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이면 무조건 미국인?

입력 2015. 8. 6. 03:00 수정 2015. 8. 6.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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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뀌면 세상이 바뀝니다][8월의 주제는 '國格']<148>국내 외국인들 "편견 불쾌"
[동아일보]
“캐나다인에게 미국인이라고 하는 건 한국인에게 일본인이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 실례라고요.”

2008년부터 약 4년간 한국 대기업에서 근무한 후 현재 홍콩의 한 정보기술(IT) 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캐나다 여성 A 씨(37). 그는 5일 통화에서 “한국에서 살 때 가장 불쾌했던 순간은 지레짐작으로 ‘백인은 곧 미국인’이라고 간주해 ‘당신 미국인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였다”고 말했다.

“한국 택시를 타면 운전사의 첫마디가 늘 ‘어디서 왔냐. 미국인이냐’였어요. 분명한 한국어로 ‘아니요. 캐나다에서 왔어요’라고 답해도 ‘바로 옆 나라인데 그게 그거 아니냐’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죠. 그런 일이 되풀이되다 보니 한 번은 택시 운전사에게 ‘제가 아저씨한테 일본인이라고 하면 좋겠어요’라고 쏘아붙였어요. 그제야 ‘미안하다’고 하더군요.”

A 씨는 “‘백인=미국인’으로 보는 시각이 기분 나쁜 것은 △강대국 출신 △백인 △남성 △영어 가능자를 우대하고 그렇지 않은 외국인을 차별하고 무시하는 분위기 때문”이라며 “한국에서는 외국인도 일종의 등급이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1등급은 영어를 하는 백인, 2등급은 영어를 못 하는 백인, 3등급은 영어는 하지만 백인이 아닌 외국인, 4등급은 영어도 못 하고 백인도 아닌 외국인이라는 주장이다.

홍콩에서 3년째 살고 있는 그는 “이곳에서는 영어를 쓰는 백인이라고 해서 무조건 미국인으로 보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백인이 아닌 미국인도 엉뚱한 대접을 받는다. 경기 수원시에서 원어민 영어교사로 일하는 카를로스 올리베라스 씨(35)는 푸에르토리코 이민 3세로 라틴계 미국인이다. 그는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고 줄곧 뉴욕에서 살았다. 하지만 히스패닉인 그의 겉모습을 보고 아랍인으로 여기는 한국인이 종종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경기 성남시 분당의 한 백화점에서 친구를 기다리고 있는데 한 중년 남성이 다가와 다짜고짜 ‘앗살람 알레이쿰’(‘신의 평화가 깃들기를’을 뜻하는 아랍어)이라고 하는 거예요. 미국인에게 아랍어 인사라니…. 최소한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물어본 후 말을 걸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얼마 전 편의점에 갔을 때 ‘카타르에서 왔냐. 그 나라는 많이 덥냐’는 사람도 있었죠.”

올해 초 한 지상파 프로그램에 출연한 서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 출신 숨 씨의 사연은 약소국 출신의 유색인종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민낯’을 보여준다. 한국 생활 11년째로 서울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일하는 그는 “지하철을 타면 좌석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냄새난다’며 코를 막고 일어난다. 또 이슬람 신자라고 밝혀도 ‘한국 생활에 적응하라’며 억지로 돼지고기가 들어간 김치찌개를 먹으라고 한다”고 말했다.

연세대 설립자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의 증손자인 피터 언더우드(한국명 원한석·60) IRC컨설팅 선임파트너는 “인종차별이 한국에만 있는 건 아니지만, 한국에서는 인종차별에 관한 표현이나 말투가 상당히 직설적이어서 많은 외국인이 난처해한다”며 “피부색이나 국적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바라보는 성숙한 시선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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