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공기업 이과장 포커에 빠지더니..꾼에게 딱 걸린 사연

양창희 입력 2015. 8. 5. 16:39 수정 2015. 8. 5.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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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미로 시작한 도박이 본업으로

공기업인 한국도로공사의 과장 51살 이모 씨가 도박을 시작한 건 심심함을 해소하기 위해서였다. 퇴근한 뒤 동료들과 틈틈이 포커 게임을 즐겼다. 도박판은 이어졌고, 판돈은 점점 커졌다. 한 판에 오간 돈만 수백에서 수천만 원, 급기야는 모텔을 전전하며 밤새 도박판을 벌이기 시작했다. 취미로 시작한 일이 본업으로 바뀌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낮에는 공기업 과장 업무, 밤에는 도박이 일과가 됐다.

하지만 승리의 여신이 항상 손을 들어준 건 아니었다. 갈수록 지는 날이 많아졌다. 1년 넘도록 가랑비에 옷 젖듯 잃은 돈은 어느새 수천만 원까지 늘어났다. 본전 생각이 간절했다. 말로만 듣던 '특수 카드'에 생각이 미쳤다. 남의 패를 훤히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는 데다, 돈만 주면 쉽게 구할 수 있다는 비밀 병기라는 얘기를 듣고 이 씨는 수소문 끝에 서울에서 특수 카드와 렌즈를 구했다.

■ "상대방 패를 훤히"…한 달에 7천만 원 따내

70만 원을 주고 구입한 특수 카드는 얼핏 보면 평범한 카드와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카드와 함께 딸려온 특수 렌즈를 눈에 끼자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카드 뒷면에 숫자와 카드 모양을 알 수 있는 표식이 선명하게 떠오른 것이다. 카드 뒷면에 미리 발라 놓은 형광 물질을 특수 렌즈로 인식하는 원리였다. 카드만 뚫어지게 바라보면 상대방이 쥔 패를 알 수 있었다. 지려고 해도 질 수가 없는 게임이었다.

이 과장은 판을 더 키우기로 했다. 도박 좀 한다는 지인들을 끌어 모았다. 모인 이들 가운데는 전문적으로 포커를 친다는 '프로 도박꾼'도 포함돼 있었다. 아마추어 수준인 이 과장은 상대가 안 되는 고수들이었다. 하지만 비밀병기를 믿고 게임을 시작하기로 했다. 뚜껑을 열자 결과는 놀라웠다. 남의 패를 훤히 보면서 치는 포커는 '식은 죽 먹기'였다. 자유자재로 배팅을 하며 판을 쥐락펴락했다. 열 판을 하면 아홉 판을 이겼다. 한 달 동안 하루 걸러 도박을 벌였고, 13차례에 걸쳐 7천만 원을 땄다. 특수 카드에 투자한 금액을 100배로 불려 받아낸 셈이다.

■ 화려한 승리, 허망한 몰락

하지만 새롭게 판에 들어온 도박꾼들에겐 유난히 느리게 진행되는 게임이 수상했다. 이 과장은 상대방의 카드 뒷면을 너무 오랫동안 바라봤고, 상대방의 카드를 뒤적거리는 행동까지 했다.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특수 카드'에 대해 익히 들어온 한 도박꾼이 미리 준비한 식별 기구로 카드 뒷면을 비추면서 모든 게 들통났다. 하수에게 당한 게 억울했던 도박꾼은, 자신이 상습 도박으로 처벌받을 것을 무릅쓰고까지 이 과장을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이 과장을 사기와 상습 도박 등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또 도로공사 전현직 직원 2명을 포함, 함께 도박을 벌인 8명도 입건했다. 도로공사 측도 범죄 혐의가 확인되는 대로 이 과장 등 직원들에 대해 중징계를 내리기로 했다. 경찰은 또 이 과장이 특수 카드를 손쉽게 구했다고 진술한 점을 토대로, 특수 카드의 유통 경로에 대해서도 수사를 확대하기로 했다.

광주 도박중독예방치유센터의 정재국 팀장은 "한 번 도박에 빠지면 자신의 사회적 지위는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게 된다"며, "사기 도박을 위한 도구를 불법적으로 구입하는 등, 도박으로 잃은 돈을 되찾기 위해 또다른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도박 중독의 주요 증상 가운데 하나"라고 지적했다. 정 팀장은 또 "도박 중독자에 대한 처벌만큼 중요한 것이 치유"라며, "중독자들에 대한 상담 등 체계적인 관리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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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창희기자 (shar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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