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행복을 찾아 떠나고 싶어

2015. 8. 4.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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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싫어서

장강명 지음·민음사·1만3000원

문득 떠올려보면, 장강명 이전에 황지우가 ‘한국을 뜨고 싶다’는 욕망을 문학으로 포착해냈다. 영화 시작 전 애국가가 울려퍼지는 극장에서 “우리도 우리들끼리 / 낄낄대면서 / 깔쭉대면서 /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 한 세상 떼어 메고 /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싶지만, 행만 바뀐 채 곧장 이어지는 문장으로 현실이 엄습한다. “하는데 대한 사람 / 길이 보전하세로 /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 주저앉는다” 황지우의 절창 ‘새들도 새상을 뜨는구나’의 뒷부분이다. 기자 출신의 젊은 소설가 장강명의 <한국이 싫어서>도 비슷한 정서의 화자를 주인공으로 삼는다. 하지만 이제는 극장에서 애국가가 나오는 세상이 아니기에,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당하는 나라가 아니기에, “주저앉는다” 외의 다른 선택지가 가능해졌다. 한국이 싫어서, 한국을 떠나고자 마음먹고 실행에 옮기는 ‘계나’라는 이름의 여성이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무턱대고 욕하진 말아 줘. 내가 태어난 나라라도 싫어할 수는 있는 거잖아. 그게 뭐 그렇게 잘못됐어? 내가 지금 “한국 사람들을 죽이자. 대사관에 불을 지르자”고 선동하는 게 아니잖아? 무슨 불매운동을 벌이자는 것도 아니고, 하다못해 태극기 한 장 태우지 않아. 미국이 싫다는 미국 사람이나 일본이 부끄럽다는 일본 사람에게는 ‘개념 있다’며 고개 끄덕일 사람 꽤 되지 않나?(11쪽)”

모든 사람들이 한 번쯤은 입에 담아봤을 바로 그 말, ‘에이, 이놈의 나라에서 더는 못살아’를 적나라하게 제목에 담아냈다는 것만으로 이 책은 발간 즉시 화제작이 됐다. ‘한국이 싫어서’ 떠나고 싶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어쩔 수 없이 뭉개고 살고 있다는 것, 그것은 대한민국의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것이다. <한국이 싫어서>는 계나라는 여성 화자의 입을 통해, 정말 한국이 싫어서라기보다는 삶에서의 작은 행복을 찾고 싶어서 한국을 떠나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직선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한국이 싫어서>는 2015년 최고의 문제작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떨치지 못한 질문은 이것이다. 작가는 남자인데, 왜 ‘한국이 싫어서’ 이 나라를 떠나는 1인칭 화자는 여성으로 설정돼 있는가? 한국을 굳이 떠나야만 하느냐고 묻는 남자친구에게 계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어차피 난 여기서도 2등 시민이야. 강남 출신이고 집도 잘살고 남자인 너는 결코 이해 못해.” 그렇다. 한국은 한국인들이 사는 나라지만, 그 표준적인 ‘한국인’은 어디까지나 부모 모두 한국인인 남성일 뿐이다. 실제로 많은 여성들이 해외여행을 통해, 한국 사회로부터 벗어나는 해방감을 느낀다. 똑같은 일을 해도 남성 대 여성의 평균임금은 100대 62다. 여기서 작중 화자를 여성으로 설정하고 1인칭 서술을 한 장강명의 선택은 양면적 효과를 낳는다. 일단 그는 ‘드러나지 않았던 목소리’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해냈고, 그 자체만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여성형 1인칭 화자의 내면이 서술돼 있는 탓에, 작가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주인공 계나의 판단과 선택은 사회 통념적 비난을 돌파해낼 수 없다. 이 책은 ‘요즘 젊은이들’을 손쉽게 비난하는 사람들의 의식세계를 뒤엎지 못한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젊은 여자’의 목소리에 애초부터 귀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이 싫어서> 이후, 더 많은 문학적 도전이 이뤄지기를 기대해본다.

<노정태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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