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곳 지금은]② 노량진, 학원1번가에서 취업준비촌으로..청춘의 도전과 좌절은 여전

김수현 기자 입력 2015. 8. 5. 06:00 수정 2015. 8. 5.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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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1호선 노량진역과 노량진 고시촌을 잇는 노량진 육교. 길 건너편 건물에 공무원 준비 학원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김수현 기자
노량진 학원가 위치도. /그래픽=박종규
노량진 학원가 내 식당이 모여있는 골목. 주로 20~30대가 유동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김수현 기자
노량진 고시학원가 일대에 밀집한 원룸과 고시원들. /김수현 기자

서울 지하철 1호선 노량진역 1번 출구에서 나오면 노량진육교가 나온다. 지은 지 35년이 돼 옆에 지나는 사람의 발걸음이 몸을 통해 물결치듯 진동이 전해지는 육교다. 이 육교를 건너면 노량진의 명물 ‘컵밥로드’가 나온다.

하얀색 스티로폼 그릇을 들고 3000원짜리 끼니를 때우는 학생들을 지나쳐 골목으로 들어서면, 추리닝을 입고 슬리퍼를 끄는 젊은이들 사이로 일반직, 소방직과 경찰직 공무원, 임용시험 준비 학원 수십여개와 상가, 고시원과 원룸이 뒤섞여 다가온다. 7·9급 공무원을 준비하는 공시생(공무원을 준비하는 수험생)은 한 번쯤 거쳐간다는 ‘노량진 학원가’다.

◆ 입시학원가에서 취업준비촌으로

노량진 학원가가 자리잡기 시작한 건 197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정부는 도심지 인구 밀집을 막겠다는 이유로 261개 학원을 4대문 밖으로 분산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종로학원과 더불어 ‘학원 3강(强)’ 중 하나였던 대성학원이 노량진동으로 옮기면서 다른 대입 입시학원들도 이 일대로 대거 몰려들었다.

30여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노량진 학원가의 풍경도 꽤 달라졌다. 1980~1990년에는 대성학원을 비롯한 입시학원이 중심축을 이뤘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강남 대치동과 목동 등에 입시 수요가 몰리면서 노량진 입시학원가도 힘이 다소 빠졌다. 중산층과 전문직 종사자가 주로 사는 강남과 목동의 특성상 사교육에 적극 투자하는 학부모들이 많았고, 재수를 선택하는 학생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입시학원이 빠진 자리는 새로운 학원이 채우기 시작했다.1997년말부터 시작된 IMF 외환위기 이후 당시 상상할 수 없었던 취업난이 불어닥쳤다. 대학 졸업 예정자와 졸업자들은 직업 안정성이 높고 해마다 인력 충원을 하는 공무원 시험에 몰렸다. 그러면서 노량진에서는 자연스레 공무원과 고시 임용시험을 준비하는 취업준비 학원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 20~30대 대부분…40대 이상 수험생도 5분의 1

이제는 ‘취업고시촌’이란 말이 더 어울리게 바뀐 옛 노량진 학원가 일대는 ‘취업 적령기’인 20~30대가 대부분이다. ‘서울통계’에 따르면 2015년 1분기 노량진동에 거주하는 20~35세 인구는 1만3856명으로 전체(4만7861명)의 약 29%를 차지한다.

7급 공무원 시험을 2년째 준비하고 있는 김하림(24)씨는 “대학에서 행정학을 전공했는데, 워낙 기업 취직이 쉽지 않다는 얘기를 들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며 “학원 시설도 좋고 유명 강사도 많은 노량진에서 공부하기로 정하고, 대학교 기숙사에서 나와 인근 원룸에서 살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2008년 이후 공무원 시험 응시연령 제한이 폐지되면서 연령대도 이전보다 다양해졌다. 학원 수강생의 80%는 20~30대지만, 40대 이상 시험 준비생들도 20%나 된다.

9급 공무원을 3개월째 준비 중인 최지현(43·가명)씨는 “아이를 낳으면서 직장을 그만뒀는데, 재취직이 쉽지 않고 공무원은 안정적이라 공부를 시작했다”며 “딱 2년만 참고 공부하기로 마음먹고 남양주로 출퇴근 하는 남편에게 양해를 구해 가족 모두 노량진 학원 가까운 곳으로 이사해 살고 있다”고 말했다.

◆ 학원, 원룸·고시원 ‘성황’

응시 문턱은 넓어졌지만 취업시장은 오히려 좁아져, 공무원 시험 경쟁률은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노량진의 학원들도 이에 발맞춰 사세를 키우고 있다. 지난해 노량진 고시촌이 포함된 동작구 내 사설학원(성인고시 등) 수는 57곳으로, 10년 전인 2004년(32곳)과 비교해 두 배 가까이 늘었다.

W고시학원 관계자는 “취업 학원을 찾아오는 수강생들이 크게 증가했지만 그만큼 학원수도 크게 늘어 각 학원들마다 수강생수는 오히려 다소 줄어들었다”며 “학원들도 수강생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학원들이 합격자 초청 설명회를 여는 등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일대 고시원과 원룸도 성황이다. 지방에서 상경하는 수험생들이 많고, 서울 인근에 사는 경우도 통학 시간을 줄이기 위해 노량진에 자리를 잡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인근 공인중개업소에 따르면 노량진동 고시원은 전용면적 3.3~6.6㎡당 월 25만~35만원은 내야 한다. 원룸 전용면적 9.9㎡도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40만~50만원을 줘야 구할 수 있다. 서울 내 또 다른 고시촌인 신림동 고시원 시세가 15만~25만원 정도인 점과 비교하면 가격이 비싼 편이지만, 수험생이 몰리는 시기엔 매물이 귀할 정도로 수요가 폭증한다.

인근 K공인 관계자는 “학원 개강을 앞둔 12월엔 전국에서 방을 구하려고 몰린 사람들 때문에 방을 찾기가 쉽지 않다”며 “12월 초 방 계약을 하고 집으로 내려갔다가 개강 직전인 12월 말에 올라오는 학생들이 대다수”라고 말했다.

◆ 비싼 부동산값에 학원·수험생들 떠나기도

노량진 학원가에도 변화의 움직임은 감지된다. 대입 입시의 중심추가 강남으로 옮겨간 지 오래된 상황에서 최근에는 경찰 준비 학원들이 영등포구 대방동으로 자리를 옮기는 사례가 생기고 있다. 비싼 월셋값을 감당하지 못해 신림동 고시촌으로 옮겨가는 수험생들도 증가 추세다.

그러나 노량진 학원가의 '명성'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란 게 인근 학원과 공인중개업소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K학원 관계자는 "공무원이 안정적인 직업으로 손꼽히는 한 공무원 취업 준비생들은 관련 인프라가 잘 갖춰진 노량진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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