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돈키호테' 김태호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이유는?

김수형 기자 2015. 8. 4. 16:4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뜬금없는 '총선 불출마 선언' 기자회견

요즘 국회 기자실은 방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김무성 대표는 미국 순방을 마치고 오늘 들어왔고, 원유철 원내대표는 아직 중남미 출장 중입니다. 국회도 열리지 않기 때문에 국회 기자들도 간만에 숨을 돌리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어제 오전 국회 기자들에게 짤막한 문자 한통이 들어왔습니다. 김태호 의원이 기자회견을 하는데 내용은 '신상에 관한 것'이라는 게 전부였습니다. 신상에 관한 것은 사퇴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급하게 전화를 걸어봤지만, 통화중이어서 연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다른 의원들에게 물어도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돌아왔습니다. 연락이 닿은 일부 언론에서 총선불출마를 선언할 거 같다는 속보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감이 잘 오지 않았습니다. 최근에 김 최고위원이 불출마를 선언할만한 계기가 딱히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기자실에 선 김태호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비장해보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최연소 군수, 도지사를 거치면서 스타의식과 조급증이 몸에 뱄다"고 고백했습니다. 반대로 "몸과 마음은 시들어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초심은 사라지고, 귀가 닫히고, 내 말만하고, 판단력이 흐려지고, 언어가 과격해지고, 말은 국민을 위한다지만, 생각의 깊이는 현저히 얕아졌다"고 털어놨습니다.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속은 텅비어가고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 정도면 거의 '셀프디스'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 최고위원에게 대놓고는 말 못하지만, 주변에서 수군거리는 내용을 정확하게 담고 있었습니다. 김 최고위원은 이런 상황에서 "다음 선거에 출마를 고집하면 자신을 속이고, 국가와 국민, 지역구민께 큰 죄를 짓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정계은퇴 선언은 아니었습니다. 최고위원직은 더 성실히 수행할 것이라며, 의원직에 한해서 불출마 선언을 한 거라는 설명이 뒤따랐습니다. 김 최고위원은 "실력과 깊이를 갖추도록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해 최고위원직 사퇴 소동을 벌인 뒤 다시 최고위로 돌아온 적이 있었지만, 김 최고위원은 이번에는 "임기가 남은 최고위원을 그만둘 수는 없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자기 고백은 신선하고 절절했지만, 기자회견을 다 듣고 난 뒤에도 그의 불출마 선언이 뜬금없다는 생각은 가시지 않았습니다.

● 동료 의원들도 "의도를 모르겠다"

김태호 최고위원의 총선 불출마를 소식을 접하고 새누리당 의원 여러 명에게 물어봤는데, "의도를 잘 모르겠다"는 답이 예외 없이 돌아왔습니다. 일부 언론에서는 지역구가 어려워서 미리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거 아니냐는 분석도 내놨습니다.

동료 의원들도 그의 지역구가 새누리당 내에서 매우 어려운 지역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인 봉하마을이 지역구 내에 있고, 김경수 새정치연합 경남도당위원장도 상당한 지지기반을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됩니다. 지난 선거에서도 김 최고위원이 어렵게 승리했습니다. 그것도 김태호 최고위원정도 되니까 이겼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적어도 김해 지역구가 새누리당 간판만으로 당선되는 곳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관록 있는 정치인이 자기 선거구가 어렵다는 이유로 총선에 불출마한다는 건 선뜻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일부에서는 중진의원 물갈이의 신호탄이라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지만, 동료 의원들은 선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남았다고 지적했습니다. 여야 중진의원들에게는 김태호 최고위원의 불출마가 자신들에게도 영향을 미칠까 신경을 쓰기는 하겠지만, 정치권의 연쇄적인 불출마 도미노를 일으키기에는 아직 긴 레이스가 남아 있습니다. 게다가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개인적인 수양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만큼 정치권 물갈이와 쉽게 연결되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김 최고위원이 동료 의원들과 자신의 거취 문제와 관련해서 거의 상의를 하지 않기 때문에 그와 생각을 공유하는 의원이 거의 없을 거라는 답변도 돌아왔습니다. 감이 잘 잡히지 않기는 의원들이나 기자들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 도지사를 반납하고 받은 총리후보…2010년 도지사 불출마 선언 돌아보니

하지만 한 가지 되짚어볼 것은 지난 2010년 김태호 최고위원의 또 다른 불출마 선언입니다. 당시 김 최고위원은 경남도지사를 두 번 지내고 3선 고지에서 돌연 불출마를 선언했습니다. 출마하기만 하면 3선을 할 가능성이 컸지만, 직을 던져버린 겁니다. 그리고는 그는 이명박 정부의 총리 후보로 지명 받았습니다. 도지사를 반납하고 총리 후보를 받은 셈입니다. 하지만 김 최고위원은 인사 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게이트급 정관계 로비 의혹으로 정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박연차 씨와 일면식도 없다고 딱 잡아뗐는데, 같이 찍은 사진이 공개됐기 때문입니다. 사안의 본질이 아닐지라도 거짓말 논란은 공직자에게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습니다.

김 최고위원이 도지사직을 던지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그의 자서전에 기록돼 있습니다. 그는 불출마 선언을 하기 전인 2010년 1월, 전국 시도지사협의회가 열린 날 이명박 대통령을 따로 만나 불출마 선언을 미리 얘기했다고 적었습니다. 당시에도 공부를 하겠다고 말한 점은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본론을 들이밀었다.

"저 도지사 3선 출마 안합니다."

대통령이 1초도 기다리지 않고 짧게 따지듯 물었다.

"왜?"

"도지사 두 번이나 하고 나니까 머리가 텅 빈 거 같습니다. 공부 좀 해야겠습니다"

버럭 질책하듯 대통령이 되물었다.

"도지사 두 번 하는 것만큼 큰 공부가 어디 있어?"

멈칫하는데 대통령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번지더니, 뜻밖의 멘트가 나왔다.

"잘했어."

대통령이 말을 이어갔다.

"나도 서울시장 두 번 할 생각은 전혀 안 했어. 한 번을 해도 두 번을 하는 것 이상으로 열심히 했어. 퇴임하는 날 오후 다섯 시까지 결재하다 나왔잖아. 마무리 잘 해."

그러겠노라 대답하고 일어서려는데 대통령이 물었다.

"김 지사 지금 나이가 어떻게 되지?"

"오바마하고 동갑입니다. 마흔 여덟입니다."

- 자서전 <태호처럼>

김 최고위원은 대통령과 독대 한 이후에 불출마 선언을 했고, 며칠 지나지 않아 청와대의 호출을 받고 올라가 자리를 받았습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총리 자리라는 얘기는 없이 "잘 준비해"라는 말만 했다고 합니다. 구체적인 자리에 대한 언급이 없다보니 소문이 무성했는데, 나중에 임태희 실장이 따로 만나 총리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당시 김 최고위원은 '은근히 기대는 했지만, 실제로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나도 놀랐다'고 적었습니다.

이번 불출마 선언을 과거 전력에서 나온 학습효과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던져야 더 큰 걸 받는다'는 정치공학적인 분석입니다. 하지만 김태호 최고위원은 현 청와대와 가깝다고 표현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총리직을 받았을 정도로 이명박 정부에서는 황태자였다고 할 수 있겠지만, 박근혜 정부에서도 그렇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원래 친박계 인사도 아니고 최근 유승민 전 원내대표의 거취를 정리하는데 친박계 못지 않게 총대를 멨다는 것 말고는 박근혜 대통령과 정치적인 보조를 맞춘 경우가 많지는 않습니다.

● 돈키호테 김태호의 승부수는 성공할까

김태호 최고위원은 최근 반복된 돌출행동으로 돈키호테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김무성 대표를 비판하며 최고위원직을 던졌다가, 김 대표의 만류를 받고는 싱겁게 돌아왔습니다. 당시 최고위원직에 복귀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결국 모양새가 우습게 됐습니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 거취 문제를 두고는 면전에서 거칠게 사퇴를 요구하다가 화가 난 김무성 대표가 회의장을 박차고 나가 사상초유의 최고위 파행을 만들어낸 꼴이 됐습니다. 예측불가능, 돌출행동으로 이미지가 점점 굳어지는 건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닐 겁니다.

의도를 확실하게 알기는 어렵지만, 총선 불출마 선언이 그로서는 정치적인 승부수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다음 선거에서 '한번만 더'를 외치며 별다른 정치적 성과도 없이 지역구에 연연하는 의원들도 많이 있습니다. 게다가 자신에 대해 적나라한 반성문을 쓰는 경우는 더욱 드뭅니다. 김 최고위원은 총선 불출마 선언을 했지만, 최고위원으로 정치활동은 계속합니다. 남은 기간 동안 돈키호테 같은 모습보다는 최고위원으로 정치적인 중량감을 갖춘 모습을 보여준다면 그의 총선 불출마 선언이 진정성이 있다는 평가를 받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 [한수진의 SBS 전망대] 조국 "김태호처럼 野도 불출마? 현명한 선택할 것"김수형 기자 sean@sbs.co.kr

Copyright ©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