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이름의 신격호' 특혜로 탄생한 롯데

김덕한 기자 2015. 8. 5. 03: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롯데그룹 大해부] [1] 한국 정부·국민이 키웠다 國立도서관 터엔 호텔, 산업은행 터엔 백화점.. 政府특혜로 큰 롯데 '한국이름 50%+일본이름 시게미쓰 50%' 투자 허용 外資기업 인정 받아 소득·법인세 면제 등 파격 혜택 -韓國서 밀어주는데 日지분이 99%인 호텔롯데, 매출의 84%인 4조원이 정부 허가 면세점서 발생 -日 지주회사가 지배 일본롯데홀딩스 주총에서 어떤 결정 내리느냐에 따라 후계·경영권 향배 갈려

"신격호라는 한국 이름으로 50%, 시게미쓰 다케오(重光武雄)라는 일본 이름으로 50%를 투자하도록 해줘서 탄생시킨 것이 오늘날의 롯데그룹입니다."

한 전직 고위 관료는 롯데그룹이 처음 한국에 투자하던 1967년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신격호 회장이 투자한 돈을 이름만 달리해 절반은 한국인 투자, 나머지 절반은 일본인 투자로 인정해 준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외자(外資) 유치에 목을 매던 박정희 정부는 1966년 외자도입특례법을 제정해 외자 기업에 소득세·법인세·취득세·재산세를 최초 5년간 면제해 주는 등 파격적인 특혜를 제공했다.

일본 롯데(1948년 창립)보다 거의 20년 늦은 1967년 롯데제과로부터 시작된 한국 롯데는 반세기 동안 매년 평균 29%라는 놀라운 고속 성장을 했다. 정부는 지금의 롯데호텔·롯데백화점 본점이 있는 서울 소공동의 알짜 부동산을 롯데가 매입할 수 있게 하는 등 특혜를 줬다. 이런 혜택 덕분에 한국 롯데는 1980년대 후반에 일본 롯데를 추월했고, 2013년에는 83조원의 매출을 올려 일본 롯데(4조5000억원)와의 격차를 20배로 벌렸다.

하지만 이런 롯데를 지배하고 있는 곳은 자본금 2억원 남짓에 정체도 불분명한 일본 광윤사(光潤社)와 지분 구조가 공개돼 있지 않은 일본 롯데홀딩스이다. 한국에서 낸 실적의 상당 부분이 일본 회사로 가는 기형적 지배구조를 갖고 있는 것이다. 재계에서는 롯데가 일본 내 지주회사들의 지분 구조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장기적으로는 기업 지배구조 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자본금 2억원 회사가 매출 83조원 회사를 지배

한국 롯데 지배구조의 정점에는 지분관리용 회사인 일본 광윤사가 있다. 이 광윤사가 32%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지주회사 롯데홀딩스, 그리고 12개의 'L제○투자회사'들이 한국 내 지주회사 격인 호텔롯데를 통해 롯데그룹 전반을 지배하고 있다. 한국 내 주요 계열사들의 지분을 골고루 가지고 있는 호텔롯데의 지분 99%가 일본 회사 소유인 것이다.〈그래픽 참조〉

지난해 롯데그룹은 광윤사·롯데홀딩스·L제○투자회사 등 일본에 있는 주주 회사들에 500억원 이상을 배당했다. 지난 5년간 일본으로 간 배당금은 3000억원에 육박한다. 금액으로만 보면 그렇게 크지 않지만 광윤사가 직원 3명에 자본금 2000만엔(약 1억9000만원)에 불과한 '페이퍼 컴퍼니'(장부상 회사)라는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투자 성과를 거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본금 2억원짜리 회사가 매출 83조원, 자산 93조4000억원, 종업원 23만명을 둔 한국 재계 5위 롯데그룹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은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이다.

광윤사의 수익성은 계속 좋아지고 있다. 2012년 3월 결산한 당기순이익은 7000만엔 수준이었지만 2013년엔 9700만엔, 지난해엔 2억9500만엔으로 크게 늘었다. 직원이 3명이고, 사업 목적에 적힌 '포장재 제조 판매' 매출은 미미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 롯데의 고속 성장이 광윤사의 수익 향상으로 이어지고 있는 점을 알 수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일본 회사들의 주주나 지분구조는 베일에 싸여 있다는 점이다. 어떤 '꼬리'가 한국의 '몸통'을 흔드는지조차 알 수 없는 구조이다.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과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일본 롯데홀딩스 장악을 위해 사활을 거는 모습을 보면서 국민은 짙은 배신감을 느꼈다.

한국 정부의 배려와 국민의 사랑 속에서 고속 성장한 기업을 누가 지배하는지조차 모르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 권태신 원장은 "글로벌 시대에 투자한 한국 회사에서 배당받은 돈이 일본으로 흘러간다고 해서 그 회사를 '일본 기업'이라고 배척해서는 안 될 일"이라면서도 "글로벌 시대에 적합한 투명한 경영 체제는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外投 기업 대우받고 필요할 땐 토종 기업

한국 정부와 국민은 롯데에 전폭적인 혜택과 성원을 보냈다. 한 대기업 임원은 "롯데는 외투(外投) 기업으로서 혜택이 필요할 때에는 외투 기업 대우를, 토종 기업 이미지가 필요할 때에는 토종 기업으로 대접받았다"며 "그 같은 특혜와 국민의 사랑을 받은 기업이 일본 롯데홀딩스의 주주총회에 따라 명운(命運)이 좌우된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롯데는 주력 사업인 호텔·백화점을 지을 때마다 특혜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1973년 호텔을 짓기 위해 당시 반도호텔과 국립도서관 등을 매입할 때도 그랬고, 1980년대 초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자리에 있던 산업은행을 사들일 때도 정부가 "산은(産銀) 건물을 보존하겠다"던 당초 방침을 바꿔 롯데를 밀어줬다는 시비가 있었다.

지분의 99%가 일본계 자본인 호텔롯데가 연 매출 4조7000억원 가운데 84%인 4조원을 면세점 사업에서 올리고 있는 것도 한국 기업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외국 기업도 면세점 사업을 할 수는 있지만 면세점 사업이 정부 허가 사업이고, 엄청난 매출이 보장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외국 기업이 허가를 받기는 쉽지 않다. 현재 17개 시내 면세점 중 롯데호텔을 제외하면 외국계 기업은 하나도 없다.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