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 골육상쟁에 '올스톱'..반(反)재벌 정서도 확산

김기환 2015. 8. 4.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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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적 기업구조·오너 독단 경영 '공분'

재계 5위인 롯데그룹의 경영권 분쟁이 대기업에 대한 불신을 키우면서 재계 전체로 그 불똥이 튀지 않을까 기업인 모두 좌불안석이다. 이번 사태로 드러난 폐쇄적인 지배구조와 오너의 독단 경영이 국민 공분을 사면서 지난해 말 ‘땅콩회항 사건’으로 분출했던 반(反)기업 정서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는 게 경제계 전언이다. ‘투명경영’ 노력을 기울여온 다른 기업까지 싸잡아 비난받는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는 게 요즘 재계의 가장 큰 걱정거리라고 한다. 당사자인 롯데그룹도 추진 중인 핵심사업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4일 재계에 따르면 롯데그룹은 연말로 예정된 롯데면세점 서울 소공점과 잠실 월드타워점 재입찰과 의욕적으로 추진 중인 부산 북항 카지노 복합리조트 입찰 심사에서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번 사태로 사실상 일본 기업이 아니냐는 정체성 논란까지 일면서 롯데그룹의 브랜드 가치가 상당한 손상을 입은 만큼 좋은 점수를 받기는 쉽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계열사 세무조사국세청이 롯데그룹 광고 계열사 대홍기획에 대해 세무조사를 벌이고 있는 가운데 4일 오후 서울 중구 대홍기획 사옥에서 한 직원이 문 앞을 지나가고 있다.
이재문 기자
그룹이 2013년부터 추진해온 롯데정보통신의 기업공개도 사실상 무기한 미뤄졌다. 롯데정보통신 상장을 주관하고 있는 KDB대우증권은 예비심사를 바로 청구할 수 있도록 준비를 마친 상태이지만 롯데그룹의 결정이 늦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분구조가 복잡한 롯데정보통신은 기업공개에 나서려면 총수 일가의 합의가 필요한데, 이번 사태로 사실상 물거품이 됐다는 관측도 나온다. 롯데정보통신 지분은 롯데 계열사 중에는 롯데리아(34.5%) 등 6개 회사가 보유하고 있다. 더불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7.5%)과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4%), 신영자 롯데복지재단 이사장(3.5%) 등 오너 일가도 나눠 갖고 있다. 그룹 경영권 후계 자리를 놓고 ‘신동빈’ 대 ‘반(反)신동빈’ 구도로 갈등이 빚어지고 있는 만큼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롯데리아, 코리아세븐 등 상장이 검토되고 있는 다른 계열사의 기업공개도 무기 연기될 전망이다.

신 전 부회장 측이 중국 사업의 부진을 빌미로 신 회장을 공격한 만큼 그동안 왕성했던 롯데그룹의 공격적인 해외기업 인수·합병(M&A) 역시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어 보인다. 그동안 롯데가 추진한 주요 사업은 유통 분야의 옴니채널(온·오프라인과 모바일을 융합한 유통 서비스)과 중국·인도·베트남·러시아 등의 유통기업 M&A,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면세점 확장 등인데 당분간 소강국면을 벗어나기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신동빈, 신입사원과 “파이팅”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가운데)이 4일 롯데인재개발원 오산연수원에서 2015년 상반기 신입사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롯데그룹 제공
오는 12월 특허가 만료될 롯데면세점 소공점·월드타워점 재입찰도 롯데판 ‘왕자의 난’으로 관세청 심사에서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부산 북항에 신규 카지노 복합리조트를 들이려는 사업도 타격받을 전망이다. 이를 통해 황금알을 낳는다고 평가받는 외국인 전용 카지노 사업을 벌일 계획이었지만 오너리스크 탓에 역풍을 염려해야 하는 현실이다.

재계는 이번 사태로 롯데그룹이 한국이 아닌 일본 기업으로 대중에게 인식되면서 브랜드 가치가 떨어진 점이 가장 큰 피해라고 지적한다. 재계 관계자는 “롯데가 오너리스크에 발목이 잡혀 계열사의 기업공개를 비롯한 M&A, 면세점 재심사 등 핵심 현안의 추진이 사실상 ‘올스톱’ 됐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롯데그룹의 경영권 분쟁 사태가 대기업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확산시켜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재계는 속앓이를 하고 있다. 광복절 기업인 특별사면, 경영권 방어장치 도입, 노동시장 개혁 등 재계가 그동안 줄기차게 요구해온 각종 현안을 두고 정치·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한 민감한 시기에 찬물을 끼얹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는 것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지난해 말 정치권과 재계에서는 사면 분위기를 조성해보려 노력했지만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막장 ‘땅콩회황’이 찬물을 끼얹었다”며 “이번 8·15 특별사면을 앞두고 롯데로 인해 대기업 오너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확산되면서 불안하기 그지없다”고 말했다.

김기환 유통전문기자 kk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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