장이라는 직함을 오래 달아왔던 것(정몽구 회장은 80년대 중반부터 계열사에서 회장으로, 96년에는 그룹 회장으로 불렸고 정몽헌 회장은 98년부터 그룹 회장이라는 명칭을 써왔다)도 알게 모르게 회장 다툼에 영향을 줬다는 분석도 있다.

집안 싸움이 불거졌던 두산이나 금호아시아나도 형제들이 그룹 총수를 서로 넘겨주면서 갈등을 빚은 전후에 회장 직함을 쓰는 이가 그룹내에 4 ~ 5명(두산은 박용곤 명예회장, 고 박용오 회장, 박용성 회장, 박용현 회장, 박용만 회장 등, 금호아시아나 고 박성용 명예회장, 고 박정구 회장,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에 달했다.

같은 사례는 아니지만 군사 쿠데타인 5.16이나 12.12에서는 사단장급의 소장이 참모총장이나 계엄사령관을 제압하며 정권을 거머쥐었다. 회장이 명예회장을 넘어서는 최근 대기업 사례와 슬며시 겹쳐진다.

배성민 기자 baes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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