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후] 서울대 대학원생은 왜 전공 서적을 훔쳤나?

김재현 2015. 8. 4.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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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대학원생이 학교에서 책을 훔치다 경찰에 붙잡혔다. 이 학생은 훔친 책을 중고 서점에 팔아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이 같은 일을 저질렀다.

오늘(4일) 서울 관악경찰서에 따르면 지난달 17일 오전 6~7시쯤 서울대 대학원에 재학 중인 박모씨(34)는 서울 관악구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 6층에서 문이 열린 한 동아리 방에 들어가 전공 서적을 포함해 책 20여 권을 훔쳤다.

박씨가 다른 학생들의 책에 손을 댄 것은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이었다.

박씨는 학교 근처에서 서울대 학부 재학생인 20대 남성과 함께 자취하고 있었다. 보증금 300만 원을 균등하게 분담했고 큰 방을 쓰는 박씨가 월세 30만 원 중 20만 원을, 학부 재학생이 나머지 10만 원을 맡았다.

박씨는 최근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계약해 외국 공문서를 번역하는 일을 했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과외도 했다. 하지만 모두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월급을 받으려면 한 달 가까이 기다려야 했다. 그에게는 당장 쓸 돈이 없었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박씨는 결국 문이 열린 동아리방에 들어가 책을 훔치게 됐다. 지난달 17일 책 20여 권을 훔친 그는 중고 서점에 팔기 전 잠시 보관할 곳을 찾다 교내 테니스장 인근에 숨겼다.

하지만 그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이 책들을 누군가가 가져가는 바람에 박씨의 1차 범행은 허무하게 끝이 났다.

박씨는 6일 뒤인 지난달 23일 오전 6시40분쯤 2차 범행을 시도했다. 그는 첫 번째 절도에 성공했던 농생대 건물에 다시 들어갔다.

그는 2층에 있는 한 동아리 방의 문고리를 잡고 흔들었다. 문이 열렸는지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장면을 학교 환경미화원인 박모씨(63)가 발견했다. 미화원 박씨는 며칠 전 농생대의 동아리 방에서 책들이 사라진 일로 출동한 경찰과 함께 폐쇄회로(CCTV)를 들여다본 인물이었다.

CCTV를 통해 절도범의 인상착의를 파악했던 박씨는 직감적으로 동아리 방의 문을 열려고 하는 이가 서적 절도범일 것으로 판단했다.

미화원 박씨는 "여기서 뭐 하느냐"며 절도범 박씨에게 다가갔다. 그러면서 그는 "경비실에 가서 신원 확인을 하자"며 대학원생 박씨의 허리춤을 잡았다.

대학원생 박씨는 도망가기 위해 미화원의 머리에 박치기를 했고, 두 사람의 밀고 당기는 몸싸움이 시작됐다. 미화원 박씨는 힘겨루기를 하는 와중에 "사람 살려"라고 크게 소리쳤다.

이 소리를 듣고 동료 미화원과 경비원 2명이 현장에 왔고, 결국 대학원생 박씨를 제압해 경찰에 넘겼다.

경찰은 대학원생 박씨를 강도 상해 혐의로 구속하고 지난달 28일 검찰에 송치했다. 폭행 당한 박씨는 전치 2주의 상해 진단을 받았다.

이번 사건을 담당한 서울 관악경찰서 설지원 경위는 "경찰 조사 당시 절도범은 서울대를 졸업하고 대학원까지 다니는 것을 숨겼지만 가족이 이 사실을 털어놔 알게 됐다"면서 "가족의 경제적 지원 여부를 물었지만 박씨는 '가족과 사이가 안 좋다'며 진술을 거부했다"고 전했다.

한편 경찰은 절도범을 잡은 미화원 박씨와 그의 동료, 경비원 2명에게 절도범 검거 공로 표창과 함께 보상금을 수여할 예정이다.

김재현기자 (honor@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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