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태극기-330㎡인공기 서로 제압하려는 듯 펄럭였다

2015. 8. 5.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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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광복·분단 70년 - 다시 쓰는 징비]

② 판문점에서 본 분단 70년

판문점 가는 길은 푸르렀다. 오후 2시36분께 공동경비대대가 있는 캠프 보니파스를 버스로 출발하자 곧바로 남방한계선이었다. 여기서부터 2㎞의 남쪽 비무장지대(DMZ)다. 도로 오른쪽으로는 울창한 산야가, 왼쪽으로는 남한 유일의 비무장지대 마을 대성동이 들어왔다. 논에는 모들이 푸릇했다. 주민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부슬비가 날리더니 햇살이 나오기를 반복하는 날씨였다.

판문점을 함께 찾은 건 이역의 손님들이었다. 핵 비확산 분야 각국 전문가들이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 현인그룹 회의 폐막 직후 이곳을 방문했다. 이들은 군사분계선을 가로질러 세워진 파란 색깔의 군사정전위원회 회담장을 둘러본 뒤 북쪽 판문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40여m 떨어진 판문각 현관 앞에 부동자세를 한 경비병이 서 있었을 뿐, 북한 쪽 관계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김영규 유엔군사령부 공보관은 "판문점에서는 자기 쪽의 관람·방문 행사가 있을 때만 경호·안내를 위해 군인들이 자기 쪽 건물 바깥 도로로 나오는데, 오늘은 북한에 예정된 행사가 없다"고 말했다.

광복 하루 뒤 결정된 '분단'한국전쟁 겪고 더욱 공고해져남-북, 북-미 두겹의 적대구조정전·평화체제 전환 '험난한 길'

한국전쟁 발발 65돌 하고 하루가 지난 6월26일이었다. 판문점에는 여전히 전연지대의 긴장이 감돌았다. 방문객들을 호위하는 남쪽 경비병력들은 회담장 안에서도 태권도 기마자세를 흩트리지 않았다. 위협 상황에 빠르고 단호히 반격할 수 있는 태세다. 분단과 대치는 판문점에 집요하게 달라붙어 있었다.

70년 전 광복과 분단은 하루 간격으로 한반도를 덮쳤다. 1945년 8월15일 히로히토 일왕이 항복선언을 낭독했고, 한반도는 해방됐다. 같은 날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은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게 전화를 걸어 38선을 경계로 한 미군과 소련군의 한반도 분할 진주를 제안했다. 불과 일주일 전인 8월8일 일본에 선전포고한 소련 붉은군대는 미국의 예상을 깨고 파죽지세로 일본 관동군을 무너뜨리며 만주로 진군했다. 당황한 미국은 소련군이 한반도 전체를 장악하기 전에 남진을 저지할 목적으로 남북 분할을 제의했다. 다음날 스탈린은 이를 받아들였다.(이문항 <jsa-문점 1953~1994>) 지금 우리가 광복과 분단 70돌을 동시에 묶어 호명하게 된 직접적 시발점을 이룬 운명의 이틀이었다.

정전체제 불안한 평화…판문점 '미루나무 사건' 참극도

1948년 남과 북에 각각의 단독정부가 들어서고, 분단은 점점 구체적인 현실로 자리잡게 된다. 하지만 분단이 지금의 형태로 고착화한 건 한국전쟁이라는 '불의 강'을 건너고서였다. 400만의 사망자, 잿더미가 된 도시, 상대방에 대한 극도의 공포와 적대의식을 남기고 포성은 멎었다. 그 결과는 38선을 대체한 휴전선이었다. 휴전 이후 분단은 전쟁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거대한 힘으로 개인의 내면과 사회제도, 국가관계 전반을 짓누르는 압착기가 됐다. 말하자면 "한국전쟁 자체가 그것의 앞 시대와 뒤 시대를 구분하게 하는 역사적 분수령이었다."(박명림 <한국전쟁>)

멈췄을 뿐 끝나지 않은 전쟁997㎢ 면적의 비무장지대에감시초소 380여곳 밀집 '중무장 대치'한국전쟁 뒤 분단체제 강화되며사회 전반 짓누르는 '압착기' 돼남북 화해 협력 전략 힘 잃으며분단·정전상황 바꿀 동력 실종위기

전쟁을 계기로 판문점은 동서냉전의 파열점인 한반도의 분단을 상징하는 장소로 떠올랐다. 1953년 7월27일 이곳에서 유엔군 사령관과 북한·중국군 사령관 사이에 정전협정이 체결됐다. 3년 전쟁이 정지했다. 그러나 전쟁이 종식되지도(종전), 평화협정 체제로 대체되지도 않았다. 한반도는 여전히 '기술적으로는 전쟁중인 상태'로 남았다. 정전을 유지하기 위해 휴전선을 따라 남북 각각 2㎞씩의 비무장지대를 설치하고, 무장력의 상주를 금지해 완충지대로 삼았다. 그러나 실제로는 남쪽 100여곳, 북쪽 280여곳의 감시초소(GP)가 설치돼 병력과 중화기가 배치됐다. 총면적 997㎢의 비무장지대는 세계에서 가장 군사력이 밀집된 중무장지대의 하나다.

정전체제의 불안한 평화는 자주 파열음을 빚었다. 정전체제 관리를 맡은 군사정전위원회와 중립국감시위원회가 들어선 판문점도 이를 피해 가지 못했다. 1976년 8월18일 유엔사 쪽 관측초소의 시야를 가리는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에 나섰던 아서 보니파스 대위와 마크 배럿 중위가 북한군에 의해 도끼로 피살당하는 참극이 벌어졌다. 미군은 전쟁 발발 일보직전을 의미하는 방어준비태세 '데프콘2'를 휴전 이후 처음으로 발령했다. 75대의 전폭기를 탑재한 항공모함 미드웨이, 오키나와의 전투기 40대, 미국 본토의 F-111 폭격기 20대, B-52 폭격기들이 한반도로 집결했다. 전쟁 태세를 갖춘 미군은 한국 특전대와 1사단, 미 전투공병단을 투입해 문제의 미루나무를 제거했다. 북한이 사상 처음으로 김일성 최고사령관 명의의 '유감'을 전달하고서야 사태는 일단락됐다.

취재진을 태운 버스는 옛 4초소 자리에 세워진 '미루나무 사건' 희생자 추모비 앞에 잠시 멈춰섰다. 미루나무는 찾을 길 없었다. 왼쪽으로 국군·유엔군과 북한·중국군 사이 포로 교환이 이뤄진 '돌아오지 않는 다리'가 서 있다. 미루나무 사건 이후 이 다리를 통한 남북간 이동은 금지됐다. 지름 800m 타원형 모양의 공동경비구역(JSA) 안에서는 남과 북 구분 없이 자유롭게 군사분계선을 넘나들던 관행도 중단됐다. 분단은 더 공고하게 판문점을 갈랐다.

미루나무 사건은 남북 분단이 내포한 또 한 겹의 대립 구조를 수면 위로 끌어냈다. 전면에 나선 남북 적대 구도에 상대적으로 가려졌던 북-미 적대 구도가 그것이다. 북쪽은 늘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이 한반도 분단과 갈등의 근원이라며 북-미 적대를 최우선 과제로 부각시키려 했지만, 남쪽과 미국은 쉽사리 호응하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이 핵심 국익이나 자존심이 직접 도전받는 경우 남쪽의 이해에 아랑곳없이 행동에 나설 수 있음을 미루나무 사건은 뚜렷이 보여줬다. 미국의 이런 태도는 북핵 저지를 명분으로, 전면전 발발을 우려한 남쪽 정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일방적으로 북폭을 추진했던 클린턴과 부시 행정부의 사례에서 다시 한번 적나라한 민낯을 드러낸다. 이 때문에 두 겹의 분단 적대 구조는 곧 '대북 정책을 둔 미국과 남쪽 간 이해의 상충을 의미한다'(정욱식 <동맹의 덫>)는 평가가 나온다.

오후 3시25분께 버스는 판문점을 떠났다. 대성동을 마주보는 북한의 기정동 마을에선 160m 높이의 세계 최장 깃대 위에 330㎡ 넓이의 인공기가 펄럭였다. 대성동에도 100m 높이 깃대에 넓이 200㎡짜리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었다. 분단은 누가 더 큰 깃발을 올릴 것이냐의 경쟁 속에 여전히 거대한 똬리를 틀고 있는 듯 보였다.

분단과 정전 상황을 변경시킬 남과 북의 동력은 사그라들고 있다. 갈등 요인을 넘어 한반도 분단의 적대 구조를 주도적으로 돌파할 수 있는 남북 화해·협력의 전략은 힘을 잃고 있다. 한때 어렵사리 쌓았던 기틀마저 네 귀가 모두 허물어지고 있다. 남과 북의 정상이 손을 맞잡고 평화와 협력을 다짐했던 기억은 빠르게 퇴색해가고 있다. 군사적 신뢰를 쌓고 종전과 평화체제로 도약하려던 노력은 전면 중단된 반면, 기싸움과 무력시위, 군사적 갈등은 위험수위에 육박하고 있다. 한 시인은 1970년대에 '김해에서 화천까지 / … / 도처 철조망 / 개유 검문소'(황동규 '태평가')라고 노래했는데, 분단 70돌의 해 서울로 돌아오는 길 김포 한강 가에는 여전히 도처에 가시 철조망이 줄을 잇고 있었다.

판문점/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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